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실(龕室, tabernaculum)
어느 성당이든 제단 앞쪽에는 작은 빛을 내는 감실등이 켜져 있습니다. 성체의 현존을 표시하기 위해 켜둔 등불인데, 예수님의 몸인 성체가 그 옆 감실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미사 후에도 성체를 따로 모셔두는 건 그리스도교의 매우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테르툴리아노(160~?)에 의하면, 박해 시대 때 교우들은 성체를 집에 모셔가 필요할 때 영했다고 합니다. 또한 성 암브로시오(339~397)는 항해자들이 위급 시 영성체를 못 하고 죽을까 봐 성체를 모신 함을 가지고 승선하였다고 전합니다. 니케아 공의회(325)는 임종 위험에 있는 환자들이 반드시 성체를 영해야 하고 사제가 없을 땐 부제가 영해줄 수 있도록 규정함(13-14항)으로써 성체를 모셔두는 곳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성체를 성당 안에 모시는 관습은 4~5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체는 이동할 수 있는 용기에 담아 제의실 역할을 하던 ‘성구실’(聖具室, sacrestia)이나 제단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그 후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는 안전을 위해 열쇠로 잠가 보관하도록 규정했습니다. 16세기에는 감실을 성당 중앙 제단의 위쪽에 두는 게 일반화되었고, 1863년 예부성(Congregation of Rites)은 이외의 모든 방식을 금지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명동대성당이나 주교좌 의정부 사적지 성당에는, 신자를 등지고 미사를 드리던 뒷제대의 정면 위편에 감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사경본 총지침」에서는 “각 성당의 구조와 적법한 지역 풍습을 고려하여 성당의 한 부분에 감실을” 두라고 규정합니다. “감실은 보통 붙박이로… 단단하고 깨지지 않는 불투명 재질로” 만듭니다. 그리고 “거룩함이 모독 될 위험이 결코 없도록 닫아 두어야”(314항) 합니다. 한편, “표지라는 뜻에서 볼 때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에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가 보존되는 감실을 두지 않는 게 더 맞다.”(315항)라고 명시합니다. 왜냐하면 성당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가 현재화되는 ‘제대’이기 때문입니다. 감실은 제대의 중심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 고귀한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미사 후 성체를 모셔두는 목적은 ① 병자들에게 성체를 영해주고, ② 미사 외에도 성체 안에서 계시는 그리스도를 흠숭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감실에 성체를 보존하는 성당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매일 적어도 몇 시간 동안 개방되어야 합니다(교회법 937조). 또한 매년 적당한 기간에는 비록 연속적이 아니더라도 장엄한 성체 현시가 거행되도록 권장됩니다(942조).
구약의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장소가 되었듯이, 오늘날 삶의 광야를 걸어가는 우리에게 감실은 주님의 현존과 파스카 신비를 기억하게 하는 길이 되어 줍니다.
- 의정부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