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고 이름난 사물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왈가왈부 오래도록 규명되지 않고 다툼만 늘어가는 그런 일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도 아주 출중한 칼잡이가 있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그 사물을 아주 얇게 저며지도록 다 베었다고 치자.
낱낱으로 갈라진 그 사물은 어떻게 규명되었을까? 칼은 아무리 좋은 칼이라도 양면이 있다. 그러니까 양면이 있는 칼로 자른 모든 사물은 아무리 얇게 자른다고 해도 다 양면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양면이 만들어지는 출발은 칼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물은 늘 하나의 진실에 놓여있어야 옳은 것이라고 철썩같아 믿고 있다. 결국 우리의 운명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생명이므로, 각각의 순간마다 늘 고뇌에 찬 생각 끝에 운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어느 때는 내가 주장하는 그것이 선택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내가 반대하는 그것이 선택되기도 하므로, 진실은 오로지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 우리는, 그때마다 일희일비하며 애간장을 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은 우선 일차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그것이 세상의 다가 아니다. 그것을 규명하는 세상의 칼날처럼 우리들 마음이 양면성이 있기에 이 세상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세히 잘 보라. 이 세상 자체는 굳이 이름 짓자면 양면성이 아닌, 그것보다 훨씬 다양한 다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音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 ‘이제는 양쪽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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