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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사극 '무인시대' 에 등장한 이의방의 모습
#高麗史128卷-列傳41-叛逆2-李義方-001
○李義方全州人
이의방은 전주(全州) 사람이다.
毅宗末以散員爲牽龍行首與鄭仲夫李高等作亂
의종 말엽에 산원(散員)으로 견룡행수(牽龍行首)가 되었는데 정중부, 이고 등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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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방과 이고
王懼卽拜義方鷹揚龍虎軍中郞將兄俊儀爲承宣.
왕은 겁이 나서 즉시 이의방을 응양룡호군(鷹揚龍虎軍) 중랑장으로 임명하고 그의 형 이준의는 승선으로 삼았다.
이준의
明宗立授大將軍殿中監兼執奏冊爲壁上功臣圖形閣上.
명종이 즉위한 후 대장군전중감 겸 집주(大將軍殿中監兼執奏) 벼슬을 주고 벽상(壁上) 공신으로 책봉하고 각상(閣上)에 그렸다.
元年大將軍韓順將軍韓恭申大譽史直哉車仲規等相與言:
원년에 대장군 한순(韓順), 장군 한공(韓恭), 신대예(申大譽), 사직재(史直哉), 차중규(車仲規) 등이 서로 말하기를
"李義方李高等擅殺朝臣害及忠良非義也."
“이의방, 이고 등은 함부로 조정의 대신을 죽이고 또 충직하고 선량한 인사들을 살해하였다. 그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義方等聞而殺之惟仲規素與義方親免死流外.
이의방 등이 듣고 그들을 죽였는데 오직 차중규만은 평소에 이의방과 친하였으므로 죽음을 면하고 외지로 귀양 갔다.
高有非望之志陰結惡少及法雲寺僧修惠開國寺僧玄素等日夜宴飮因謂曰:
이고는 이때 찬역의 뜻을 품고 은밀히 무뢰배들, 그리고 법운사(法雲寺) 중 수혜(修惠)와 개국사(開國寺) 중 현소(玄素) 등 과 결탁하고 밤낮 모여서 술 마셨는데 그 자리에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大事若成汝等皆登峻班."
“만약 대사(大事)만 성공되면 너희들은 모두 다 높은 자리에 올라 갈 것이다”라고 하고
遂作僞制.
드디어 거짓(僞) 조정까지 꾸며 놓았다.
及太子加元服王將宴于麗正宮
태자의 가관식을 거행하게 되어 왕이 여정궁(麗正宮)에서 연회를 배설하려 하였다.
高爲宣花使當與宴陰令玄素招致惡少聚法雲寺修惠房斬馬饗之使各袖刃隱于墻屛*閒將作亂
이때 이고는 선화사(宣花使)가 되어 연회에 참석해야 하겠으므로 비밀히 현소를 시켜 무뢰배를 법운사 수혜의 방에 소집해 놓고 말을 잡아서 한 턱 먹인 후 각기 칼을 품고 담 사이에 숨어 있다가 반란을 일으키게 하였다.
有校尉金大用子爲高驅使聞其謀以告大用大用與內侍將軍蔡元善遂告之
그런데 교위(校尉) 김대용(金大用)의 아들이 이고의 사령(使令)이었던바 그 음모를 듣고 김대용에게 고하였고 김대용은 내사 장군 채원(蔡元)과 친하였으므로 드디어 그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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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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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方素惡高逼己至是與元候高等至宮門外卽以鐵椎擊殺之令巡檢軍分捕高母及黨與皆誅之其父嘗惡高不肖不以爲子故獨配流.
이의방은 평소에 이고가 자기에 대하여 억압함을 미워하여 왔던바 이때에 와서 채원과 함께 이고 등이 궁문 밖에 오기를 기다려 그 자리에서 철퇴로 때려 죽이고 순검군(巡檢軍)을 풀어서 이고의 모친과 그 도당을 모두 잡아 죽였으나 그 부친만은 평소에 이고의 불초(不肖)함을 미워해서 자식으로 생각지 않았으므로 귀양만 보냈다.
元陰謀欲盡殺朝臣事泄
채원이 조정 신하를 모조리 죽일 음모를 하다가 사전에 누설되었다.
義方又忌元遂殺于朝幷捕門客群少皆殺之.
그리고 또 이의방이 채원을 꺼리게 되어 드디어 채원을 조정에서 죽이고 그의 문객과 무뢰배들을 체포하여 모두 다 죽였다.
