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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야우(毛山夜雨)
함석헌
1974년 10월 6일 모산에서 이 글을 씁니다.
씨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누렇게 익은 온 들의 나락을 바라보며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넓은 들에 익은 씨알
황금 물결 뒤치며
간 데마다 태양 볕에
향기 피어 오른다
무르익은 저 이삭들
낫 기다려 숙였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거둬들이자
좋습니다. 참과 거짓의 판가름이 나서 불볕의 시련 속에 떨던 연한 양심들이 뺨을 스치는 산들바람에 감격과 찬송의 눈물을 흘리는 때입니다.
일의 결과가 나타나서 이끈 사람 따르던 사람이 네 공 내공을 주장하기를 잊고 다 같이 감사와 새 창작의 영감에 즐거워하는 때입니다.
악착스럽게 갉아먹던 버러지도 서리 한 칼에 그 흉악이 끝이 나고, 썩어지는 그 시체를 그 뿌리에 거름으로 바쳐 지은 죄를 속하는 동시에 새로운 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때입니다.
넓은 천지에 번듯이 내놓는 평화주의를 옳다구나 악한 기회로 이용하여 얼굴 두껍게도 남의 수고의 결과를 이유 붙여가며 도둑 강탈해 먹던 권력주의자들에게도 또 한번의 회개의 기회를 주려고 흐리터분한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유난히 밝아 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제 그림자가 스며들게 말을 하는 때입니다.
여러분 숙인 고개를 번쩍 들어 까만 하늘을 우러러보고 목에 선뜻 와 닿는 낫날을, 쾨니히스베르히의 성자같이 “이거 참 좋다!” 하며 받으십시오. 죽음이 영원한 생명이 되고 애착이 영겁의 벌이 되는 때입니다. 무르익은 사과는 뉴톤에게 영원불변의 진리를 가르쳤고 삼 년을 못 떨어지고 가지에 매달려 있는 밤송이는 오고 오는 세대에 경계거리가 됐습니다.
든다면 잘 들 내 낫
풀 속에 묻어 둠은
들 줄을 몰라서랴
날 아껴 함이로다
갈 날엔 선들선들한
내 낫 듦을 보오리
여러분 알이 들었습니까? 익었습니까?
기름을 준비했습니까? “기름!” 하는 한마디에 세계를 발끈 뒤집어놓는 이른바 유류파동의 뜻을 아십니까? 역사의 혼인식에서 텅 빈 등잔만 드는 어리석은 처녀 되지 마십시오.
밤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차디찬 가을 비가 내리는 모산(毛山)의 밤에 나는 이 글을 씁니다.
신랑은 도둑같이 옵니다. 신랑은 말하기를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 때는 언제나 있다”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준비해라!” 했습니다.
여러분의 골을 짜서 그 기름으로 여러분의 텅 빈 마음을 채우십시오.
여기 모산 이란 곳은 천안과 온양 사이에 있는 조그만 촌락입니다. 여기 있는 귀화(龜化)고등공민학교를 내버리는 전 사람에게서 맡아가지고 온 것이 지난해 이맘때 조금 전입니다. 맡아야 할 까닭이 반드시 있던 것도 아니요, 맡고 싶어서 맡은 것도 아닙니다. 가져다 맡기니 그저 맡은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떠돌아다니던 궁감투를 맡아서 마저 써서 본래 쓴 것 위에 겹으로 쓴 셈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 말의 장본인인 돌아가신 조만식 선생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쓴 감투를 바로잡습니다.
궁감투인줄 첨부터 알았지 모른 것 아닙니다. 이미 쓴 것만 해도 뼈에 사무치게 힘에 겨운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감히 못 쓰겠다고 떠밀어 내지 못한데 나의 궁감투의 자격이 있습니다. 결코 무슨 비장한 각오라도 있단 말 아닙니다. 언제나 분명히 짜를줄 모르는 내 잘못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쓴 이상은 또 내 손으로 그것을 벗겨버리지 못하는 것도 나입니다. 역시 가져다 씌울 때 그랬듯이, 벗을 때도 또한 벗겨주시기까지는 나의 못났음을 발휘해야 옳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거기 또 겹 궁감투 쓰는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이왕 쓴 이상은 벗겨주시는 때까지 못났음을 드러내보자는 생각에 요새는 주마다 하루 이틀씩 여기를 옵니다. 오늘 온 것은 내일 학생들이 수덕사에 소풍을 간다고 하기에 거기 따라가려고 온 것입니다. 궁감투는 써도 아이들은 그저 좋습니다. 아마 당초에 겹 궁감투의 조상이 된 초학훈장도 그래서, 아이들이 그저 좋아서, 그리 된지도 모릅니다.
