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31일,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서울극장이 영업을 종료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더 이상의 극장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그런데 서울극장의 폐관은 단순히 극장 하나가 문을 닫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서울극장은 인근에 위치한 단성사, 피카디리와 함께 서울 종로3가를 1980년대 이후 서울 영화 흥행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한 극장이었으며, 200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시장 우위를 점하고 지역 극장들이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흡수되는 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독자적인 멀티플렉스 노선을 걸었던 극장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서울극장의 폐관은 서울 시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멀티플렉스 체인이 아닌 영화관의 마침표이자, 단성사-피카디리-서울극장을 중심으로 삼각형 구도로 형성된 종로3가 트라이앵글 극장가의 마침표를 의미합니다.
종로3가 트라이앵글 극장가의 전성기는 단연 1980~90년대였습니다. 당시 종로3가 사거리를 두고 각각 북동, 북서, 남서쪽 방향에 위치했던 단성사(1907년 개관)와 피카디리(舊 서울키네마·반도극장, 1960년 개관), 서울극장(1978년 개관)은 당대를 대표하는 여러 주요 작품들을 개봉하며 그들의 흥행 파워를 과시했고, 이로 인해 이들이 위치한 서울 종로3가는 서울의 대표적인 영화 흥행가로 군림했습니다. 특히 이 극장들이 가지는 지리적 이점은 1980~90년대의 종로3가 거리에 활기와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세 극장이 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삼각형 구도를 형성하고 있던 탓에 극장 간 프로그램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영화를 보기 위해 종로3가를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 대부분의 극장들이 1~2개의 상영관을 운영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한 공간에서 여러 영화를 골라 보는 경험은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단성사와 피카디리, 서울극장이 위치한 종로3가에서는 나름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영화를 보러 종로3가를 찾을 때, 원하는 시간대에 단성사 상영 영화가 매진되었다면 길을 하나 건너 피카디리로 향합니다다. 그곳에서 원하는 영화 혹은 원하는 시간대에 볼 수 있는 영화가 없다면 또 다시 길을 건너 서울극장으로 향하는 식입니다. 지금처럼 세 극장에서 같은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는 일은 없었지만, 5분 이내의 도보로 극장을 옮기며 상영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일이 1980~90년대 종로3가에서는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세 극장 모두 개봉관인데다 관객 유입이 상당히 활발했던 까닭에 종로3가 극장들은 흥행 스코어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의 역할도 했습니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자리 잡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도 개봉 첫 날, 제작사에서는 종로3가 개봉 극장을 찾아 관객들의 입장 추이를 관찰하며 대략적인 흥행을 예측하곤 했습니다.
물론 종로3가 극장가의 이 세 극장들이 항상 탄탄대로만을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 초 공연법 개정으로 인한 소극장 설치 자유화와 1980년대 후반 외국영화 시장 자율화, 1990년대 후반 멀티플렉스 극장의 등장과 함께 변화하는 국내 극장 지형에서 단성사와 피카디리, 서울극장 역시 매번 생존을 위한 변화와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화와 선택의 기로에서 서울극장은 건물을 신축해 상영관을 늘렸고 피카디리는 극장 옆 건물에 피카소라는 소극장을 동시에 운영했으며, 단성사는 흥행이 보증된 태흥영화사와 임대 운영 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방식을 전략적으로 취하기도 했습니다.
단성사와 피카디리, 서울극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로3가 트라이앵글 극장가를 조망하는 본 컬렉션은 1980~2000년대 초반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극장 지형에서 이 세 극장들이 모색한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자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자료의 대부분은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 각각의 외형적 변화와 함께 극장 주변의 풍경, 분위기 등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사진들(46점)이지만, 이 외에도 단성사의 연혁과 연도별 상영 프로그램 등이 정리된 문서 4점, 피카디리의 2004년 멀티플렉스 개관을 홍보하는 보도자료 1점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 구성 및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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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이 각각 어떤 과정으로 변화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본 컬렉션의 자료들을 극장별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 컬렉션에서는 세 극장들이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 및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고 이들이 위치한 종로3가 극장가의 변화를 보다 종합적으로 살피기 위해, 이 극장들이 지내온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편의상 1기(1980년대 초)와 2기(1980년대 중반~90년대 중반), 3기(1990년대 후반 이후)로 분절한 후 시기별 세 극장의 변화 양상을 살피고자 했습니다.
