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묘유의 조화, 즉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진리의 작용은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다.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고양이를 통하여서는 고양이대로,
개를 통하여서는 개대로,
저 사람을 통하여서는 저 사람대로,
이 사람을 통하여서는 이 사람대로,
보통급을 통하여서는 보통급대로,
특신급을 통하여서는 특신급대로,
항마위를 통하여서는 항마위대로,
출가위를 통하여서는 출가위대로,
공부인의 수행정도를 따라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지금 여기서 은현자재하는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다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며
주위의 모든 사람의 일동일정(一動一靜)이 다 그렇다.
선한 사람은 선한 대로 악한 사람은 악한 대로......
웃을 자리에 웃을 줄 알고 울 자리에 울 줄 아는 것이
바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이다.
웃을 자리에 웃지 못하거나
웃을 자리에 운다면 이는 미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 미친 사람도 그 사람의 입장(정도)에서는
또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이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다면
왜 우리는 신앙을 하고 수행을 해야 하는가?
바로 혜복을 구하기 위함이요, 진급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마음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파란고해에서 허덕이게 된다.
그러므로 원만구족하과 지공무사한 마음을
믿고 알고 기르고 잘 사용하여
광대무량한 낙원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다만 나 자신만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내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서 남을 변하게 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남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
내가 변할 때 주위가 변한다.
세상도 변한다.
내가 행복하면 세상은 그대로 낙원이요,
내가 불행하면 세상은 그대로 지옥이다.
상대방은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진리의 작용
그대로 행동한다.
내가 이렇게 대하면 이런 반응을,
저렇게 대하면 저런 반응을......
나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창조적인 권능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바로 천권을 갖다 쓰는 것이요,
진리의 주재자가 되는 것이다.
바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마음을 잘 사용함으로써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거울을 보고 내가 어떤 행동이나 자세를 취하면
거울에 비친 영상이 똑같은 행동이나 자세를 취한다.
이처럼 나의 심신작용에 따라 상대방도 변화된다.
내가 화를 내면 상대방도 화를 내고
내가 웃으면 상대방도 웃는다.
나는 상대방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부처의 권능이 있다.
상대방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부처의 권능이 있기에
경우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급인 사람에게 특신급이나 법마상전급에 해당되는
행동을 바랄 수는 없다.
또한 고양이더러 개처럼 '멍멍' 하고 짖으라고 안될 것이다.
하지만 보통급인 그 사람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기 때문에
수행정도에 따라 특신급에 승급하여 특신급의 행동을 할 날이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고양이도 다음 생(生)에는 개의 몸을 받아
'멍멍' 소리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바라고 강요하면 서로 상처를 입게 된다.
우리는 나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비로소 상대방의
배타적이로 공격적(또는 방어적)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훈훈하게 풀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내 안에 모든 게 다 갊아 있다(원만구족).
다만 우리가 신앙하고 수행하는 것은 갊아 있는 그대로
나투어 작용하도록 하기 위함이요(지공무사).
그러나 알고 보면 작용하는 이대로가 바로
지공무사한 것이다.
"천지하감지위......"
라고 할 때도 사실은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은이
밖으로 그대로 나툴 수 있도록 비는 것이다.
사은이 바로 나인 것이다.
따로 저 밖에서 나에게 오는 게 아니다.
신앙의 대상도 수행의 표본도, 사실은 이미 내 안에 있고,
바로 나인 것이다(정전 일원상의 수행에서).
'아니다' 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것이 곧 소아(小我)이며
그 때는 이미 소아, 대아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소아, 대아가 둘이 아니다.
원만구족 = 진공(眞空) : 분별(성), 주착(심)이 끊어진 자리,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의 본체(本體)자리
일체가 비어버리니
'참'이 가득하다, 없는 것이 없이 가득하다.
지공무사 = 묘유(妙有) : 그 작용이 본체를 여의지 않아
사사로움이 없이 지극히 공변됨(中道).
첫댓글 4월 중순부터 시작한 작업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책에 나와 있는 좋은 말씀과 내용을 다 기억해서 똑같이 실천할 순 없지만
그 마음이 향기처럼 전해져서 앞으로 제가 신앙생활하는데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봅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ㅎㅎ
좋은글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견해를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시는 워니님이 부럽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원희님` 영생을 두고 이렇게 소중한 법을 대하고 만나고 공부할수 있음이 큰 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