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5(수)
요한복음 6장
(요한 6,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요한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묵상-
보리 빵 다섯 개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 감사의 제물로
봉헌되더니,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둔갑한다.
그런가하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주님의 살로 확장,
급기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라며
보도듣도 못한 신상품을 출시한다.
제자들 중엔 듣기 거북하다며
예수님을 떠나기까지 했으니,
이 무슨 일이당가.
‘예수님이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이 장면부터 보리빵은 영의
누룩을 품은 것처럼 의미와
가치가 마구 부풀려간다.
보리빵이 전혀 다른 의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는
필립보와 안드레아와 다른
제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다분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그들의 시선을 말이다.
예수님이 물으시면 나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 이걸로 뭐하시게요?'
라며 그대로 말씀드렸을 것 같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을 통해 움직이시는 분,
하지만 우리 인간은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마련이다.
예수님이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부터,
보리빵에 영이 깃들면서
생명을 주는 빵,
하늘에서 내려온 빵,
영원한 생명을 주는
주님의 살과 피로 변모된 거다.
다만 믿어야 한다는 것,
필립보와 안드레아와 다른
제자들처럼 땅(현실)의
시선으로만 바라본다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은 조상들처럼 된다는 것,
여기서 다시 한 번 나자렛
출신이라는 예수님의 열등감이
건드려진다. 사람들은 그런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냐고 수군댄다.
그러니 간신히 하늘로 올라
갈랑 말랑하던 우리의 시선이
다시 땅으로 내려가는 거다.
미사 때 우리가 받아 모시는
영성체가 연상되었다. 축성되기
전엔 밀가루로 만든 제병이지만
사제의 축성을 통해 성체성혈로
성변화가 이뤄지면 하늘에서
내려온 빵,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살과 피로서 값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에잇, 사람이 만든
제병이 무슨 성체야?‘라고
의심하며 믿지 않는다면,
매일 받아 모신다 해도
영향력이 없을 터,
이래서 요한복음을 어렵다고
하나 보다. 뭔 말인지는 알 것
같은데, 표현을 하자니 듣기
거북한 말이 될 것 같은 기분,
조심스럽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요한 6,55)
빵과 포도주를 일컫는 말,
성체성혈을 뜻하기도 한다.
20년 전, 위중한 병을 앓아
동네 수도원 경당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성체성혈을
영했다. 틈만 나면 성체 앞에
앉아 내 생명의 회복을 청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하느님을 부여잡았던 나는,
매일 나에게 오시는 성체성혈을
주님의 살과 피라고 굳게 믿었다.
성체조배를 할 땐 의사이시고
상담사이신 주님께서 내 앞에
계신다고 믿으며 온 몸으로
기도했었다. 내 안에 성체성혈로
오시어 으깨시진 주님의 사랑이
나를 살린 거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하여 가르멜 재속회에서
나의 현의(現意)는
'성체성혈의 요세피나'다.
당신의 생명을 모두 내어주시어
나를 살리셨으니, 나 역시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내어주는
성체성혈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이 내게,
생생하게 와 닿은 이유가
있었던 거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신 생명의 주님!!
제가 가진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무엇인지
잘 헤아려, 주님께서 물으시면
바로 말씀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가진 것 비록 미천하지만,
당신께서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시며 하느님께 청하시면,
오천 명도 먹이고 남을 양식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렵니다.
예수님의 손에 들려 봉헌(축성)되면
보리빵이 생명의 빵이 되고,
미사 중 제병이 성체가 되는
기적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습니다.
항상 주님께 감사드리며 귀히
모실 수 있게 해주소서.
첫댓글 좋은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