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뉴스]
강현만 시인의 『따따부따』
수능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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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진행되었다. 나는 수능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대단히 꼴불견이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그렇다. 도대체 이런 지랄 같은 모양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이며, 지켜봐야 하는지 그런 것이다.
‘수능은 지배계급의 유지, 지속을 위한 손쉬운 도구’
수능이라는 이름의 성적 줄 세우기는 사회와 국가의 지배계급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편이며 제도다. 모두가 가난하고 어렵게 살던 시절에는 ‘개천에서 아주 가끔 용이 났다.’ 이런 넋두리도 봉건제 사회에서 가난한 양반 신분에 해당한다. 상민이나 노비에게는 그저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체제가 바뀌어 돈이 주인이 되는 자본주의 세상이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돈과 권력, 명예를 가진 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가진 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지배 체제를 아주 손쉽게 유지, 공고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성적 줄 세우기다.
해외 유학은 기본이다. 족집게 과외도 기본이다. 유치원, 초등부터 월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돈으로 공부에 목욕 세례를 한다. 초등학생이 고등학생 과정의 교과 수업을 한다. 선행학습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를 지속시키고 유지해갈 어린 ‘총아’들에게 성적 줄 세우기, 수능은 손 안 대고 코 풀기다.
‘윤석열, 한동훈, 김기춘, 우병우, 최재영, 나경원 같은 자들을 보라?’
지난 대선 공간에서 감사원장 출신의 최재영,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이 보여준 수준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법전만 달달 외워서 판검사가 되었다. 세상은 이들에게 보이지도 않았고 경험할 수도 없었다. 청춘 시절부터 ‘영감’ 소리 들으며 대접받는 데 익숙했다. 출세를 위해서는 억지로 죄를 꿰어맞추고 선고했다. 평생을 이렇게 산 자들이다. 일반 서민과 대중의 삶에서 너무 먼 삶이고 인생이다.
일제의 꿀을 빨고 미제의 꿀을 빨아서 걱정 없이 공부했다. 영어 잘하고 수학 점수 높은 자들에게서, 최고의 대학 서울대를 나왔다고 하는 자들에게서 소외되고 가난하고 약한 민중의 삶은 그저 다스리고 내려다보는 개, 돼지의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에게 인권 감수성은 그저 책에 적힌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돈 벌기에 혈안이 된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보라. 영어, 수학 점수로 의대 간 이들의 행태를 보라. 이들에게 히포크라테스, 허준의 정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형외과, 피부과 등 돈이다. 의사는 돈이다. 기득권 유지에 제일 힘센 자들이 되었다. 환자는 돈이 아니면 죽어도 그만이다. 돈으로 목욕하고 있는 의사 세계다.
성적 줄 세우기, 수학능력시험이 이런 자들을 양산한다. 서술이 없고, 논술이 없고 자기 생각이 없다. 서민과 약자가 없다. 인간과 자연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성적이면 전부이고, 수능 고득점이면 충분하다.
‘민주진보교육감 그리고 민주진보 교육단체는 어디에 서 있는가?’
민주진보교육감은 수능에 동의하는가? 전교조, 참학, 평학 등 교육단체는 수능에 동의하는가? 현행 교육 체제에 회의하고, 의심하지 않는 자들이 교육감이 되고 교육 운동을 한다고 행세하는 일은 끔찍하다. 숲은 보지 않고 나무에 집착하는 어리석거나 애달픈 연극의 무대다.
능력주의에 푹 젖어 있는 세상이다. 전교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수백, 수천 명이 해고되고 감옥에 가면서 이루고자 했던 ‘참교육’의 본질이 이런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전교조는 창립 초기의 정신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한다.
민주진보교육 체제 속에서도 왜 우리의 아이들은 여전히 ‘헬지옥, 헬교육’ 그리고 청소년 자살률 1위를 지속하는지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근시안적인 행정과 교육에 머무르고 쫓기 바쁜 모습으로 민주진보교육감 체제를 유지해서는 대한민국 교육의 변화를 찾기는 어렵다. 교육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의제를 던지고 싸울 수 있어야 한다.
‘덕담이랍시고 수능 이런 글들 올리면서 부화뇌동해서야 어쩌자는 것인가.’
혹여 당신은 학벌 철폐를 주장하는가. 차별에 반대하는가. 그렇다면 ‘수능’ 이런 잡도리로 인터넷, SNS에 수능 축하, 공부 대박 등 글 올리는 일에 자제를 권하고 싶다. 아니 아예 무관심으로 대응하기를 권한다.
대대손손 지배계급의 수능, 성적 줄 세우기 구조와 제도에 환호하고 응원하는 일에 놓여서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신자유주의 체제의 언론은 그런 당신을 위해 뉴스의 톱으로 수능을 다루고 있다. 신자유주의 언론은 속으로 얼마나 가소롭겠는가. 피지배계급에 놓인 자들의 우스운 모양을.
내 자식이 시험 점수 몇 점 더 맞아서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에서 지배계급의 마름으로 충실하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친구보다 더 잘 살고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가. 출세를 바라는가. 이런 속물근성에서 멀어지면 안 되는가? 경쟁과 차별이 없는 공동체, 사회, 국가 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삶과 인생의 풍요를 응원하면 안 되는가?
내 안의 위선과 가식을 버리자. 각을 뜨자며 미제 축출 노래 부르던 민주당 386 그리고 일부 운동하던 자들이 내 자식은 미제국주의 교육의 본산에 유학을 보낸다. (간첩이 돼서 온다?) 위선과 가식, 내로남불에 휩쓸리지 않는 나를 찾도록 하자.
‘대학 무상교육, 동일노동동일임금, 차별을 철폐하라.’
우리가 할 일은 수능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수능 폐지를 외쳐야 한다. 대학 무상교육을 주장하고, 학벌 철폐를 외쳐야 한다. 학벌로 공고히 되는 계급사회는 우리가 지향하거나 만들어갈 사회, 국가가 아니다.
인생의 사활을 건 전쟁터로서 학교는 없애야 한다. 그런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한다. 누가 누구를 이기고 짓밟는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경쟁교육은 차별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국 사회가 바뀐다고 구호로 머물 일이 아니다. 교육이 진정으로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고, 바꾸기를 바란다면 큰 틀에서 줏대 있는 정책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당장 수능 폐지를 주장해야 한다. 서울대 폐지, 학벌 철폐를 주장해야 한다. 학벌계급사회를 부셔야 한다.
아이들 각자가 가진 취미와 특기, 적성에 따라 마음껏 떠들고 웃고 춤추고 노래하는 학교를 염원한다. 가고 싶어 안달하는 학교에서 창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