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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6.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7. 그러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8.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9. 그런 다음에, 주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10.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렘1:4-10)
4 The Lord said to me, 5 “I chose you before I gave you life, and before you were born I selected you to be a prophet to the nations.”
6 I answered, “Sovereign Lord, I don't know how to speak; I am too young.”
7 But the Lord said to me, “Do not say that you are too young, but go to the people I send you to, and tell them everything I command you to say. 8 Do not be afraid of them, for I will be with you to protect you. I, the Lord, have spoken!”
9 Then the Lord reached out, touched my lips, and said to me, “Listen, I am giving you the words you must speak. 10 Today I give you authority over nations and kingdoms to uproot and to pull down, to destroy and to overthrow, to build and to plant.”
4.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4 The Lord said to me,
유다왕 요시야 13년(BC627)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여호야김 때도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시 그의 아들 시드기야 십일 년까지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2.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유다 왕이 되어 다스린 지 십삼 년이 되었을 때에, 주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3.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유다 왕으로 있을 때에도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 뒤에도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 제 십일년까지 주께서 그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다. 시드기야 왕 십일년, 그 해 다섯째 달에 예루살렘 주민이 포로로 잡혀 갔다.(렘1:2,3)
결국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해준 대로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 백성들이 거기 포로로 끌려갔을 때도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기 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말씀을 거역하면 포로로 끌려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간 다음입니다.
거기 바벨론에서는 낙담하지 말고 말씀만 잘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올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 앞에서 아무 것도 위기일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불순종하면 위기를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도 하나님은 말씀을 주실 것이고 그 말씀을 순종하면 위기는 극복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상 처음에는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창1:2,3)
거기에 말씀이 임하시자 딴 세상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오니 딴 세상이더라
그렇게 여섯 번을 반복했을 때 세상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제 끝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거기에 말씀이 있으면 새 시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이 어떻게 전해지는지
그 말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거부되는지
그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몹시 혼란했습니다.
여호와하스와 여호아긴은 겨우 석 달 임금 노릇을 했습니다.
애급은 여호아하스왕은 애급으로 잡아가고 그의 동생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 때 왕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자기들 멋대로였습니다.
4. 이집트의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의 동생 엘리아김을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고, 엘리아김이라는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게 하고, 왕이었던 그의 형 여호아하스는, 붙잡아서 이집트로 데려갔다.(대하36:4)
유대는 애급의 완전한 봉신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이런 일들이 유대 나라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역사의 자리에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의 역할은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러서 다른 일이 아닙니다.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가장 먼저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5 “I chose you before I gave you life, and before you were born I selected you to be a prophet to the nations.”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예레미야를 알려주셨습니다.
예레미야도 모르는 예레미야를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운명은 그가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주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 선택은 완전히 일방적이었습니다.
나를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일방성에 불만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예레미야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죽을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는 자신의 죽을 처지에 관심도 없었습니다.
제 처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 아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받을 모든 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이 일들은 모조리 일방적인 것입니다.
이 일들이 모두 내일인데 우리는 우리 일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사건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예레미야를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택하셨습니다.
땅끝의 뭇백성들에게(a prophet to the nations)까지 말씀을 전하는 선지라로 택하셨던 것입니다.
뭇 백성이란 구원을 벗어난 사람을 이릅니다.
예수님은 백성이 배척하던 죄인 세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랬더니 이 세리는 더 많은 죄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죄인들이 예수님을 초청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죄인들 한 가운데 계셨습니다.
9.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10.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11.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하고 말하였다.(마9:9-11)
그 때 에수님께 따지고 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선택을 받았다고 자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선민의식이 뭇 백성들을 배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꼭 예수님의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머리 아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6.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6 I answered, “Sovereign Lord, I don't know how to speak; I am too young.”
예레미야는 이 하나님의 초대에 즉각 반대했습니다.
그는 자신은 말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그 일을 하기에 너무 어리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했던 일은 예배 30분 전에 강대상에 올라가서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두 손을 들고 준비 찬양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때로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드럼치고 율동하며 나레이션하고.......
