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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불타는 하늘
컬러로 본 2차 세계대전
2부 - 불타는 하늘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군인에게 부여된 모든 사명 중 가장 영광스러운 임무는 아마도 비행 임무였을 겁니다. 전 세계의 공군들은 당시 한발 앞선 기술의 수혜자였죠. 미래의 대세는 항공기였으므로 첨단 기술 장비와 설계를 채택한 새 군용기들이 제작됐습니다. 여러 군사 전문가들은 공군력이 현대전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인이 되리라고 예측했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알 수 없었던 한 가지 사실은 비행 임무에 내재된 극도의 위험성이었습니다. 실제로 조종사의 경우 다른 어떤 병과나 보직보다 생존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이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공중전의 한 양상이 드러납니다.
위험을 끌어안고 비행에 나서다
연합군 폭격기 부대원 다섯 명 중 한 명은 전쟁 중 발생한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 수는 2만 2천 명에 달했죠. 영국에서는 짙은 안개가 늘 골칫거리였습니다. 짐을 가득 실은 항공기에 탑승한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수프’라고 부르던 불량한 시야 속에서 다른 폭격기와 충돌할 위험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폭격기들은 작전 고도인 6km까지 천천히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약 8km 고도까지 상승한 이후 탑승원들은 생존을 위해 산소를 호흡해야 했습니다. 호흡장치가 오작동하면 탑승원들은 60초 후 의식을 잃고 20분 후에는 목숨을 잃고 말았죠. 하늘에서는 극한의 추위가 또 다른 심각한 위협이었습니다. 기온은 보통 영하 40도까지 떨어졌습니다. 탑승원들은 새롭게 설계된 전기 난방 장치에 의존했지만 그 장치들은 고장이 잦았습니다. 장비를 수리하거나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장갑을 벗을 경우 동상에 걸릴 위험도 있었죠.
미국 폭격기 탑승원들은 공장이나 정유소 같은 목표물들을 정확히 찾아 파괴할 수 있도록 낮에 비행하는 훈련을 받았지만 주간 비행은 적 시야에 자신을 노출하는 일이기도 했죠. 1943년 중반, 독일 방공대는 무려 미국 폭격기의 20%를 작전 수행 중에 격추했습니다. 그 결과 미 육군 항공대는 독일의 깊숙한 지역까지 침투하는 비행 임무를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P51 머스탱' 같은 미국 전투기가 작전에 투입되면서 장거리 임무가 재개됐습니다. 머스탱의 역할은 폭격기들을 적 전투기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죠. 머스탱은 발전된 설계와 추가 연료 용량으로 인해 최장거리 임무에 나서는 폭격기들을 엄호할 수 있는 항속 가능 거리를 보유하고 있었고 최대 약 2,400km 범위 안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폭격기 탑승원들은 이 장거리 엄호 전투기를 ‘작은 친구’라고 불렀고 이 전투기들은 전쟁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화염 속으로 추락하는 악몽
2차 세계 대전 초기에 영국 공군 폭격기들은 독일 상공에서 주간 급습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영국 공군의 최고 폭격기 '랭커스터'는 B17의 2배에 달하는 8,100kg의 폭탄을 탑재했지만 폭탄 적재량을 늘리는 대신 방어 무장을 줄여야만 했습니다. B17처럼 50구경 중기관총 10정을 장착하는 대신 화력이 약한 30구경 기관총 8정만을 탑재하고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장 탓에 독일 전투기들에 수많은 폭격기들이 격추됐고 결국 어둠을 틈타 밤에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작전 방향이 변경됐습니다. 심야에 그런 비행을 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이었습니다. 랭커스터 폭격기들은 어두운 영하의 날씨 속에서 목표물을 찾아 공격한 뒤 귀환해야 했습니다. 미 공군에게 그랬던 것처럼 높은 고도와 끔찍한 추위는 끊임없는 역경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둠이 제공하는 보호는 일시적이었습니다.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독일은 레이더로 방향을 잡는 야간 요격 전투기 부대를 대폭 증강했습니다. 1944년 무렵의 공중전은 양측 모두 대응책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전술을 변경하는 처절한 고양이와 쥐 게임이 됐습니다.
수평선에서 예광탄이 번쩍이며 폭발하는 모습은 잔인하게 매혹적이었어요
전쟁 내내 수많은 영국 폭격기들이 독일군에 격추됐습니다. 항공 요원 1인이 10회 임무 후 격추되는 것으로 추산됐죠. 생존 확률이 낮다는 걸 알고 있던 조종사들은 쉽게 희망을 버렸습니다. 랭케스터는 휴식이나 탈출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비좁은 기내 구역으로 인해 탑승원들이 낙하산을 착용할 공간이 없었던 탓에 낙하산을 기지에 보관한 채로 비행할 수밖에 없었죠. 그 결과 영국 공군 다섯 명 중 한 명만이 추락하는 폭격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추락한 이들은 수천 명에 달했죠. 전쟁을 치르는 동안 영국 폭격기 8,600대가 유럽 상공에서 소실됐습니다.
화염 속으로 추락하는 악몽을 꿨다고 하더군요
이 젊은이들 중 다수가 불가피하게 임무의 긴장감과 상존하는 죽음의 가능성 전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끝없는 두려움 속에 무너졌습니다. 임무를 수십 차례 완수했음에도 감정적으로 무너져 내린 대원들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윤리적 근성 부족을 뜻하는 ‘LMF’로 영구히 낙인찍혀 계급장을 박탈당한 뒤 가장 하찮은 임무에 배치됐습니다.