■ 1기(1980년대 초): 종로3가 트라이앵글 극장가의 형성
먼저 1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 초는 서울극장이 1980년 증축공사를 통해 재개관한 후 서울 시내 흥행 극장 상위권에 진입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이 각각의 꼭짓점을 그리며 삼각형 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자료로는 1980년 증축공사를 통해 재개관한 서울극장사진 2점으로, 각각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데이 가넷트, 1946)와 <대부 The Godfather>(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72)를 상영 중인 극장의 전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자료의 수가 소수인 탓에 이 시기의 종로3가 극장가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추후 더 많은 자료들이 수집돼 세 영화관의 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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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7월경의 서울극장 전경 (영화진흥위원회 기증, 2011)
서울극장은 합동영화사가 수도극장을 인수(1978년)해 운영한 극장으로, 1980년에는 좌석 수 증설 및 옥외 주차장 신설 등의 증축공사를 진행해 사진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필로티 구조의 서울극장 앞에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를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의 모습에서 당시 영화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사진 속 극장 간판에는 영화 제목이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로 적혀있으나, 전국체신노조의 반대로 서울극장은 이후 제목을 바꿔 상영하였다.
(“우편배달부와 포스트맨 사이”, 《동아일보》 1982.08.24, 12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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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2월~83년 3월경의 서울극장 전경 (영화진흥위원회 기증, 2011)
1980년 7월, 좌석 수 증설 및 옥외 주차장 신설 등의 증축공사 후의 서울극장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후 서울극장은 1989년에 이 건물을 허물고, 도로변에서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간 위치에 새 극장 건물을 신축한다.
사진의 우측으로 보이는 극장 옆 건물은 1989년 신축 이후의 사진들에서 보이는 ‘아메리카나’, ‘팡세’ 등의 카페가 위치한 건물이기도 하다.
■ 2기(1980년대 중반~90년대 중반): 5,6차 영화법 개정과 영화 시장 개방 이후의 변화
2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 중반~90년대 중반은 5, 6차 영화법 개정 및 영화 시장 개방으로 흥행 시장이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종로3가 트라이앵글 극장들이 나름의 변화를 꾀한 시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울극장은 단관 운영 방식을 탈피하고 1989년, 3개관의 복합상영관으로 거듭났고, 피카디리는 극장 건물 바로 옆에 소극장인 피카소 극장을 동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단성사는 단관 운영 체제를 유지하면서 태흥영화사와 임대 운영 계약을 체결해 태흥영화사가 제작하거나 수입하는 영화를 독점 공급하는 등의 전략을 취했습니다. 본 컬렉션의 자료 중 이 시기에 해당하는 사진들에는 이들의 이 같은 전략과 변화의 순간들이 포착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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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경의 서울시네마타운(서울극장) 전경 (영화진흥위원회 기증, 2011)
서울극장은 1989년 7월, 기존 극장 건물을 허물고 도로변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 위치에 지하1층, 지상 7층 규모의 새 극장 건물을 신축해 개관했다.
이때 서울극장은 단관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3개관의 복합상영관으로 전환하고 극장 명 역시 ‘서울시네마타운’으로 바꿨다.