예레미야는 그 백성들의 죄를 낱낱이 고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전한 말씀을 안따르는 경우 그 결과를 백성들에게 보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씀을 대하면 북에서 바벨론이 쳐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벨론이 쳐들어왔을 때였습니다.
적군 바벨론을 대항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재앙은 그들이 말씀을 거역한 죄의 결과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잘못했으면 회초리를 맞아야지!
그래서 예레미야가 그 백성들에게 전한 말씀은 바벨론의 공격을 자신들의 죄의 결과로 순순히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적군을 대항하는 것이 죄라고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는 독립운동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 말씀에 백성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저항했을 것입니다.
그 때 예레미야를 제일로 괴롭혔던 상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 강대상에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계엄은 공권력을 동원해서 국민을 학살하는 행위입니다.
그들은 가운을 걸치고 강대상에서 설교했는데 국회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일이 계몽이라는 것입니다.
그 종교 형태를 빌어서 당당히 거짓말을 해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냐였습니다.
그가 강대상에서 가운 입고 한 소리입니다.
그가 백성들에게 혹한 소리를 했습니다.
백성들을 완전히 헷갈리게 했습니다.
그가 한 말입니다.
3.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탈취하여 바빌로니아로 가져 간 주의 성전의 모든 기구를, 내가 친히 이 년 안에 이 곳으로 다시 가져 오겠다.
4.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빌로니아로 잡혀 간 유다의 모든 포로도 내가 이 곳으로 다시 데려오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반드시 바빌로니아 왕의 멍에를 꺾어 버리겠다."(렘28:3,4)
이 거짓 선지자의 말은 이방인인 바벨론이 어찌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힐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곧 구해주실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딱 이 년만 참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레미야가 하나냐에게 이같이 말했습니다.
6. 그 때에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멘. 주께서 그렇게만 하여 주신다면, 오죽이나 좋겠소? 당신이 예언한 말을 주께서 성취해 주셔서, 주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가 바빌로니아에서 이 곳으로 되돌아 올 수 있기를, 나도 바라오.(렘28:6)
예레미야는 그의 본심을 말했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네 거짓말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란 하나님의 입을 빌어서 제 세상 소원을 이루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은 기복적인 처세 방식이 아닙니다.
이것이 거짓 예언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이 거짓 선지자가 예레미야의 반박에 굴복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때 자신의 목에 멍에를 걸고 이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멍에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예레미야의 목에 씌워진 멍에를 벗겼습니다.
그 멍에를 꺽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그런 비참한 멍에를 씌우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새 멍에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쇠로 만든 멍에였습니다.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너는 나무로 만든 멍에를 꺾어 버렸으나, 오히려 그 대신에 쇠로 멍에를 만들어 놓았다.
14. 진실로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이 모든 민족의 목에 쇠로 만든 멍에를 메워 놓고,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도록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길 수밖에 없다. 나는 심지어 들짐승도 그에게 넘겨 주었다.'"(렘28:13,14)
예레미야는 꼭 그 자리에서 꼭 그 말씀을 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랬으니 자신의 예언하는 말씀이 자신에게도 너무나 싫었던 것입니다.
제나라의 백성이 침략당하는 일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또 백성들이 자신에 대한 저항도 싫었습니다.
그는 매국자라는 이름으로
또 불신자로 불리며 감옥을 오락가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전하는 말씀으로 인해 이런 고민을 했던 것입니다.
8.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9.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10. 수많은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겁에 질려 있다. 너희는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합니다. 저와 친하던 사람들도 모두 내가 넘어지기만을 기다립니다. '혹시 그가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그를 덮치고 그에게 보복을 하자' 합니다.(렘20:)
그래서 예레미야는 작정을 하고 예언하는 일을 그만두려고 해도 성령께서 그를 가만두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런 상황을 예상했던 것입니다.
자신은 말도 못 하고 어리다면서 그 자리를 피하려 했던 것입니다.
7. 그러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7 But the Lord said to me, “Do not say that you are too young, but go to the people I send you to, and tell them everything I command you to say.
첫째 이렇게 예레미야가 그 자리를 피하려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한계 상황에서 오직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그 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어떤 한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교회가 문제라고 합니다.