속타는 마음으로
기지에 있는 수천 명의 병력 중 실제 비행에 나서는 인원은 10% 정도로 아주 적었습니다. 새로운 첨단 기술로 이루어지는 공중전에서는 엄청난 수의 숙련된 기술병들이 필요했습니다. 지상 요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일했습니다. 자신들의 어깨에 성패가 달렸다는 걸 알고 있었죠. 뜻밖의 순간에 기관총이 불발되는 일이나 기화기가 잘못 설치되는 일, 그리고 잘못된 기상 예보까지 모든 실수가 항공 요원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폭격기들의 비행 준비를 위해 한바탕 작업을 하고 나면 남는 것은 기다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에 동일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만약 폭격기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들의 책임이 되는 걸까요? 이들은 이런 감정을 ‘속 타는 마음’이라고 불렀죠.
안정된 공군 기지에서 근무했던 몇몇 지상 요원들은 예측 가능한 상황 속에서 비교적 편히 지냈지만 다른 이들은 끔찍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최악의 환경은 태평양 전장의 외떨어진 섬이었는데 그 섬들에서는 참기 힘든 습기와 질병 탓에 지옥이 펼쳐지곤 했죠. 이러한 상황에서 미군들의 임기응변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적과 싸우는 것뿐 아니라 날씨와 물자 부족, 밀림은 물론 심지어 군대의 허식들과 싸우며 이 시민형 군인들은 구걸하고 빌리는 것 외에도 최후의 수단으로 임무를 위해 필요한 것을 훔치기까지 했죠. 모든 종류의 외부 접촉이든 간절히 원했던 이들은 미국과 미국의 소박한 즐거움을 떠올리게 해 줄 어떠한 물건도 감사히 받아들였죠.
대단한 업적을 쌓아야만 훈장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화려한 일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책무를 수행하는 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지상 돌진 강하, 마주한 죽음의 공포
연합군의 4엔진 중폭격기들이 독일 상공 8km 고도에서 비행하는 동안 호위 임무에 참여하지 않는 미국 전투기들은 나무 꼭대기 높이에서 적군 점령지를 떠돌며 트럭과 열차 등 목표물을 찾아다녔습니다. 이 임무에 가장 적합한 전투기 중 하나는 ‘P47 선더볼트’였습니다. B17과 같은 주간 폭격기를 호위할 목적으로 설계된 이 전투기는 그 역할을 매우 훌륭히 수행해냈습니다. 또 견고함을 갖춘 뛰어난 지상 공격기이기도 했죠. 강력한 8연장 50구경 기관총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화력을 집중할 경우에는 나무도 자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치명적인 고성능 폭약과 소이탄, 로켓포를 탑재해 적 병력과 차량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죠.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우리가 공격을 많이 받았다는 말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유럽에서 미국의 폭격 작전을 성공적으로 촬영했던 할리우드 감독 윌리엄 와일러는 이번에는 미국 선더볼트 전투기와 독일 지상군의 처절한 전투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항공기 안쪽에 부착된 카메라는 조종사 관점에서 전투를 기록했습니다. 조종사들은 와일러의 카메라가 포착한 임무를 ‘지상 돌진 강하’라고 불렀습니다. 아주 모험적인 작전이었죠. 독일 대공포는 정확하고 수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총 소사 도중 공격을 받으면 격추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지상에서 불과 몇십 미터 위에서 비행중 이었기에 탈출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슈퍼 포트리스,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다
1945년, 태평양에서는 공중전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미국은 B29라는 새로운 폭격기를 도입했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한 세대 앞서 있는 폭격기였습니다. 최대 시속은 약 580km로 당대의 대다수 전투기들보다 더 높고 빠르게 비행했죠. 폭탄 적재량은 최대 9,000kg으로 B17 플라일 포트리스의 3배가 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폭격기는 ‘슈퍼 포트리스’라고 불렸죠. 태평양의 광활한 넓이 때문에 B29는 20시간 이상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작전 시간을 텅 빈 대양 위에서 보내는 것이죠. 폭격기가 목표물에 접근하고 나면 몇십 시간 지속된 긴장감은 10분간의 격렬한 전투 후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일본 상공에서는 제트 기류가 거세게 발생해 높은 고도에서 개별 목표물을 정확히 폭격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럽 폭파 사령부에서 부임해 온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대대적인 전술 변화를 지시합니다. 영국이 독일을 상대로 사용했던 접근법을 채택함으로써 B29는 야간을 이용해 1.5km의 낮은 고도에서 날아가 일본 도시들 중심부에 소이탄과 폭발물을 투하하게 됐죠. 일본 대도시들은 주로 목재로 건설됐기 때문에 참담한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들은 죽음과 파괴로 가득한 불타는 지옥으로 변했죠. 불길이 너무 거센 나머지 폭격기들도 위협을 받았습니다. 불타는 도시들이 야기한 강력한 열 상승 기류는 '슈퍼 포트리스'를 종이비행기처럼 구워 버렸죠. 일부 폭격기는 뒤집혀 버렸고 일부는 불길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슈퍼 포트리스'는 살아남았고 일본 주요 도시들 대다수는 하나씩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사망자 수도 엄청났죠. 이 공습의 결과로 사망한 인명의 수는 50만 명으로 2개의 원자 폭탄으로 인한 사망자 수의 4배 이상이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진 않아요.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전쟁터에 와 있다면 모두 똑같이 느낄 거예요
전쟁 도중 13만 명이 넘는 연합군 항공 요원이 전사했습니다. 생존자들은 전쟁으로 인해 영원히 변화돼 버렸죠. 공군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진 못했지만 이 거대한 물리적 충돌 속에서 싸운 대부분의 조종사들에게 전쟁은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힘겨운 상황에서 용감히 맞선 이들의 인내심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회복력에 대한 증거입니다.
극한 직업 랭커스터 폭격기 부대 [컬러로 본 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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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2부 - 불타는 하늘 (히스토리채널 밀리터리백과, 히스토리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