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회 지음 _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세계의 커피 농장들
- 베트남 달랏의 커피 농장
- 인도네시아의 커피 농장
- 탄자니아의 커피 농장
- 콜롬비아의 커피 농장
커피는 적도를 기준으로 커피벨트라고 불리는 남·북회귀선(23.27도) 사이에서 자라는 독특한 농산물이다. 우리나라는 북위 33~43도에 위치해 있어 기후상 커피가 자라기에 적합하지 않다. 강릉이나 제주도의 커피는 온실에서 사람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 자라는 것으로 여기서 말하는 노지 커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일부 커피 선각자들이 코라비카 (코리아 아라비카의 줄임말)를 꿈꾸며 한국의 기후에 맞는 품종 개량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요원한 이야기로 커피 관련 관광 상품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한국에서 커피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커피 산지를 다녀오지 않았다. 커피가 어떻게 자라는지 책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직접 보고 체험하지 않고는 한 알의 커피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커피 농장을 찾아서 전 세계를 헤맨 이유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쌀장사를 하는 사람이 벼농사 지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면, 쌀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쌀을 생산하는 농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커피 관련 산업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커피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커피 산지에 한번 가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우리가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곳을 다녀온 후에 커피를 대하는 마음은 이전과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벼농사 지역에서 지은 밥이 더 맛있는 것처럼, 커피 농장에서 최근 수확한 커피로 내린 커피 한 잔이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맛과 분위기를 선사할 것이다. 더욱이 눈앞에서 ‘커피 세리머니’라도 펼쳐진다면, 그 어떤 의식보다 경건함과 황홀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커피 공부를 하면서 항상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은 ‘뭔가 부족하다’였다. 커피를 일생의 업으로 삼겠다 했으면서 정작 ‘커피가 어떻게 자라는지, 그곳의 환경과 분위기는 어떠한지’ 눈으로 보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전 세계 커피 농장을 내 두 발로 찾아가 보고 경험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커피 농장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뿐 아니라 그 어느 커피 책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스스로 물어물어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커피 농장은 지리적으로 도심으로부터 적게는 다섯 시간, 많게는 열 시간 이상 떨어져 있어 접근하기가 녹록하지 않았다. 쉽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 만큼 세계 각 지역의 커피 농장은 저마다 독특한 자연환경과 특징을 가지고 있어 지역 마다 보는 재미가 있었으며 그만큼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베트남 달랏의 커피 농장
베트남이 부동의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난 핸드드립커피 전문점에 가도 베트남 커피는 찾아보기 어렵다.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커피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은 로부스타 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라비카 종과는 달리 쓴맛이 더 강하고 카페인 함량이 높아 대부분 인스턴트커피 재료나 에스프레소 블렌딩 용으로 쓰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원두 가운데 베트남 커피가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소비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방문한 커피 농장은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지이자 남부 고원지대인 ‘달랏’에 위치해 있었다. 베트남 커피는 19세기 중·후반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졌으며, 베트남 전쟁 이후 국가 중요 산업으로 정해지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품종이 주로 로부스타 종이고 일부 아라비카 종조차도 그 맛과 향이 다른 커피 산지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이다. 내가 방문한 농장들은 해발 800~1,000m에 위치해 있어 로부스타 종과 아라비카 종을 함께 관찰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농장은 가운데에 난 길을 기준으로 좌측엔 로부스타 종을 우측에 아라비카 종을 재배하고 있어 독특한 광경을 선사했다. 로부스타 종의 특징은 아라비카 종에 비해 잎이 넓고 크다는 것인데, 실제로 나무만을 보고 두 종류의 커피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로부스타 종보다는 아라비카 종을 키우는 토양이 더 비옥하고 선명했다.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면서 수확한 생두를 잘못 구분해놓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나의 걱정 어린 궁금증은 가이드의 설명으로 단칼에 해결되었는데, 농장에서는 그런 실수를 막기 위해 수확 날짜를 달리한다고 했다. 전날 로부스타를 수확했다면, 다음날 아라비카를 수확하는 식이다.
인도네시아의 커피 농장
인도네시아 하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언제나 자바 커피다. 세계에서 커피 생산량 4, 5위를 달리는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이유는 자바 커피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 동쪽 끝, ‘이젠’에 위치한 이 커피 농장의 이름은 〈아라비카 Arabika〉였다. 아라비카 종만 생산하기 때문인지 이름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생산하는 과수원 이름을 품종 이름을 따 ‘hongok’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다른 나라의 커피 농장과 달리 이곳에는 농장 안에 마을과 초등학교가 조성되어 있었다. 커피 수확기가 아닌 9월 말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는 딸기 농사를 지어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 또한 독특한 풍경이었다. 이제 막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낯선 이의 등장에 반가워하면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포즈를 취했는데 하나같이 포토제닉 감이었다. 그들의 순수하고 해맑은 얼굴과 표정은 커피 농장을 찾아 14개월째 세상 속을 헤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배낭 여행자에게 위로가 되었다.
해발 1,500m에 위치한 커피 농장은 개인 소유가 아닌 국영 농장으로 농장 사무실에 공무원이 파견 나와 모든 공정을 지휘 감독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확한 커피를 세척하고 선별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이유인즉 자기네만의 커피 공정 노하우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했다. 실제로 사진을 찍는 내내 그들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주시했다. 아마 그는 내가 한국에 커피 농장이라도 세우는 줄 알았나보다.