사진은 서울시네마타운이 개관한 직후의 모습으로, 건물 좌측, 상영 프로그램 옥외 간판을 통해 3개관에 각각 ‘칸느’, ‘아카데미’, ‘베니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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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경의 피카디리 전경 (영화진흥위원회 기증, 2011)
피카디리 매표소 앞부터 광장까지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화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사진 우측,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대형 간판 아래로 피카소 극장에서 상영 중인 <애들이 줄었어요 HONEY, I SHRUNK THE KIDS>의 간판이 확인된다. <애들이 줄었어요>는 워너브라더스코리아의 직배 작품으로, 피카소 극장에서의 상영은 영화 시장 개방 초기에 할리우드 메이저 직배사들이 소극장 등으로 작품 배급 판로를 개척한 하나의 사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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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경의 단성사 전경 (영화진흥위원회 기증, 2020)
<장군의 아들>의 60만 관객 돌파를 기념하는 현수막이 붙은 단성사 옥외 간판 좌측으로 상영 예정작 <다이하드 2 DIE HARD 2>의 간판이 눈에 띈다. <다이하드 2>는 단성사에서 1990년 12월 1일에 개봉했는데, 단성사 맞은 편에 위치한 서울극장에서 같은 날 개봉한 UIP 직배영화 <사랑과 영혼 GHOST>과 함께 직배 논란에 불을 지핀 작품이기도 하다. <다이하드 2>를 단성사에 배급한 태흥영화사는 ‘미니멈 개런티’ 방식의 배급으로, 직접 배급이 아니라 해명했지만, 한동안 직배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영화계 직배 내분 다시 불꽃”, 《동아일보》 1990.11.30., 9면 참조)
■ 3기(1990년대 후반 이후): 멀티플렉스 시대의 대응
마지막 3기에 해당하는 1990년대 후반 이후는 멀티플렉스 시대를 맞아 종로3가 극장들이 대응을 모색한 시기입니다. 1980년대 말부터 이미 3개의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던 서울극장은 국내 첫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강변11이 등장하기 한 해 전인 1997년에 기존 건물 옆에 새 건물을 세우고 상영관을 7개관으로 확장하며 다가올 멀티플렉스 시대를 대비했습니다. 그러나 피카디리와 단성사는 1990년대 후반 무렵에야 비로소 2개관 운영 체제로 전환했으며, 멀티플렉스 극장이 이미 시장 우위를 점한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그 흐름에 편승해 멀티플렉스로의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이 시기 각 극장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들을 비롯해 피카디리의 2004년 멀티플렉스 개관 홍보 보도자료, 단성사의 연도별 상영 프로그램이 정리된 문서에서 관련 내용이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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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 31일 개관한 서울극장 신관 전경 (씨네21 기증)
서울극장은 기존 건물 옆, 같은 높이의 신관을 신축하고 1997년 7월 31일에 신관 개관 기념식을 가졌다.
이로써 서울극장은 기존 3개관 외 신관에 4개관을 추가해, 총 7개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신관 개관 직후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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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관 증설 및 운영을 시작한 단성사의 당해연도 2관 상영현황표 (이영진 기증,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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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피카디리 멀티플렉스 개관 보도자료
이처럼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종로3가 트라이앵글 극장가의 20여 년의 역사를 압축하고 있는 본 컬렉션의 자료들은 단성사와 피카디리, 서울극장 각각의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서울 종로3가 극장가를 비롯한 국내 영화관의 역사, 나아가 한국영화의 역사를 위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1980년대에 종로3가 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삼각형 구도를 형성하며 서울 극장가의 중심으로 성장했고, 2000년대의 시장 변화와 함께 서울 흥행 중심지라는 타이틀의 막을 내려야 했던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을 본 컬렉션을 통해 기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존하고 있는 이들의 자료가 풍요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이들과 관련한 자료를 비롯해 동시대 다른 극장들의 자료가 보다 더 수집, 보존되어 이 시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시기별 영화관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 게시물 하단에 별도 첨부된 "컬렉션 해제(pdf)"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본 게시물 하단에 별도 첨부된 "자료 목록 및 해설(pdf)"을 다운 받으시면 개별 자료에 대한 상세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