또 세상이 전쟁통이라고 합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어도 제대로 그 말씀이 전해지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 거창의 강대상에서도 주전 590년 경 예레미야가 전하려 했던 그 말씀이 그대로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바로 그 말씀(everything I command you to say)을 그대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두움 가운데 빛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둘째로 스스로를 두고 어리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태초에 우리의 존재를 결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전능자의 그 피조물입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분의 전능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그 태초에 그치지 않습니다.
주님은 현재에도 우리의 존재를 결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재에 우리를 섭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8.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8 Do not be afraid of them, for I will be with you to protect you. I, the Lord, have spoken!”
무서운 풍랑에서 베드로는 고립무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눈을 뜨고 앞을 보니 거기에 주님이 서 계셨던 것입니다.
그 분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주님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행동했던 것입니다.
오직 그 말씀 때문에!
그가 그 다음에 제 발밑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서 있을 수 없는 장소에 서 있었습니다.
그 발밑에 폭우가 치고 있었습니다.
29. 예수께서 "오너라" 하셨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마14:29)
거기에서 베드로는 딴 베드로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했던 순간 그는 폭우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임재와 그 분의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늘 그와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변명이 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예레미야는 사람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상대할 사람에게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신 사람(the people I send you to)들이어야 합니다.
예레미냐가 말씀으로 상대할 사람은 예레미야가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심판 자리에서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을 정하는 기준은 그들이 과거에 상대했던 대상의 문제였습니다.
35.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마25:35,36)
그러니까 그가 살았을 때에 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된 사람, 헐벗을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을 상대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대상이었습니다.
목사 밥 사준 사람은 그 축에도 못 끼었습니다.
부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없어도 이 세상에서 만족하며 잘 삽니다.
그 사람들은 말고!
그래서 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병환자를 찾아갔습니다.
넷째 예레미야가 할 일입니다.
그들에게 할 일은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일입니다.
예레미야는 고전을 열심히 읽고서 좋은 글을 모아서 강대상에서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전해야 할 말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하라고 말씀하신 것(everything I command you to say)입니다.
딴 말하지 말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일러주셨던 말씀은 북에서 바벨론이 쳐들어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주 부정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은 더 심각했습니다.
그 적국 바벨론을 대고 독립운동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매국노가 되라는 것입니다.
임금님 시드기야는 급했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드기야는 완전히 상식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임금으로써 나라를 구할 기도를 해달라고 예레미야를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빌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시드기야 왕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시오.
4.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는, 지금 성벽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바빌로니아 왕과 갈대아 군대에게 맞서서 싸우려고 무장을 하고 있으나, 내가,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전쟁무기를 회수하여, 이 도성 한가운데 모아 놓겠다.
5. 내가 직접 너희를 공격하겠다. 이 분노, 이 노여움, 이 울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내가 팔을 들고, 나의 손과 강한 팔로 너희를 치고,
6. 사람이나 짐승을 가리지 않고, 이 도성에 사는 모든 것을 칠 것이니, 그들이 무서운 염병에 걸려 몰살할 것이다.(렘21:3-6)
베벨론으로 부족하냐 그러면 내가 너희를 공격하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빌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위험한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이 예레미야였습니다.
이 세상이 이 모양인 것은 바로 예레미야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가 스폰지 목회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습니다.
그것을 기독교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교회 장로들과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 밀어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냐 식의 목회가 교회를 망친 것입니다.
강대상의 설교의 과제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누가 예레미야의 그 말씀을 전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고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랬다가는 모든 교인이 도망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 사글세는? 수돗세는?
나중에 감옥 가게 될텐데.......
8.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8 Do not be afraid of them, for I will be with you to protect you. I, the Lord, have spoken!”
그런데 예레미야가 신앙의 외도를 하지 않기 위해 주의할 일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람을 두려워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불과 1,2년 전이었습니다.
눈알을 위아래로 부라리며 국회의원 앞에서 계엄이라니 그런 계획 없다고 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윗 사람이 무서워서 동조했던 사람들이 이제 내란 가담죄로 한 사람씩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최종의 심판도 그렇게 오고 있습니다.
바이든이 어떻게 날리면이라고 거짓을 강요했던 사람들이 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한 일을 정의의 하나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를 염두에 두는 것이 신앙입니다.
