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례지도사(제-158호) 염쟁이강씨 입니다.
두 해전 시흥시 향토유적 제1호였던
영의정 김치인 선생님 묘역을 개장하였습니다.
당시 개장현장을 지도했던 장례지도사로
올바른 해석을 남기고자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조부님 우의정, 아버님 영의정, 자(김치인) 영의정을 지내신 3정승 집안 어르신입니다.
(아래 가계도를 참고하세요)
묘 조성은 조선 후기 회곽묘로 아주 희귀한 마름모 형태의 시합장이십니다.
오늘날 매장에 있어서 회곽묘를 쓰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매장으로 모시는 토광묘를 선호합니다.
(토광묘: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직접 넣거나 목관이나 목곽에
시체를 넣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린 무덤.)
김치인 선생님의 약력이십니다.
봉분 주위로 호석(護石)을 둘렀고, 봉분 왼쪽에 묘갈(墓碣)이 있다.
중앙에 상석과 높이 56㎝의 향로석
좌우에 높이 1.74m의 망주석과 높이 63㎝의 석양(石羊)을 배치하였다.
석물은 기교를 부리지 않은 형태로 기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금석문] 봉분 좌측에 1790년(정조 14) 세워진 묘표(墓表)가 있다.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은 높이 1.61m, 폭 68㎝, 두께 37㎝이다.
묘표의 비문은 이조판서 조돈(趙暾)이 짓고 아울러 글씨도 썼다.
전면 글씨는 형 김치일(金致一)의 아들인 부정자(副正字) 김종순(金鍾純)이 썼다.
신도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반출해 갔다고 전해진다.
묘주님 외 시흥 시청 관계자들, 기록관, 시흥시 오이도 박물관 관계자들
참석하신 가운데 제를 주관하며 파묘 축을 올립니다.
청화백자, 지석, 망주석, 묘갈, 석양, 상석, 향로석, 등
묘주님이 모두 시흥시 오이도 박물관으로 기증을 하셨습니다.
워낙 묘역이 방대하기에 주 메인 장비를 6w로 보조를 02w 포클레인으로 합니다.
석함에서 나온 청화백자입니다.
청화백자는 장방형 판자 형태의 청화백자로 제작되었으며
자기를 만들고 그 위에 붓으로 묵서(墨書)한 뒤에 유약을 바르고
화덕에 구워낸 것으로 전면에 약간의 푸른빛이 감도는 청화백자입니다.
김치인 선생의 가계와 생애 성품, 혼인, 이력사항 등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석도 나옵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묘비에 보시면 첫 번째 정경부인 완산 이 씨는 오른쪽, 두 번째 부인 달성 서씨는 왼쪽에,
마지막 셋째 부인은 앞쪽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김치인 선생님 묘역 앞에 아래 보이시는 묘분이 있습니다.
묘비명에 나와있듯이 많은 분들이 광주이 씨로 알고 있었습니다.
묘지 개장을 한 후 아래의 묘지 주인은 합장묘로 청풍 김공과 연안 이씨이십니다.
일반적으로 합장묘를 하시면 아래처럼
기본 합장묘는 봉분 정면에서 남좌여우로
삼합장은 남좌여우 후처는 기존 합장 묘역에 좌측으로 모셔집니다.
사합장은 흔하지도 않지만 묘역의 넓이를 고려할 때
마름모의 형태로 묘를 쓰신 것 같습니다.
매우 특이한 형태로 앞서 말한 셋째 부인 역시 같은 묘역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또한 묘비에 나와 있듯이 김치인 선생님 앞으로 자리를 잡았네요.
셋째 부인 광주 이씨의 자리입니다.
개관을 해보니 100% 육탈 되셨습니다.
관안에 육탈되신 잔 흙을 모아 채반 병행 후 잘 모십니다.
관은 솔송관으로 3치입니다.
1치-3cm / 1치 반-4.5cm / 3치-9cm
두 번째 부인 달성 서씨 또한 3치의 솔송관으로 100% 육탈이 되셨습니다.
수습 후
첫 번째 정경부인 완산 이 씨는 개관을 해보니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수면 아래를 자세히 보시면 유골이 그대로 계시는 게 보입니다.
영의정 김치인 선생님 또한 관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박물관에 기증할 출토복식을 합니다.
무려 19벌의 옷을 입고 계십니다.
유골은 그대로 전부 계신 상태입니다.
개장을 하며 나온 호석과 장대(경계석)입니다.
묘주님께서 전부 기증하셨습니다.
마무리는 원상복구로 평토 작업을 했습니다.
자 이제 그동안 셋째 부인으로 알고 있던 묘분을 개장합니다.
묘주님도 신원을 알 수가 없다고 하시네요;;;
상석과 향로석, 망주석 또한 오이도 박물관에 기증을 하셨습니다.
지석도 나오고요.
또한 앞서 출토된 청화백자도 나옵니다.
연안 이씨라고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전형적인 회곽묘입니다.
우선 편한 수습을 위해 회곽의 사이드를 오픈 시켜줍니다.
다른 회곽묘처럼 옆에서 회곽의 뚜껑이 오픈 대면 좋으련만;;;;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6w 포클레인으로 뿌레카를 때리지만 전혀 미동도 없네요.
강회의 강도가 정말 대단합니다.
웬만한 콘크리트보다 더 강하네요.
와우 그동안 여러 기의 회곽묘를 접해왔지만 이리 단단한 건 처음입니다,
드디어 횡대가 보입니다.
회곽묘가 한 번에 조성된 걸로 보아
부군이(남자) 돌아가시면서 이미 매장되어 계신
배우자를 이장하여 합장묘로 조성을 하신 거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합장을 하실 때 하나의 횡대 원판으로 마무리
또한 회격실을 따로 만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의 묘역은
각자 횡대에 회격실을 쓰셨네요.
횡대(홍대)도 보기 드문 3치입니다.
3치의 솔송관으로 100% 육탈이십니다.
부인 연안 이씨는 80% 육탈이십니다.
(대퇴골만 수습)
역시 마무리는 평토로 원상복구 시켜 드립니다.
김치인 선생님의 묘지 개장 후기를 마감하며
그동안 여러 블로그 및 안내서에 나온 셋째 부인의 앞에 묘지 안장이란?
오해가 풀렸으면 합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염쟁이강씨가 되겠습니다.
염쟁이강씨의 자문이나 상담이 필요하시면 시간에 관계없이 전화 주십시오.
정직하게 답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