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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여 안녕
이 홍사
* 1.
안녕!
안드로메다.
페르세우스는 새벽에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서 하늘에 나타난 별자리를 보고 손을 가뿐하게 흔들어 보였다.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전이라 하늘에는 은하가 흐르고 있었다. 안드로메다 별자리가 그를 보고 반짝, 빛을 발하는 듯했다.
아파트에서 별을 본다는 게 신기했다.
지은 지가 오래된 복도식 변두리 아파트라 덤으로 별자리를 볼 수가 있다.
이 시대의 가난한 자는 별을 볼 수가 있다.
신은 참 공평하지.
페르세우스는 그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주억였다.
은하가 흐르는 산기슭으로, 찬바람이 따라 내려오다가 아파트단지의 높은 장애물을 만나니 휘감아 도는 듯했다.
다나에!
청동의 방에 갇힌 불쌍한 어머니!
페르세우스는 복도에 서서 불이 켜진 어머니의 방문을 보고 속으로 속삭였다.
어머니는 아직 자는 모양이었다. 불을 켜놓은 채 잠이 드셨는지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이 드신 모양인지라 어머니 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페르세우스는 조용히 씻고 조용하면서 부산하게 채비를 하고 나왔다.
아직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지 못했다.
목적은 메두사의 머리에 있다.
머리카락이 실뱀으로 우글거리는 메두사의 저주받은 머리, 어디에 있는지 아직은 모르지만 찾아내 꼭 따야만 할 일이다. 그래서 천추에 맺힌,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한다. 페르세우스, 설민수는 오래된 맹세처럼 그 말을 되새기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갑자기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새벽은 쌀쌀했다.
금세 차가운 기운이 목깃을 파고들었다. 페르세우스는 몸을 웅크리고 계단을 내려와 아파트 마당에 주차된 승용차에 올랐다. 기동성을 위해서 중고로 구매한 흰색 국산 중형차다. 비록 중고지만 성능으로 따지면 길이 잘 든 백마에 비유할 수밖에 없다. 백마가 아니라 아테나 여신에게 얻은 날개가 달린 신발에 견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차다. 메두사의 머리를 가지려면 허공을 날 수 있는, 날개 달린 신발을 꼭 필요로 했다.
오늘은 도경의 강력계장으로 간 최경욱을 찾아가 볼 생각이다.
그에게 무슨 단서가 있을지 모른다. 단서가 없더라도 사죄를 받아 아버지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모질게 괴롭힌 자가 분명하다.
페르세우스는 그와는 약속한 바가 없다. 사전에 전화해서 조율하거나, 조르더라도 시간을 내줄 작자가 결코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시간을 내주기는커녕, 찾아간다는 걸 알면 강력계니 외근이라고 핑계를 대고 출근조차 하지 않을 작자가 분명하다.
기습적인 방문밖에는 만날 길이 없다.
페르세우스의 아버지 사건과 선거가 끝나고 경감에서 경정으로 한 계급 승진해 도경으로 들어간 인물이다. 가슴 시린 일이지만, 최경욱은 해평경찰서의 경감으로 근무할 당시 수사팀장으로 수사를 전담했던 인물인데 아버지 사건의 수혜자라면 수혜자가 되는 셈이다. 최경욱은 아버지의 사건이 끝나고 바로 승진해서 도경으로 발령을 받았다. 경찰로서, 일취월장한 셈인데 남의 불행을 자신의 발판으로 삼아 일어선 인물이 분명하다.
모두가 아버지의 얘기를 꺼내면 지나간 일이라고 일축하는 투로 대답하고 꼬리를 사린다. 심지어 아버지의 편에 서서 피해를 본 사람들조차 그렇고 어머니마저 시답잖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렇게 쉽게 잊히는 줄 몰랐다.
이별의 기술이라고 할까?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참으로 자기의 안식만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편한 쪽으로 쉽게 옮겨 앉는 동물이 분명하다. 페르세우스는 그 점이 못내 못마땅하지만, 방법이 없다. 직접 발로 뛰면서 어디엔가 있을 매듭을 찾아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실타래는 상당히 엉켜있다.
단순한 자살 사건이 아니다.
적어도 미필적 고의에 의해 자살을 당한 사건이다.
자살을 당했다?
말에 어폐가 있지만 그런 말이 공공연히 떠도는 시대가 도래했다.
페르세우스에겐 황금의 방패를 지니고 있다.