언제까지나 아이들만 좋다는 마음은 확실히 정치는 못할 것입니다. 정치한다는 사람들 보십시오. 저 사람도 일찍이 아이였던 일이 있나, 또 아이들을 길러본 일이 있나, 의심 나리만큼 어른인척 하려하고 건방지고 무정하고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입니다. 나는 그래서 정치가 싫습니다. 나는 죽음 죽었지, ‘일벌백계’(一罰百戒)를 방패로 내세우며 앞날이 바다를 내다보는 강물 같은 젊은 목숨을, 설혹 죄가 있다 한들,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놈의 말에는 귀를 기울여 보잔 생각도 없이 어찌 내 생각만 절대화 할 수 있습니까? 남들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라고까지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아이들과 놀 줄 아는 정치가여야 참 큰 인물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래서 황희(黃熹) 황정승을 존경합니다. 종의 자식들도 그 무릎에 올라가 수염을 끝틀며 놀았다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삼가(三可)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딸 삼형제가 치마 하나를 가지고 바꿔입는 이야기는 그만 두고라도, 그 밖의 무슨 이야기를 다 그만두더라도, 내가 어려서 초등소학에서 듣고 잊지 못하는 젊은 김종서(金宗瑞) 꾸짖던 이야기 하나만 가지고도 큰 인물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어떤날 승지로 있던 젊은 김종서가 점심상을 차려가지고 왔다 해서 그것은 규례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몹시 꾸중을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히 했던지 맹사성(孟思誠)이 옆에서 듣다 못해 “종서는 장래가 유망하다고 상하가 다 칭찬을 하는 사람인데 약간한 잘못이 있기로서 너무 그렇게 책망을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냐” 하는 의미의 말로 말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대답이 참 놀랍습니다. 나도 그것을 모르는 것 아니나 ‘연소예기(年少銳氣)하여’ 혹시라도 다음날 큰일을 그르칠까 두려워 그것을 꺾어 “종서를 온전한 옥 같은 그릇으로 만들기(玉成宗瑞) 위해서” 하는 일이라 했답니다. 그리고 사실 후에 종서를 자기 후임으로 천거했습니다. 그러니 참말 큰사람 아닙니까? 오늘날은 책망을 한즉 감정이 털끝에 오르고 벌을 한즉 나라 생각보다 보복주의가 묻기 전에 그 처사에 환히 들여다보입니다. 그것은 큰 것이 못됩니다. 나라는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는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안됩니다.
아, 황정승 같은 인물은 이 나라에 또 좀 못 날까?
두고두고 의붓자식 대접만 받아온 이 씨알들에게, 새 시대는 왔다는데, 채는 더 굵어만 가고 줄은 더 조여 틀리기만 하니, 오 하나님, 이게 웬일입니까?
씨알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심정을 알고 아이들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어른 정치가 아닌, 아이 정치가를, 천하를 좀 둬둘 줄 아는 정치가를 좀 보내주시구려!
모산의 아이들은 아이들 중에서도 아이들입니다. 집이 가난합니다. 씻어 논 조약돌같이 반들반들한 도시의 어른의 축소판 아이들이 아닙니다. 방금 캐논 고구마 같은 흙 냄새 나는, 흙 냄새 나기 때문에 하늘 냄새나는 아이들입니다. 그것과 함께 놀라고 이 궁감투를 겹씌운지도 모릅니다.
모산이 무슨 뜻인지 물어도 아는 이 없습니다. 혼자 생각하다 못해 태산일모(泰山一毛)라는 뜻인가 내 나름대로 풀어보았습니다. 소동파가 적벽강에서 놀며 “그 변하는 편에서 본다면 천지도 한 눈깜짝이에 지나지 않고 그 변하지 않는 편에서 본다면 몬도 나도 다 끝없는 감춤이다” 했지만, 그 식으로 한다면 태산도 한 터럭이요 한 터럭도 태산입니다. 무엇을 정치하는 어른들처럼 그 큰데 취해 미쳐 돌아가겠습니까?
