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단상 / 조미숙
출판사에서 수필집에 쓸 사진을 보내라고 한다. 변변한 것도 없고 새로 찍자니 그것도 썩 내키지 않아 난 넣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선생님, 더러 그런 분이 있는데 그건 유명한 작가들 얘기고 선생님은 지금 얼굴을 알려야 됩니다.” 이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얼어버리는 내게 사진을 찍는 일은 너무 어렵다. 그냥 눈 딱 감고 20대 사진을 한 장 보냈다. 그것도 얼굴에 화장도 안 하고 등산하다 찍은 거다.
난 찍히거나 찍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디 가서 자세를 취해 보라면 그렇게 어색할 수 없다. 예쁜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 한몫한다.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말은 듣지만 그건 그냥 인사치레라는 것을 안다. 환하면서도 우아한 미소는 힘들고 박장대소라도 하면 큰 입이 참 무참하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자니 화난 표정이다. 가만히 있으면 늘 듣는 소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게 너무 싫다. 사진발 좋다는 소리라도 들으면 좋겠다.
직장에 다니던 20대 시절에 사진을 배워 보겠다고 몇 달 현대 필름 사진 교실에 다녔다. 큰맘 먹고 니콘 카메라를 샀는데 크게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리산에 가서 한 남자를 찍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먼 산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그 사진을 전해 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는데 주소 불명으로 되돌아왔다. 운동권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사람이라 정확한 주소 확인이 어려웠다. 한동안 내 주변에서 사진과 함께 머물렀었는데 어느샌가 사라졌다. 결혼하면서 그 사진기를 가져왔는데 남편에게도 같은 기종이 있어 동생에게 줬다. 수동 카메라라 어디엔가 처박혀서 빛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둘째가 수동 사진을 찍겠다고 가져갔다.
결혼해 아이들을 키우며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생각에 캠코더를 장만했다. 학예회 같은 행사에 가면 다들 사진 찍거나 영상을 담기에 바쁜데 변변한 것 하나 없는 나로서는 꽤 부러웠다. 큰맘 먹고 산 거라 한동안 열심히 들이댔다. 덕분에 그리운 고향 집과 사랑하는 부모님이 영원히 남았다. 아이들이 몇 년 전에 테이프를 복원해 많지 않지만 소중한 기록들이 있어 한동안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했다. 그게 시들해지자 어느 해부터 유행한 디지털 사진기를 샀다. 또다시 그것도 잊힌 물건이 되었다. 아이들도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다. 사춘기가 시작되자 절대적으로 카메라를 피했다. 그때부턴가 인화하지 않는 사진때문에 앨범도 사라졌다.
우리 집에는 집집이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없다. 가족사진은커녕 아이들 돌사진도 변변하게 없다. 큰애만 돌잔치를 해서 그나마 있는데 둘째부터는 아무것도 없었다. 셋째 백일 즈음이 되어서야 사진관에 갔다. 그것도 우리 결혼식부터 함께 한 남편 친구 아버님이 운영하는 동네 사진관에서다. 돌을 훌쩍 넘긴 둘째는 돌쟁이치고는 꽤 성숙해 우습다. 미안하게도 막내는 그때 찍은 사진이 전부다.
아이들 커가는 모습을 꼭 찍어두고 싶었는데 사는 게 바빠 그냥 지나쳤다. 어느덧 아이들은 성인이 돼 버렸다. 늘 아쉬웠는데 몇 년 전에 소원을 풀었다. 막내 군대 입대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명절날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사진관에서 흑백사진으로 말이다. 서툰 자세로 어색한 분위기를 이겨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남편과 둘이 찍으면서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웃고 말았다. 다행히 흑백이라 많은 단점이 가려지고 추억 같은 옛 사진처럼 나왔다. 커다랗고 화려한 것 대신에 아담한 액자로 만들어 탁자 위에 세워 두었다. 항상 남편만 빠진 사진에 드디어 온 가족이 함께였다.
요즘 내 핸드폰에는 순 동식물만 가득하다. 수업하면서 찍은 아이들 사진까지 더해져 사진첩이 미어터진다. 시간 날 때마다 비우기를 하지만 자꾸 쌓인다.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은 별로 없다. 갈수록 각자 생활에 바빠 함께하는 일이 줄어들어 그럴 것이다. 아이들이 클수록 부모는 그만큼 늙는다는 사실이 새삼 뼈아프게 다가온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이 결혼할 시기가 오면 다시 한번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
첫댓글 저도 사진 찍는 것, 찍히는 것 안 좋아해요. 선생님 말 들으니 더 늙기 전에 가족사진 하나는 남겨야겠네요.
아이고, 왜 이리 자존감 낮게 글을 쓰셨을까요?
충분히 이뻐요.
열심히 사는 속사정을 알고 나면 더 아름다울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 드는 게 좋아요.
얼굴 못지 않게 인품도 흘러 나오잖아요.
사진에도 관심이 많으시네요. 가족사진을 꼭 사진관에서 찍어야 할까요?
나는 가족이 모두 모이면 가끔 핸드폰으로 찍어 걸어 두곤해요. 물론 전문가가
촬영한 것과는 비교되지만 더 자연스러운 점도 있어요.
좋은 방법이네요. 그 생각을 못했네요.
선생님 글 쓰신지 모르고 이제서야 읽어요. 글이 한꺼번에 올라와서 놓쳤나봐요. 저두 둘째는 첫째때보다 사진을 덜 찍게 되는데 선생님 글 읽고선 사진을 많이 찍어줘야할 것 같아요. 역시 남는 건 사진뿐이죠.
조 작가님, 두번 째 책 출판 기념회 때 가족 사진 찍으시면 좋겠네요. 곧 그날이 올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