그건 바로 PIA 민간조사자, 달리 말하면 공인 사설탐정 자격증이다. 그건 정말이지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자르러 갈 적에 아테나가 준 황금 방패와 다를 바가 없다. 그 황금 방패에 비친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 메두사는 그대로 굳은 돌이 되어 페르세우스는 쉽게 그 마녀의 목을 벨 수가 있었다.
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엔 아직 사설탐정 제도가 합법화되지는 않았지만, 이 자격을 지닌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가끔 경찰서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일반인과는 다른 눈으로 보고, 차원이 다른 방식과 언어로 대하는 게 사실이다.
언젠가 이 사설탐정 제도가 합법화되면 정보를 공유하고 합동 수사를 벌일 수도 있기에 미리부터 꼬리를 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력은 한계가 있다. 인원도 인원이지만 수사에 지구력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건이든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이빨이 없다. 또 섣불리 하는 수사, 공권력이 어떤 선의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양산하는지 모른다. 거기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없다. 선의의 피해자가 혐의를 들고 나서면 공권력은 말한다.
증거 있어요?
힘이 빠지고 맥이 탁, 풀리는 말이다. 이 한마디에 수사는 미결로 종결된다. 혐의는 다분하지만, 물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수사이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공무원의 심보가 심리적 배후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말들이 많지만 언젠가는 사설탐정 제도가 합법화될 것이다. 페르세우스도 그 날을 기다린다.
거리는 한산했다.
새벽인지라 출근이 시작되지 않은 탓이다.
소도시지만 출근 시간이 되면 차가 보통 막히는 게 아니다. 그 시간을 피하고 도청 소재지에 가서도 출근의 혼잡을 피하려고 페르세우스는 서둘러 집을 나온 것이다.
고속도로 진입로로 향하는 거리는 한산하지만 팔 차선 대로엔 가로등이 양쪽에 일렬로 서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가로등 사이에선 새벽 안개가 뿌옇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무슨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근거 없는 불길함에 몸을 떨며 페르세우스는 가속기를 밟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어젯밤에 읽었던 소설의 제목이다. 잠을 청하려고 고전을 잡았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거의 백 년 전에 쓰인 작품인데 페르세우스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읽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작품의 내용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슈니츨러는 인간의 감정을 본위로 하는 문학에 그치지 않고, 자연주의 문학의 장점을 취하며 한층 깊고 넓은 폭으로 인간 세계의 완전한 형식미를 이루고 있다고 논자들은 평했는데 아쉽게도 다 읽지 못했다.
단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주의가 산만해져서 읽은 부분을, 무엇을 읽었나? 되짚어보고 거듭 읽다가 책을 덮었다. 책을 덮으면서 페르세우스, 설민수는 자신의 감정도 말이 없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도대체 내가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소설의 주인공인 에마는 마차가 전복되는 순간, 깔려 죽은 애인의 머리를 무릎에 얹어놓고 사람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더 읽히지 않았다.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 문장을 서른 번도 넘게 읽었지만, 뜻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땐 페르세우스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책의 활자는 그냥 그의 눈에 반복적으로 밟히고 있었을 뿐이다. 그 부분에서 더 읽지 못하고 책을 덮으며 페르세우스는 중얼거렸다.
도대체 나는 뭘 기다리는 거야?
그 말을 넋두리처럼 중얼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낡은 아파트는 마치 청동으로 된 탑에 갇힌 것처럼 갑갑했다.
비록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지만 그래도 어머니, 다나에가 계시는 집에서 잠이 드니 불안감이 덜했다. 비교하자면, 군대 내무반의 침상보다는 낫다는 얘기다.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군에 있을 적에는 감정 표출을 못 해 죽을 맛이었다. 아버지는 페르세우스가 군에 있을 적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장례를 치르고 귀대한 페르세우스는 어머니 걱정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늘 충혈된 눈으로, 잠이 덜 깬 듯, 혼미한 정신으로 생활했어야 했다.
병장 시절이었다.
군에 매인 몸이라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돕지 못하는 점을 죄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 비보를 접했다. 새벽에 비보가 전언통신에 의해 날아온 것이다. 당시에 병장이었던 페르세우스는 그게 현실이라고는 믿기지 않았고 침상에서 멍하게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설병장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창백하게 그대로 굳었던가? 후임들이 몸을 부축해서야 일어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머리를 몇 번이나 흔들고서야 현실을 직시했다.
고속도로도 한산했다.
