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의 장사도를 찾아서-3일차
여행 3일차 마지막 날이다. 숙소에서 나와 짐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 다른 일행은 버스기사에게 숙소가 너무 추웠다고 항의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방도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까지는 언어 도단인것 같았다. 마치 터미널 광장에서 승수의 구령으로 아침 체조를 하였다. 몸이 좀 가벼운 느낌을 받았다. 역시 어제처럼 기사님 부부가 우리를 반기며 쌍화탕을 따끈하게 끌여 주었다.
이 부부는 이익보다는 베푸는 낙으로 이 관광업을 한다는 일화를 지인이 소개했다. 큰 박수를 받았다. 다시 일행들과 어제의 식당에서 미역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니 속이 확 풀렸다.
버스는 또 달리다 꿀 빵이 이곳의 대표적인 것이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팔천원짜리 꿀 빵을 샀다. 버스는 다시 달려 거제도의 가베항으로 달렸다. 이 항구는 거제도의 남쪽에 있는 어항으로 이곳에서 장사도 해상국립공원으로 가는 배를 타야만 한다.
‘온누리호’ 라는 배에 다른 일행들과 함께 약 100여명이 타고 ‘별에서 온 그대’의 영화 촬영지이며 자연과 공전한다는 장사도로 달렸다.
장사도는 통영시와 어느 기업의 공동 투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관광지화한 섬이다. 이곳은 해발 108미터의 높이에 길이 1.9KM로 아주 작은 섬이다. 이곳은 원래 14채의 민가와 83명의 주민이 살았다. 지금은 다 왜지로 떠나고 아무도 살지 않는다. 특히 이곳 장사도에 작은 초등학교 분교와 작은 교회, 섬아기집 등은 옛 건물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다.
10만여 그루의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와 천연기념물인 팔색조, 동박새와 풍란, 석란은 장사도의 자랑거리로 유명하다. 이 섬은 누에를 닮았다고 하여 누에잠, 뇌비섬 등으로 옛 부터 불렀다고 한다. 장사도는 자연 그대로 개발한 섬으로 보존 활용가치가 높은 자연친화적 해상공원의 일부이다.
이곳 건축물은 나무가 없는 빈 공지를 이용하여 건축되었다. 특히 건축물의 재료나 돌담, 길은 섬 내의 산석을 이용하여 옛길을 복원하고 지형지물을 잘 활용한 아름다운 섬이다. 약 2시간의 관광코스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출항항구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입항항구와 출항항구가 다르다. 코스대로 음직이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출항항구에 도착하니 우리를 태우고 갈 배가 12시에 도착하였다. 제한된 시간 내에 남도의 아름다운 장사도의 자연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 참 좋았다. 그러나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가베항에 다시 회항하여 식당으로 점심을 하러갔다. 점심 또한 우리의 입맛에 맞는 매운탕이다. 우리 일행 옆에는 광명에서 왔다는 노인 4분이 앉아 식사를 하며 소주를 한 잔씩 했다. 친구가 그 술 좀 이리 보내라하여 무심코 할머니들이 먹던 소주병을 옮기려다가 할머니에게 혼이 났다. 왜 남이 먹는 술을 가져가느냐며 화를 내는 것이다.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이곳 거제도의 가베항에서 오후 2시경에 버스를 타고 귀향길에 올랐다. 무려 9시간이나 소요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쪽 끝에서 올라오는 길이라 멀기는 멀었다. 올라오는 길에 여흥의 시간이 좀 있었다. 희망자에 한해 가요를 불렀다. 나는 노래 재주가 없어 부르지를 않고 집사람이 불렀다. 나머지 시간은 웃음 치료사인 승수 친구가 노래와 하모니카, 우수께 소리, 만담 등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지루한 줄 모르고 버스에 있다보니 수도권에 들어왔다. 퇴근 시간과 맛 물려 차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9시경 역곡역에서 하차하였다. 양손에 등에 기념품으로 산 물건을 들고 집에 오니 밤10시가 다되었다.
이렇게 2박 3일의 여행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을 통해 3가지의 가르침을 얻었다. 먼저 운전기사 내외의 헌신적인 봉사의 정신이다. 우리가 낸 여행경비로는 도저히 이익이 남을 것 같지 않았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45인승 버스에 44명의 사람들이 탑승하였으니 말이다.
내일도 2박 3일 다음 날도 모두 예약이 되어 있단다. 봉사와 헌신, 베품과 나눔의 정신을 배운 것이다. 우리나라 안에도 좋은 여행지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구태어 돈을 드려가며 해외여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남해 국립해상 공원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푸른 바다와 푸른 산에 맑은 공기가 더했다. 바다의 물위는 해양 자원을 양식하는 어부들의 바쁜 일손이 음직이며 오히려 관광을 다니는 우리가 미안 할 정도였다. 특히 바다에 떠있는 섬은 마치 풍선이 떠 있는 것처럼 아름답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 세계 해전사상 유례없는 승전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곳곳에 망루와 적의 침략 루투를 찾아 적을 물리친 장군은 정말로 우리 민족이 우러러 볼 인물이다. 이 땅에 장군과 같은 인물이 또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으로 여행은 건강할 때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들고 몸이 허약하면 여행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호흡기가 나뿐 나로서는 즐거움 반에 고생이 반이였다. 친구들은 힘차게 산을 오르고 정상에서 여행의 기쁨을 만끽하는 데 나는 뒤로 쳐져 중도에 하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 집사람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몰랐다.
그러나 이해 해주는 나의 동반자와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해서 나의 보조에 체력에 맞추어주고 나는 뒤따라가며 호흡을 조절하며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몸 관리를 더욱 잘해서 오래도록 친구들과 여행을 하며 건강한 노후를 보냈으면 하는 바램을 더욱 느꼈다. 우리 모두 노후에 건강한 몸으로 우정을 다지며 지내자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