三年封王女爲宮主近臣上壽夜分未罷
3년에 왕의 딸을 궁주(宮主)로 봉했는데 근신(近臣)들이 축하연을 하느라고 밤이 늦도록 파하지 않았다.
義方携妓入重房與諸將縱飮喧噱擊鼓聲聞于內略無畏忌
그때 이의방은 기녀(妓女)를 데리고 중방(重房)으로 들어가서 제장(諸將)들과 마음껏 술 마시면서 북 치며 노래하고 떠드는 소리가 임금의 내전까지 들렸으나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조심하지 않았다.
尋轉衛尉卿興威衛攝大將軍知兵部事.
그 후 얼마 아니 가서 위위경 흥위위 섭 대장군 지 병부사(衛尉卿興威衛攝大將軍知兵部事)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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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史128卷-列傳41-叛逆2-李義方-002
明年歸法寺僧百餘人犯城北門殺宣諭僧錄彦宣義方率兵千餘擊殺數十僧餘皆散去兵卒死傷者亦多
다음해에 귀법사(歸法寺) 중 1백여 명이 성 북문(城北門)으로 침입하여 선유 승록(宣諭僧錄) 언선(彦宣)을 살해하였으므로 이의방이 병정 1천여 명을 인솔하고 중(僧) 수십 명을 때려 죽였더니 나머지는 모두 흩어져 갔는데 병정의 사상자도 많았다.
翌日重光弘護歸法弘化諸寺僧二千餘人集城東門門閉乃燒城外人家欲延燒崇仁門入殺義方兄弟
그 다음날에는 중광사(重光寺), 홍호사(弘護寺), 귀법사(歸法寺), 홍화사(弘化寺) 등 여러 절의 중 2천여 명이 성 동문 밖에 집결되었으므로 성문을 닫았더니 성 밖 인가에 불을 지르고 그 불길로 숭인문(崇仁門)까지 태운 후 돌입해서 이의방 형제를 죽이고자 했다.
義集府兵逐之斬僧百餘府兵亦多死者.
이의방은 이것을 알고 부병(府兵)을 징집해 가지고 그들을 쫓았는데 중 1백여 명을 죽이었으나 부병도 또한 많이 죽었다.
令府兵分守城門禁僧出入
그리고 부병을 풀어서 각 성문을 수비케 하고 중의 출입은 일체 금지하였다.
義方又遣府兵毁重光弘護歸法龍興妙智福興等寺俊儀止之義方怒曰:
그리고 이의방은 또 부병을 파견하여 중광사, 홍호사, 귀법사, 용흥사(龍興寺), 묘지사(妙知寺), 복흥사(福興寺) 등의 절을 허물려 하는데 이준의가 제지(制止)했더니 이의방은 노하여 말하기를
"若從爾言事不成矣."
“만약 네 말을 듣는다면 일이 안 된다”라고 하고
遂焚之取貨財器皿以歸
드디어 절에 불을 지르고 절의 재물과 기명을 약탈해 가지고 돌아왔다.
僧徒要擊於路還奪之
그러나 중들은 중도에서 요격하여 그것을 탈환했다.
府兵死者甚衆.
부병도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俊儀罵義方曰:
이준의가 이의방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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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有三大惡
“너에게 세 가지 큰 죄악이 있다.
放君而弑之取其第宅姬妾一也.
첫째는 임금을 추방하고 또 살해한 후 그 집과 첩을 강탈한 죄요,
脅奸太后女弟二也.
둘째는 태후의 딸을 협박하여 간음한 죄요,
專擅國政三也."
셋째는 국정을 네 마음대로 독판 친 죄다”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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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方大怒拔劒欲殺之文克謙止之曰:
이의방이 대노하여 칼을 뽑아 가지고 죽이려 하였는데 문극겸(文克謙)이 말리면서 말하기를
"以弟殺兄惡莫大焉?
“아우로서 형을 죽이면 그보다 더 큰 죄는 없소!
何面目見人乎?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보겠는가!
若吾言不可聽請先殺我."
만약 내 말을 못듣겠거든 나를 먼저 죽이라!”라고 하였다.
義方與克謙善且其弟隣爲克謙女壻故從其言
이의방은 문극겸과 친했고 또 그의 아우 이린(隣)이 문극겸의 사위였으므로 그의 말을 들었다.
俊儀走出西門義方自引劒割其胸而臥
이준의는 서문으로 달아 나갔고 이의방은 제 칼로 자기 가슴을 가르고 쓰러졌다.