밤을 새워 달려온 화물차들이 납품 시간을 맞추기 위함인지 육중한 엉덩이를 흔들며 질주하고 있었지만, 승용차들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고속도로에도 옅은 안개가 여전했다. 옅은 안개였지만 강을 중심으로는 짙었다. 낙동강을 기준으로 해서 대교 전후에는 안개가 유독 심했다.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별의 기술?
조금 전에 떠올린 말이 문득 뇌리에 스쳤다. 그걸 기술이라고 할까? 숙련도라고 할까? 스물일곱 살, 페르세우스가 체득하기에는 상당히 난해한 기술이다. 적어도 아버지의 죽은 앞에서는 그렇다. 그 기술은 난해했다. 좀체 숙련되지 않을 기술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아버지 자신도 페르세우스도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별을 고했다. 준비가 되지 않기는 어머니 다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몸에 익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그 생각이군!
페르세우스, 설민수는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대교를 건너자 휴게소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은 넉넉하다. 페르세우스는 시계를 다시 보고 차를 휴게소로 꺾어 넣었다.
정신은 몸의 지배를 받는다.
몸이 망가지면 정신도 망가진다는 말이다. 강인한 정신을 위해서 일단 몸을 살려야 한다. 아침 대용으로 무언가로 빈속을 채워야 할 일이다. 점심은 어디서, 언제 먹을지 아직 알 수가 없는 상태다. 휴게소의 편의점이 문을 열고 있을 것이다. 초콜릿 우유와 간단하게 비스킷, 한 봉지면 족하겠지.
*2.
도경의 청사는 이른 아침인데도 부산했다.
조용하면서도 부산스러운 데가 있었다.
산자락으로 옮겨 지은 청사는 남향이었다. 주차장 부지도 넓고 시에 있는 해평경찰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건물로 위용을 자랑하며 또 다른 위압감으로 작용했다. 정복 차림과 점퍼 차림의 사복경찰들이 정문을 지키는 의무경찰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속속 출근하고 있었다. 페르세우스는 일찌감치 들어와 본관 청사 현관의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빼서 입을 축이며 서성이고 있었다.
강력계에 조사를 받으러 들어간다고 둘러대고 정문을 통과한 것이다.
차는 크게 막히지 않았고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도경은 페르세우스도 처음 오는 곳이었다.
적당한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현관에 붙은 안내판을 보고 최경욱이 근무한다는 강력계는 이 층 끝에 위치한다는 걸 알고 있다. 페르세우스는 아직 최경욱의 얼굴도 모른다. 어쩌면 최경욱이 이 현관을 통과하면서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페르세우스를 힐끔 보면서 출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는 구속 수사를 받은 게 아니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의해서 구속을 할 수가 없었다. 현행범일 경우에만 구속이 가능한 신분이었다. 페르세우스의 아버지는 당시에 재선 국회의원의 신분이었고 삼선에 도전하는 중진 의원이었다. 비례가 아니라 해평갑이라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내셨다.
페르세우스의 아버지께서, 페르세우스의 아버지라면 제우스에 해당하겠지만, 설민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황금 소나기로 변한 아버지가 청동으로 된 탑에 갇힌 어머니 다나에를 연모했기에 태어난 인물이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무튼, 아버지께서 국회에 입성할 당시에는 여권의 국회의원이었는데 대통령이 촛불을 가장한 중국인의 세력에 밀려 탄핵이 되고 졸지에 야당 국회의원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장기집권을 꿈꾸는 무리가 다수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총선에서는 혈안이 되었다. 무슨 짓이든, 표만 되면 서슴지 않았다. 공약도 남발했고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생색내기를 했다. 누가 어떻게 갚아야 할 예산인지는 모르지만, 추경을 선거 전에 편승해서 막 뿌리고 있을 때였다. 뿌린다기보다는 살포였다. 그 사실을 지적하는 야당 의원에 대한 공세가 시작되었다. 선거 막바지에 가서는 그 정도가 심했다.
그때 페르세우스는 군에 있었다.
군에 있었지만, 아버지의 지지도와 이루어 놓은 업적으로 미루어 삼선에 당선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론조사를 짬이 날 때마다 관심 있게 지켜보던 중이었다.