모산에 자랑거리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맹사성이 있을 뿐일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맹사성의 이름을 황희 김종서와 함께 단 한번 들었을 뿐이고 그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서울과 고향 사이를 소를 타고 다녔다는 것뿐인데 웬일인지 그 이름을 못 잊습니다. 그런데 이제 인생의 저녁에 그가 살던 곳엘 와 있게 됐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학교에서 오리도 못되는 골짜기에 그의 사당이 있습니다.
나도 그처럼 소를 타란 말인가? 고불(古佛) 노릇을 하란 말인가? 참말 탈 수만 있다면 소를 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산 속으로 들어갔음 좋겠습니다. 이 시끄러운 문명에 구역질이 나 못 견디겠고 이 너무도 잘산다는 꼴에 화나서 못살겠습니다. 그러나 매월당처럼 서서 오줌은 못 갈기더라도 소등에 천년 늙은 부처처럼 앉아 건들건들 한 절반 졸며 종로, 명동을 지나간다면 그 얼마나한 웃음거리가 되겠습니까? 학생들은 데모를 한다지만 나는 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한번 웃겨줬으면 좋겠습니다. 웃어서 웃어서 배꼽을 부러쥐다 못해, 허리가 끊어지고, 눈물 콧물이 한데 얽혀 눴다 일었다, 두 팔을 들어 땅을 치고 두 다리를 치켜 곤두박질을 해, 거의 인사불성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 그들의 병이 떨어질 것입니다. 이들의 병은 숨통이 좁아지고 신경이 과민하다 못해 마비된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웃어도 입곁으로 해해하고, 울어도 눈꼬리로 찔끔찔끔하 고, 노하면 잇새 바람으로 쌕씩하고 싸운대도 손톱 발톱으로 할퀴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똥구멍 파는데 때가 너무 껴서 옅은 상처를 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본성을 잃었습니다. 작고 옅고 좁아졌습니다. 이것을 고치려면 온몸에 진동을 주어 세포의 갈피갈피 속에 숨은 찌꺼기를 몰아내고 모든 마비되고 굳어진 신경을 풀어 연하게 해야는데, 그렇게 하려면 저 생명의 밑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한번 힘껏 웃어보는 것이 제일입니다. 이 처방은 벌써 백 년도 더 전에 칼라일이 한 것인데 이때껏 한번도 써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천년 묵은 역사의 고질이든 이 민족에 이 처방을 한 번 써봤으면 합니다.
그러나 안될 것입니다. 한 발걸음을 못 나가서 자동차에 치어버리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일사불란’(一絲不亂)을 금과옥조로 알고 ‘근대화’를, 민족의 대부분을 희생하면서라도, 해야 하는 사명으로 내세우는 이 정부의 법이 허락을 하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내가 아이들이 좋다는 것은 그들이 내 마음의 동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갈수록 쓸쓸합니다. 반드시 하는 일이 뜻 같지 않아서만 아닙니다. 둔한 내 마음에도 앞이 차차 엷어져서 조금 뚫어보기 시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내 마음에 호수처럼 되어주는 것은 골목의 아이들입니다. 나 혼자는 모퉁이마다에서 울다가도 그들 사이에 들어서면 마치 호수에 든 시냇물같이 그저 고요요 편안입니다. 무슨 말 하나 아니해도 좋습니다. 지나가면서 흙 장난에 취하는 그 머리를 한번 가볍게 툭 다쳐만 봐도 됩니다. 숫 병아리 처럼 분통을 들먹거리며 마주서는 둘 사이에 턱 들어서면서 “이놈 그러지 마” “그럼 안돼” 하며 후들후들하는 뺨을 한 번씩 만져만 줘도 됩니다. 그러면 “할아버지, 싼타 할아버지” 하고 따라옵니다. 어떤 놈은 아주 “함석헌 할아버지” 하기도 하고 문간에 와서 할아버지의 친구가 왔다고 전갈을 놓는 놈까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모든 슬픔이 다 사라집니다. 어느 개선장군도 부럽지 않습니다. “내가 이겼다!”합니다.
