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저녁 때 오는 비는 술추렴 문자같다
골목집 들창마냥 마음 추녀 죄 들추고
투둑, 툭, 젖은 섶마다 솔기를 못내 트는
누추한 추억의 처마 추근추근 불러내는
못 지운 눈빛 같다 다 저녁 때 드는 비는
내 건너, 부연 등피(燈皮)를 여직 닦는 그대여
-정수자 ‘저녁비’
“인생의 기간은 결코 짧지않으므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찾아야 하며,
자기에게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므로 죽을 때까지 삶을 지탱하기 위하여 사랑과 일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ㅡ괴테
[시ᆞ골ᆞ남]
장진주사 / 성선경(1960~)
살구꽃 피면 한잔하고 복숭아꽃 피면 한잔하고
애잔하기가 첫사랑 옷자락 같은 진달래 피면 한잔하고
명자꽃 피면 이사 간 옆집 명자 생각난다고 한잔하고
세모시 적삼에 연적 같은 저 젖 봐라
목련이 핀다고 한잔하고 진다고 한잔하고
삼백 예순 날의 기다림 끝에 영랑의 모란이 진다고 한잔하고
남도의 뱃사공 입맛에 도다리 맛들면 한잔하고
봄 다 갔다고 한잔하고 여름 온다 한잔하고
초복 다름 한다고 한잔하고 삼복 지난다고 한잔하고
국화꽃 피면 한잔하고 기울고 스러짐이 제 마음 같다고 한가위 달 보고 한잔하고
단풍 보러 간다고 한잔하고 개천은 개벽이라 하늘 열린다고 한잔하고
입동 소설에 첫눈 온다고 한잔하고 아직도 나는 젊다고 한잔하고
아랫목에 뒹굴다 옛시를 읽으며 한잔하고
신명 대접한다고 한잔하고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한잔하고 또 한잔하고
그런데
그런데
우리 이렇게 상갓집에서나 만나야 쓰겠냐고
선배님께 꾸중 들으며 한잔하고
아직도 꽃 보면 반갑고
잔 잡으니 웃음 난다고
반 너머 기울어진 절름발이 하현달.
ㅡ감자전 입니다.
어머님이 농사지으신 감자를 선물했더니
우보가 맛나게 먹겠다고 보내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