페르세우스는 대학을 삼학년까지 마치고 자원입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현관에 설치된 안내실에 있던 정복을 입은 여경 하나가 나와서 페르세우스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관에서 서성이며 몇 번이고 눈이 마주친 여경이었다. 어깨의 계급장을 보니 잎사귀가 세 개 경장이었다. 페르세우스의 또래쯤 되어 보이는데 머리를 뒤로 묶어, 검은색 망에 단정히 넣은 게 상당한 미모였다.
“아, 강력계 최경욱 팀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은 되셨나요?”
“예! 아직 출근 전이라고 하시더군요.”
페르세우스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둘러댔다. 약속한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상태다.
“조금 전에 올라가셨는데 못 보셨나요?”
출근하는 경찰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현관에 얼쩡거리던 페르세우스를 무심하게 힐끔 바라보고 올라갔으니 누군지 모른다.
“아! 그래요? 올라가 보겠습니다.”
페르세우스는 그 말을 흘리고 계단을 통해 이 층으로 올라갔다.
왼쪽 맨 끝에 있는 방이라고 알고 갔는데 방문 앞에는 강력 1팀과 2팀으로 방이 나뉘어 있었다. 난감했다. 1팀인지 2팀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앞에 있는 1팀의 문이 삐죽이 열려 있어서 노크도 없이 밀고 들어갔다. 책상 앞에 앉아 잡무를 처리하던 점퍼 차림의 젊은 형사가 페르세우스를 보고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페르세우스는 인사를 꾸벅하며 말했다.
“최경욱 팀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젊은 형사는 페르세우스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귀찮다는 투로 손가락으로 옆 방을 가리켰다. 2팀인 모양이었다. 페르세우스는 그 방을 나와서 2팀으로 들어갔다. 2팀의 사무실에도 정복을 입은 경찰은 별로 없었다. 다 사복 차림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세 명의 형사가 서서 뭔가 의견을 나누다가 들어서는 페르세우스에게 눈길을 던졌다. 페르세우스는 그 무리에게 인사를 꾸벅하며 최경욱 팀장을 만나러 왔다고 명료하게 말했다. 그런데 대답은 등 뒤에서 날아왔다.
“뭐? 나를 찾아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는 양복 차림이었다. 넥타이까지 단정히 매고 있었는데 사무실 한쪽에 외따로 놓인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책상 위에 얹힌 명패에는 강력 2팀장 경정 최경욱이라고 씌어 있었다. 나이는 오십 대로 보였는데 예상과는 달리 풍만한 체격이 아니라 호리호리한 말라깽이였다. 목주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인상이 꽤 날카로워 보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반말이었다. 페르세우스는 그쪽으로 다가가 꾸벅 인사를 했다. 점퍼 차림의 형사들은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나누던 화제에 관해서 뭔가 이야기했다.
“예, 저는 해평갑 선거구의 국회의원 설강진의 아들 설민수라고 합니다. 아버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설의원? 설의원의 아들이라......”
최강욱의 눈꺼풀에 가늘게 경련이 일어나는 페르세우스는 보았다. 분명히 경련이었다.
“당연히 기억하지. 내가 그분의 수사를 전담했으니까.”
최경욱은 손등으로 떨리는 쪽의 눈자위를 비비며 말했다. 참 난처하다는 빛이 역력했다. 난처하다는 얼굴, 그의 얼굴을 직시하며 페르세우스는 이야기 속의 놋그릇 장수 아주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아주머니의 난처했다는 얼굴이 저 얼굴처럼 난처했을까? 인간의 머리란 이상하게도 이런 긴박한 순간에 전혀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얘기인즉슨, 옛날에 전라도 어느 고을에 놋그릇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어느 고을 부잣집에 가서 놋그릇을 팔다가 날이 저물었다. 다음 마을까지 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었다. 그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잘 곳을 구하니, 그 부잣집의 점잖은 주인이 말했다. 따로 드릴 방은 없고 아흔이 넘은 아버지의 방이 있는데 거기에 주무시는 게 어때요? 놋그릇 장수 아주머니는 생각했다. 남녀유별이라지만 아흔이 넘은 노인인데 별일이야 있겠는가? 아주머니는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밤에 자다가 별일이 생긴 것이었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 복상사를 당한 것이었다. 놋그릇 장수 아주머니는 난처했다. 아흔이 넘었는데 설마, 했지요. 설마가 사람을 잡은 거예요. 아흔이 넘은 노인인데.
그 아주머니의 난처한 얼굴이 최경욱의 이 얼굴과 흡사했을까?
페르세우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최경욱을 쏘아보았다.