근래는 날마다 죽는 공부를 합니다. “멀지 않아서 죽는 날이 올 터인데” 하고 자주자주 생각합니다. 별로 싫은 생각도 무서운 생각도 아직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별로 애끓는 느낌도 아니지만, 반드시 생각나는 것이 그들입니다. “이 골목에서 내가 슬쩍 없어지는 날 그들은 어쩔까? 별로 놀라지도 않을 것이요, 곧 잊어버리겠지” 자문자답을 하며 아침에 골목길을 나가고 저녁에 또 그 길을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잊어도 나는 그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 전 남산에 가서 이틀 동안 참선을 하고 왔습니다. 정말 참선입니다. 골목의 친구들과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데 거기 사람들과는 참 통치 않았습니다. 이치가 통치 않았습니다. 논리도 소용없었습니다. 통치 않는 문답을 자꾸 거듭하면 자연 신경이 흥분합니다. 흥분 하면 아니되겠기에 참습니다. 대답해도 못 알아듣겠기에 잠잠합니다. 잠잠하면 왜 대답이 없느냐고 찌릅니다. 그래도 잠잠하긴 참 힘듭니다.
그래 정신을 모으고 참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나타나서 내 옆에 있어 주는 것은 그 골목의 대장들이었습니다. 세계를 한집으로 만들려거든 어린이로 정치를 하라 할 것!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 군대가 필요하다면 어린이 군대를 둘 것!
골목의 코흘리개들이 마음의 동무라는 말은 늦으막에 친구 없단 말입니다. 친구들이 들으면 무척 섭섭해 하겠지만 그것이 생사선(生死線)을 걷다가 그 끝이 가까워지는 이날에 속임 없는 나의 심경입니다. 나무라는 말 아닙니다. 내 잘못 때문에 친구들을 섭섭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설혹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개인과 개인은 이해가 거의 절대 불가능이라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지금 안양에 가서 안심(安心) 양성(養性)을 하고 있을 김동길 박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지난날의 여러 가지 슬픈 경험을 고백했더니, 그는 한마디로 “선생님은 사랑 아니하고는 못 사시는 분 아닙니까?”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한마디로 “그렇소” 했습니다마는, 사랑 아니하고는 못산다는 사람이 마음의 친구가 없다는 것은 모순이요 비극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하려 했기 때문에 친구를 잃은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세상에 참사랑 없습니다. 그럼 사랑하지 말까? 아닙니다. 아니하려 해도 아니하지 못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데 운명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이란 말은 대개의 경우 거짓말로 끝나버린다. 그러므로 사랑이라기보다는 우정 정도로 지내는 것이 좋다” 한 칼ㆍ힐티의 말은 참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우정 곧 친구라는 데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동지라는 의미고 또 하나는 지금 말하는 마음의 동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동지란 곧 참을 지키는 일이므로 그것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거짓으로 끝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동지없이 살아야느냐 하면 절대로 아닙니다. 참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힐티가 어떤 뜻으로 했는지는 모르나 내 생각으로는 그 우정이란 마음의 동무라는 편으로 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것은 결코 사랑과 참을 우리 의무에서 뽑아 인생을 헐값으로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도리어 지기 어려운 짐을 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마음의 동무는 사랑같이 넓지도 못하며 뜨겁지도 못하고 참같이 높지도 못하며 차지도 못하지만 연약한 인간의 마음으로 하여금 능히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인생길을 걷게 하는 밑바닥 혹은 분위기가 됩니다. 길동무가 반드시 내 가족도 아니요 내 가는 길을 다 아는 것도 아니되 내게 먼 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듯이 마음의 동무도 반드시 내 사랑도 아니요 동지도 아니지만 나로 하여금 사랑을 하고 참을 하려다가 실패하고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그들은 알아주는 마음 곧 동정과 이해로 그것을 합니다. 동정과 이해라니, 다른 것 아닙니다. 인정입니다. 사람이 무엇에 끌려 지어먹은 마음 없이 자연스럽게, 마음씀이 없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제 바랄대로의 태도입니다. 별로 깊은 것 같지 않으나 깊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둘러쌀 수 있습니다. 별로 맛있는 것 같지 않으나 맛없기 때문에 모든 맛의 근본이 됩니다. 새는 하늘에 놔 줘야 새 노릇을 하고 고기는 바다에 놔 줘야 고기 노릇을 하듯이 사람은 전체 삶 속에 놔 줘야 사람다워집니다. 인정의 바다 속에 어린이가 내 마음의 동무가 되는 것은 그들은 선도 악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의 동무가 될 수 있는 것은 나는 권력과 돈과 꾀에 싫증이 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의 바다에서 서로를 잊고 놉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창밖에는 비가 그냥 옵니다. 가을비라면 보통 묵은 상처를 건드리듯 쓰라린 것인데, 이것은 거의 봄비같이 소리도 없이 옵니다. 고요합니다. 산정사태고(山靜似太古)의 옛 글귀가 자연 이끼처럼 피어납니다. 태고국사(太古國師)의 청풍취태고(淸風吹太古)의 귀도 소리없는 바람처럼 들려옵니다. 태고, 태고, 저 빗소리가 역사의 발자욱 소리던가, 이 바람이 우주의 숨이던가?