8.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8 for I will be with you to protect you.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의 편에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살인하는 자들 옆에 서지 마십시오.
십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제 상황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한 5년 전입니다.
코로나랑 교회 개척이 같이 시작될 때 한 명의 교인도 없었습니다.
이 교회는 팔려서 카페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교단에 개척을 신청했더니 먼저 각서부터 쓰라고 했습니다.
일체 개척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는 각서였습니다.
거기 도장을 찍은 다음에 개척이 시작되었습니다.
돈 달라고 교회 예배당은 열쇠로 문을 걸어버렸습니다.
코로나로 방문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여지없이 굶게 생겼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얼마 전 딸이 전화에 대고 아빠는 어떻게 꼭 그런 교회만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우리 식구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살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2,000년 전 예수님 앞의 너른 벌판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 앞에서 그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9. 그런 다음에, 주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9 Then the Lord reached out, touched my lips, and said to me, “Listen, I am giving you the words you must speak.
선지자 이사야도 하나님을 만나고 가장 먼저 한 소리가 그것이었습니다.
제 입 때문에 망했다는 것입니다.
5.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6.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부집게로 집은, 타고 있는 숯을,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7.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사6:5,6)
첫째 저도 목사로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강대상에 서서 말하는 일입니다.
제 입이 부정하다면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 입을 가지고 정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예레미야의 입에 손을 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정결케 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죽어버린 야이로의 딸에게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딸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달리다굼!" 하고 말씀하셨다.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 하는 말이다.)(막5:41)
예수님께서 죽은 소년에게 하셨던 말씀은 박사들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말이 아니었습니다.
혹은 어떤 종교와 같이 알 수 없는 주문도 아닙니다.
수리수리 마수리.......
예수님의 말씀은 일어나서 학교가라는 어머니의 그 말이었습니다.
아침이면 늘상 우리 딸을 두고 했던 그 말이었ㅅ브니다.
그런데 주님의 입에서 그말씀이 나오자 죽었던 야이로의 딸이 살아났던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말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오직 그 권위의 차이입니다.
주님은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면서 그에게 말씀의 권위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손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9.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9 “Listen, I am giving you the words you must speak.
이 일은 참으로 기이하다고 할 것입니다.
내 입을 빌어서 타인격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입이 단순히 성경 몇 장 몇 절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격이 내 입을 빌어서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목회자들이 설교 전에 하는 기도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입을 빌어서 사용하시라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경험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나라는 전해야 하지만 그 나라를 지적으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일이 오순절날의 사건입니다.
4.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행2:4)
하나님의 인격이 그들에게 시키는 대로 그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을 빌어서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 해야할 말과 그 상대를 알고 있어도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요한은 헤롯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4. 그것은 요한이 헤롯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마14:4)
요한은 그가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해줄 대상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말씀을 그 대상에게 전하는 일이 끔찍했습니다.
그 잔인한 독재자에게 그 말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서 시키는 말을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 앞에서 했던 것입니다.
동생 마누라를 빼앗아 사는 것은 지옥가는 일이라고 일러준 것입니다.
강대상을 빌어서 빤쓰 이야기 하는 것을 지옥 가는 일이라고 일러준 것입니다.
7.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7 but go to the people I send you to, and tell them everything I command you to say.
바로 그 사람!
바로 그 말씀!
그러나 계엄에 동조하는 한국 교회의 원로들을 보시라는 것입니다.
전두환을 여호수아라고 부르는 자들!
10.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
10 Today I give you authority over nations and kingdoms to uproot and to pull down, to destroy and to overthrow, to build and to plant.”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 말씀을 주셔서 의도하시는 바가 있으셨습니다.
파괴하고 세우고 뽑고 다시 심고.......
예레미야는 선택받은 나라 선택받은 백성들의 현실 보장을 하는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으로 오직 건설만 하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으로 부셔 버리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심은 것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뽑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불러서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 뼈다귀들이라도 말씀을 통해 다시 살리실 계획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지없이 두 현실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파괴와 건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능력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하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세가 드러날 뿐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소망이 무너질 것입니다.
무너지고 서는 것을 통해 오직 하나님 나라의 소망만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영원한 나라만 드러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