주소 Fabrik Pengolahan Kopi Arabika Kintamani, Mengani. Kintamani, Kabupaten Bangli, Bali, 인도네시아 |
탄자니아의 커피 농장
“당신은 왜 탄자니아에 갑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일반적으로 세 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첫 번째는 명실상부한 아프리카 최고봉(最高峰)이며,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킬리만자로 산에 오르기 위해서일 것이다. 두 번째는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낙원 중 하나인 응고롱고로 분화구에 가서 사륜구동차를 타고 야생동물을 쫓는 게임드라이브를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세 번째는 잔지바르 섬에 가서 망중한을 즐기기 위해서라는 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한다. 여기에 ‘커피를 만나러 갑니다’라는 대답을 추가하고 싶다.
나 역시 탄자니아에 갔을 때 응고롱고로와 잔지바르에 다녀왔다. 커피 농장은 응고롱고로를 가는 길에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커피 농장 전체에 전기 펜스가 둘리어 있다는 것이었다. 커피 농장에 왜 전기 펜스가 있을까?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동물과 사람 때문이라고 했다. 전기 펜스가 없으면, 동물들이 커피 농장에 들어가 잘 여문 열매를 먹어치워 농사를 망치고, 밤이 되면 사람들이 몰래 커피 열매를 따간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커피만큼 좋은 환금 작물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 하나는 이 커피 농장뿐 아니라 이 지역 커피 농장의 상당수가 서양 자본의 소유라는 것이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노동력만을 제공하고 커피 농장의 수익은 대부분 유럽 등지로 빠져나간다고 했다.
전기 펜스 또한 서양 자본이 아프리카 주민과 동물로부터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무시무시한 장벽인 셈이었다. 실제로 전기 펜스 때문에 아이들이 감전 사고를 당해 큰 부상을 입거나 야생동물들이 죽는다고 했다. 가져가면 얼마나 가져간다고, 커피 농장의 커피나무가 동물원에 유폐된 동물처럼 느껴졌다.
콜롬비아의 커피 농장
현재 커피 종주국은 어디일까? 커피는 서기 7세기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었지만, 오늘날 커피를 대표하는 나라는 콜롬비아가 아닐까 싶다. 내가 콜롬비아를 찾은 이유 또한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콜롬비아는 브라질과 베트남에 이어 부동의 세계 3위 커피 생산국이다. 생산량은 3위지만, 품질 좋은 커피로 따지자면 세계 1위 커피 대국이다.
콜롬비아에서 생산한 수출용 커피는 생두의 크기에 따라 엑셀소, 수프레모 두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즉 생두 크기가 14~16스크린사이즈 (1Sc.=1/64inch)인 것은 엑셀소, 스크린사이즈가 17 이상인 것은 수프레모라고 불린다. 그래서 생두 또한 엑셀소보다 수프레모가 높은 가격을 받는다. 구입한 커피 이름이 ‘콜롬비아 수프레모 우일라’라면, 콜롬비아 우일라 지역에서 생산한 수프레모급 커피라는 의미다.
산타페데보고타에 있을 때 같은 숙소에 머물던 여행객들은 커피 농장에 가려고 한다니까 왜 가냐고 되물었다. 커피 농장에 커피밖에 더 있냐면서, 틀린 말은 아니나 나는 커피 농장에 가서 커피뿐 아니라 농장의 지리적 조건, 농장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주변 환경 등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곳이 콜롬비아였다.
내가 방문한 농장은 마니살레스 지방의 친치나에 위치해 있어 수도인 산타페데보고타로부터 버스로 열 시간 가량을 달려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어렵게 도착한 만큼 그곳은 커피나무가 자라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해발 1,300~1,400m로 최고 품질의 아라비카 종이 자라기에 적합한 고도였으며, 하루 서너 시간을 제외하고는 구름을 이고 있어 강한 태양을 피할 수 있었다. 더욱이 평균 기온이 섭씨 15~21도로 항시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 같아 커피가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연간 1,500~2,000mm의 강수량까지, 커피 재배의 교과서 같은 곳이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커피 농장의 전경은 마치 세상을 온통 녹색 물감으로 칠한 듯했으며, 공기는 맑고 깨끗했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이곳이 커피 신선이 사는 곳인가 착각하게 만들었다.
주소 Hacienda Guayabal, Chinchiná, Caldas, 콜롬비아 |
여행이 끝난 후에도 1년에 한 번 정도 커피 농장을 찾는다. 농장에 가면 커피를 시작했을 때의 초심을 다시 찾을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는 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커피 농장 대부분은 해발 1,000m 이상에 위치하고 있어 사시사철 서늘하고 맑고 깨끗하기 때문에 휴양지로도 그만이다. 평소 읽고 싶은 책 몇 권 들고 흔들의자에 앉아 맛있고 향기로운 커피 한 잔과 함께한다면, 세상에 그보다 더 큰 호사도 없을 것이다.
다음에는 에티오피아에 갈 것이다. 커피의 본향에서 시골 아낙의 커피 세리머니를 감상하고, 거칠고 진한 커피 한 사발을 농부처럼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