그 이야기의 에필로그까지 하자면, 점잖은 부잣집 주인은 놋그릇 장수 아주머니를 나무라거나 화를 내지 않았고 장례를 치르고 나서 놋그릇 장수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남은 놋그릇은 다 살 터이니, 홀몸으로 힘들게 장사를 하지 말고 집에 눌러서 사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하여, 그 놋그릇 장수 아주머니는 그 집의 허드렛일을 거들며 눌러살았는데 놀랍게도 태기가 있었고 열 달 후에 아들을 낳았단다. 그 점잖은 부잣집 주인은 그 아기를 동생으로 여기고 정성을 다해 모자를 보살폈다는 내용인데, 난데없이 그 이야기가 왜 떠올랐을까? 페르세우스가 대학에 갓 입학하고 난생처음 술에 취해서, 외박하고 들어와서 꾸지람 대신 아버지께 들은 얘기인데 그 얘기가 왜 느닷없이 떠올랐을까.
그때 그 난처했을 아주머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상상이 되었다.
아흔이 넘은 노인인데. 페르세우스는 하마터면 그 말을 뱉을 뻔했다.
최경욱의 떨리는 눈자위를 보고 순간적으로 그 아주머니의 상상 속의 얼굴과 겹쳐졌다.
“나를 찾아온 저의가 뭔가?”
최경욱은 할 말이 궁했던 모양이다. 빤한 질문을 하다니? 여전히 눈 주위는 떨리고 있었다.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 그럼 저 방으로 들어가지.”
굳은 표정의 최경욱이 가리킨 곳은 사무실 안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아마도 취조실인 모양이다. 그 말을 하고 최경욱이 일어서 앞장섰다. 취조실에는 빈 책상을 사이에 두고 철제 의자가 마주 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빈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취조실은 금연구역이 아닌 모양이다. 하긴 담배를 피워가면서 피의자와 조사자가 심리전을 펼쳐야 하겠지. 사방은 흰색 페인트로 칠을 해서 단조로워 보였다. 그 흔한 액자나 커튼이 없는 삭막한 방이었다.
최경욱은 앉자마자 주머니의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페르세우스의 뒤에 달린 조그마한 창을 조금 열었다.
“나도 자네 아버지의 자살에 심심한 조의 표하네. 그런 일로 자살을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연약하신 분인 줄은 몰랐지.”
자리로 돌아온 최경욱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 말했다. 유독 자살이라는 말에 힘이 실린 말이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아버지께선 자살을, 하신 게 아니라, 자살을 당하신 겁니다.”
“자살을 당했다? 음! 유가족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치세. 자살을 당하신 날, 설의원께선 술에 상당히 취해 있었다면서? 알고 있었는가?”
말꼬리를 이렇게 돌리는 걸 보니, 최경욱은 술기운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강조하고 싶은 게 분명하다. 페르세우스는 최경욱을 바라보면서 그 점은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력계에서 굴러먹은 최경욱의 눈은 날카로웠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불꽃이 튀었다.
“어때? 커피라도 한 모금 할 텐가?”
페르세우스는 무슨 말부터 꺼낼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라고 했는지 차라고 했는지 건성으로 들었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러자 최경욱은 앉은 자리에서 열린 문을 통해 소리쳤다. 김순경! 커피 두 잔만 부탁해! 그 말을 하고는 최경욱은 일어서 취조실 문을 닫았다.
“혹시 아버지께 과잉수사를 하셨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습니까?”
최경욱이 맞은 편에 다시 앉자 페르세우스가 본격적으로 다그치는, 입장이 되었다. 다그치는 게 아니라 묻는 태도였다.
“과잉수사? 수사면 수사지, 무슨, 과잉수사가 어디 있어? 수사에는 그런 용어 자체가 없다네. 처음 듣는 말일세. 사고 당시에 자네는 현장에 있었는가?”
과잉수사라는 말에 발을 빼며 최경욱이 되물었다.
“저는 군에 있었습니다. 제대를 앞둔 병장이었죠. 그런데 아버지의 사건을 어떻게 조사하게 되었습니까? 무슨 근거에 혐의를 두고?”
페르세우스는 모르고 묻는 게 아니었다.
“그런 수사에서 혐의는 우리가 설정하는 게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아마도 투서가 들어온 모양이야. 우리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서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수사만 한다네. 사실이냐, 아니냐? 옥석만 가릴 뿐이지. 알고 있겠지만 처벌도 우리 몫이 아니라네. 수사기록을 그대로 넘기는 거지.”