육유(陸游)의 동야청우희작(冬夜聽雨戯作)이란 시가 있습니다. 겨울밤에 빗소리를 들으며 장난삼아 중얼거려본단 말입니다.
요첨점적여금축(遶簷點滴如琴筑)
지침유재청시기(支枕幽齋聽始奇)
억재금성가취해(憶在錦城歌吹海)
칠년야우불승지(七年夜雨不曾知)
처마를 둘러 떨어지는 낙수 물소리 제법 거문고를 뜯는 것과도 같구나. 깊은 방에서 베개에 기대 들어보니 이렇게도 흥겨운 줄 첨으로 알았네. 생각하면 금관성에 벼슬살며 노래 춤의 바다에 떠서 지냈을 때 칠 년의 긴 세월을 지내면서도 밤비 소리가 이렇게 맛있는 줄을 몰랐었지.
하는 뜻입니다. 나는 벼슬을 사는 것 아니면서도, 노래 춤에 취하는 것도 아니면서도 서울 사는 17년 동안 이렇게 조용하게 밤비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내 살림의 잘못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더 큰 원인은 이 시국 바람에 있다 해야 할 것입니다. 나만 이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그럴 것입니다. 밤비 소리에 귀를 기울일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래 이렇게 거칠고 사납고 매정하고 더러운 사회가 되겠습니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오직 권력과 돈의 자료로만 보는 정치 바람이 아니었던들 그래 그렇게까지 마음의 여유를 잃었겠습니까? 매일같이 일어나는 강력범을 보고 새삼 탄식들을 합니다만, 강력범과 강력정치는 결코 서로 딴 뿌리에 난 나무가 아닙니다.
단호(斷乎), 단호(斷乎), 엄벌(嚴罰), 엄벌(嚴罰)만을 부르짖는 정치인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밤비 소리입니다. 오늘같이 노래, 춤이 거리에 넘친 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인심이 이렇게 사나운 때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라, 라디오, 텔레비의 확성기가 떠들어대는 것은 인심이 평안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인심이 평안하면 시냇물 소리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유행 잡가로 떠들어대지 않습니다. 인심의 법칙을 모르고 정치를 하는 것은 물살을 모르고 배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의 자식이 우격다짐으로 사람이 안된다면 나라의 민중은 더욱 그렇습니다. 국민이 밤비 소리를 듣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정치가 저절로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필시 그들은 그럼 공산침략도 밤 비만 오면 물러가느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언어도단(言語道斷)입니다. 대답의 길 없습니다. 잠잠할 뿐입니다. 예수도 그래 잠잠했고 소크라테스도 그래 대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예수와 소크라테스의 편 을 들었지 정치가의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씨알 여러분 내가 여러분께 정치 강의를 하자는 것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인생과 역사를 건질 것은 우리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삯군의 일이지 목자의 할일이 아닙니다.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살아도 내 나라 죽어도 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아무리 잘못돼도 나라의 그루터기까지는 뽑아먹지 못합니다. 불에 타도 남는 것은 나라의 그루터기입니다. 거기 물을 주어 소생시키기 위해 여러분께 밤비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강력 정치에도, 그 정치에 희생되어 강력범이 된 자에게도 마음의 동무가 되어주십시오. 그것이 죽은 그루터기 소생케하는 물입니다.
나는 감히 여러분을 사랑한다고도 동지라고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마음의 동무는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알아주고 서로 위로해줄 수 있습니다.
그럼 삽니다.
씨알의 소리 1974. 10 37호
전작집; 8- 209
전집; 8-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