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개
추억의 영화
32.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Sino-Japanese War and Empress Min, 1965)
한국영화도 대작영화들이 있었다. 어릴 때 봐도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구나 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동영상들을 통해서 보니 역시 대작영화였다. 1965년에 만들어진 <청일전쟁과 여걸민비>는 임원식, 나봉한이 공동연출한 영화이다. 임원식이야 중진의 감독이지만 나봉한 감독은 한국영화의 선각자 춘사 나운규 감독의 아들이다. 하지만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봉한을 감독 데뷔시키기 위해 실제로는 제작자인 신상옥 감독이 연출을 봐 줬다고 한다.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는 조선 말기 명성왕후가 역사적 격변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권력을 잡아가는 과정과 몰락을 드라마틱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한국의 근대화, 그로 인한 내부의 갈등 그리고 외세들의 개입이라는 내용을 섬세하게 전개시키며, 당시의 한국의 역사물의 진지한 성찰을 제시한다.
배경은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19세기 조선이 열강에게 위협받던 시기에 한반도에서 청나라, 일본, 러시아 3나라가 패권다툼을 치열하게 전개하는 시기이다. 민씨(최은희)는 조중구(김진규)와 혼인이 약속되어 있었으나 당시 고종을 섭정하던 대원군(김승호)에게 발탁되어 중전이 된다. 하지만 민씨와 조중구는 서로를 잊지 못하는데 이에 대원군은 조중구에게 모함을 씌워 사형에 처한다. 고종(남궁원)은 후궁(이민자)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기에 민비는 그 외로움 속에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것으로 견디어 나간다. 한편 형 조중구의 복수를 하기 위해 궁궐에 들어온 조승구(박노식)는 민비가 여전히 형 조중구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화되고 위기 때 마다 나타나는 민비의 수호천사가 된다. 열강들의 침입과 내부적인 혼란함 속에 정권을 잡은 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경복궁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하게 되고 그 경비를 보충하려고 종묘의 은괘를 파내는 등의 실정을 연이어 벌인다. 이에 민비는 서서히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민비는 고종을 조종하면서 대원군의 섭정을 끝내고 급기야 정권을 장악하게 되고 이어 신식군대의 양성으로 국력을 정비하고 나서나 이에 불만을 품은 구식군대가 대원군의 조종 하에 임오군란이 일어난다. 민비는 조승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다시 청나라와 힘을 합하여 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나 그 뒤 동학의 난, 청일전쟁 등으로 나라의 운명은 자꾸 기울어 간다. 이에 민비는 다시 강국 러시아와 손을 잡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일본이 민비의 시해를 모의한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조승구가 민비를 보호하려고 나서나 결국 민비는 일본낭인들에 의해 처참하게 시해된다.
이 영화는 수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최은희, 김승호를 위시해서 김진규, 박노식, 이민자, 남궁원, 한은진, 전계현, 황해, 전옥, 허장강, 이예춘 등이 총 출연한다. 그리고 1964년 대종상에서 여우주연상(최은희), 남우조연상(박노식) 등 4개부문 수상을 했으며 당시 권위가 컸던 13회 아시아영화제에서 역시 여우주연상(최은희), 남우조연상(박노식)을 수상했다. 사극이지만 민비와 정혼한 조중구(김진규)와 민비의 수호천사인 조중구의 동생 조승구(박노식)는 허구이다. 이 작품의 큰 줄거리는 쇄국을 외치는 대원군과 신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민비의 대결상이다. 또 여성이 정치력을 발휘하는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던 강한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고 조선 말 국내 정채세력들의 갈등과 외세 개입 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1960년대 중반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던 웅장한 대형화면인 시네마틱 스펙을 사용했고 주연인 최은희와 김승호의 연기 대결은 최고였다. 아울러 조선말기 궁궐과 전투장면 등의 세트와 스케일은 상당한 수준이었으며 정윤주의 음악과 임희재와 이서구의 각본은 수준급이었다. 이 영화의 두드러지는 점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밀도 있게 집약했으며 제법 재미가 있는 정치드라마였고 또 칼라와 웅장한 화면 등의 시각적 효과가 대단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스케일이 큰 만큼 사적인 사실들의 디테일한 표현이 부족하고 스토리가 복잡하게 전개되다 보니 각 캐릭터들의 내면 연기나 감정 교감 등을 강화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점 등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당시의 제작 환경을 생각해 본다면 놀랄만한 대형 스케일과 임원식의 탄탄한 연출력이 두드러진다. 또 최은희가 연기한 명성왕후의 강인한 여성 캐릭터와 정치적 역량과 갈등의 서사는 지금 와서 이 영화를 봐도 만족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어릴 때 본 대형 사극의 전형으로 지금도 내 머리 속에 그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