“말씀하시는 그 상부라는 게 어디지요?”
페르세우스는 말꼬리를 잡고 물고 늘어졌다. 최경욱은 좀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자네에게 좀 당돌한 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우리에게 상부가 어디 있겠나? 뻔하지 않은가? 경찰청이 아니면 서장이지.”
“누가 투서를 넣었는지도 조사하지 않나요?”
그때 누군가 방문을 건성으로 노크하고 들어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두 잔 내려놓았다. 처녀였다. 아마도 사복 차림의 여경인 모양이었다. 최경욱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고마워! 하고 간단히 말했다. 그녀는 페르세우스의 얼굴을 힐끔 보고는 뒤로 두 걸은 물러나서 돌아 나갔다.
“우리에게 바로 투서가 들어왔다면 사건 진위에 대해 먼저 조사를 하고 수사에 착수하겠지만,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이니 우리야 누구의 투서인지 알 수가 없지. 조사를 해보아서 알지만 자네 아버지 설의원은 청렴도에 있어서 완벽한 분이었어. 그 점은 존경할 만하지. 누구의 모함인지 모르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투서는 최소한 엉터리였어.”
최경욱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수사를 전담하시면서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라는 것은 알고 계셨나요?”
“알고 있었지. 그래서 우리로서는 더욱 민감한 사안이었지. 당시에 현역 국회의원 신분이었고.”
“그렇다면 꼭 그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수사를 했어야만 했나요?”
“우리로서는 당장 착수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해당하지. 자고로 공무원이란.”
“그래서 수사상황을 언론에 그렇게 뿌리셨나요?”
페르세우스는 최경욱의 말을 자르고 그 점을 걸고넘어졌다. 최경욱의 종이컵을 잡은 손이 조금 떨리는 듯했다.
“자네가 뭘 곡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수사를 하면서 철저하게 중립이야. 언론에 뿌리다니? 그건 기자들이 하는 일이야. 해평서에도 신문 기자들이 만만찮게 있어. 지금 이 청사에는 기자실을 따로 두고 있다네. 모르긴 해도 대략, 잡다한 기자 나부랭이, 지방지까지 따지면 대략, 오십 명 정도가 특종을 기다리고 있을 걸? 우리가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아. 특히나 특종은, 현역의원이셨으니 오죽했겠어?”
최경욱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때마다 주름이 잡힌 목의 힘줄이 도드라졌다.
“수사하신 내용 중에서 아버지의 혐의가 무엇이었습니까?”
페르세우스는 모르는 것을 묻는 게 아니었다.
“대가성 청탁의 의혹이었지. 말하자면 금품수수, 그런 투서는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구체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하지. 해평대교 건설공사의 특정 업체 낙찰에 개입했다는 사실과 해평교통 시내버스 노선 변경에 황금노선을 알선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거지. 결과도 말을 해줄까? 무혐의로 종결되었다네. 깨끗한 분이었어.”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런 수사결과가 나왔겠지요.”
“소정의 목적? 아! 아침부터 피곤한 작자가 나타났구만, 이거.”
최경욱은 귀찮다는 투로 손바닥을 털면서 말했다. 더 이야기하면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된다. 최경욱의 얼굴을 알았고 표정을 보았으니 오늘의 걸음은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페르세우스는 일어섰다. 그리고 책상을 짚고 물었다.
“한마디만 더 물을게요. 혹시, 아버지께 미안하다는 감정을 가진 적은 없으세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질문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실익이 없는 질문이라는 걸 페르세우스는 안다. 그러나 인간성을 확인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다.
“미안하다는 감정? 그런 게 있다면 강력계를 이끌고 가지, 절대로 이끌지 못한다네. 우리 수사팀 입장으로 따지면 공권력 낭비지. 투서를 넣은 작자가 미안해하여야지. 아마도 상대편 후보자 측의 모함이 아닐까, 생각하는 중이야. 순전히 혐의에 불과하지만.”
그 말을 하고 최경욱도 따라 일어섰다.
“잘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자네 부친께 명복을 빈다고 전해주시겠나?”
“그러죠. 꼭 전하죠.”
“시원, 시원해서 좋구만!”
최경욱은 사람 좋게 페르세우스의 어깨를 툭 쳤다. 페르세우스는 다시 보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최경욱은 뱀의 혀를 가진 작자가 분명했다. 그걸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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