仲夫曰: "兄弟鬪宮中何理耶?"
정중부가 말하기를
“형제가 궁중에서 싸우다니 무슨 도리냐?”라고 하고
欲執俊儀殺之仲夫妻聞之使人謂曰:
이준의를 잡아 죽이려고 했는데 정중부의 처가 듣고 사람을 시켜 전달하기를
"義方兄弟之事於卿何與?" 由是俊儀得免然交舊莫敢往見
“이의방의 형제지간의 일이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어요?”라고 하였으므로 이준의가 죽음을 면하였으나 이준의의 집에는 친구도 감히 방문하지 못했다.
門客亦散.
찾아왔던 문객들도 흩어 져 갔다.
俊儀往謝義方義方亦潛往謝之.
그 후 이준의는 이의방을 찾아가서 사과(謝過)했고 이의방도 남 모르게 찾아가서 사죄했다.
義方拜左承宣納其女爲太子妃.
이의방이 좌승선(左承宣)으로 되고 그의 딸이 태자비(太子妃)가 되었다.
#高麗史128卷-列傳41-叛逆2-李義方-003
時西京留守趙位寵起兵謀討義方仲夫元帥尹鱗瞻禦之敗還位寵兵向京都來屯京西權有路上義方怒甚執西京人尙書尹仁美大將軍金德臣將軍金錫才等無貴賤悉誅之梟首于市領兵而出先遣崔淑等數十騎突陣擊殺數人
당시 서경 유수(留守) 조위총(趙位寵)이 군사를 동원하여 이의방과 정중부를 토벌하려고 하였으므로 원수 윤인첨(尹鱗瞻)이 방어하다가 패전하고 돌아오고 조위총의 군사가 서울로 향해 와서 서울 서녘 권유로(權有路)에 주둔했으므로 이의방은 대단히 노하여 서경 출신인 상서 윤인미(尹仁美), 대장군 김덕신(金德臣), 장군 김석재(金錫才) 등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잡아 죽여서 저자에 효수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출진하였는데 선봉으로 최숙(崔淑) 등 수십 기(騎)를 내보내서 적진에 돌입하여 몇 명을 쳐죽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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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軍乘之西兵驚亂大敗而走
전군이 이 틈을 타서 진격하였더니 서경 군사들이 놀라서 혼란을 일으키고 대패하여 달아났다.
義方乘勝逐北至大同江位寵收散兵復守城
이의방은 승리의 기세를 놓치지 않고 패배자를 추격하여 대동강에 이르렀으며 조위총은 흩어진 군사들을 수집해서 다시 성을 수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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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方屯兵城外留月餘苦寒不能戰復爲西兵所敗乃還.
이의방은 성 밖에 주둔하고 한 달 이상이나 머물렀으나 추위에 시달려 싸움도 못하고 다시 서경군에게 패배당하여 돌아왔다.
義方自納女東宮益擅威福濁亂朝政
이의방은 딸이 태자비로 된 후 더욱 기세를 남용하고 국정을 문란케 하였다.
衆心憤怨鱗瞻將復討位寵治兵西郊僧徒亦從軍
뭇사람들이 이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는데 그 때에 윤인첨이 또다시 조위총을 토벌코저 서녘 교외에서 출병 준비를 하고 있었고 중들도 종군하게 되었다.
義方偶出宣義門外仲夫子筠密誘僧宗 等托有求訴隨義方後伺隙斬之
그때 이의방이 마침 선의문 밖으로 나갔는데 정중부의 아들 정균의 꼬임을 받아서 중 종감 등이 신소할 일이 있다고 핑계하고 이의방의 뒤를 따라가다가 틈을 엿보아 목을 쳐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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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捕俊儀兄弟及其黨高得元柳允元等皆殺之僧徒以爲賊臣之女不可配東宮奏黜之.
그리고 각처로 나뉘어서 이준의 형제와 그의 도당 고득원(高得元), 유윤원(柳允元)등을 체포하여 모두 다 죽였으며 또 중들이 적신(賊臣)의 딸이 태자비로 될 수 없다고 왕에게 청원해서 쫓아 냈다.
六年義方門客將軍李永齡別將高得時隊正敦章等欲爲義方報仇謀殺仲夫事泄重房捕永齡等竄遠島.
6년에 이의방의 문객들인 장군 이영령(李永齡), 별장 고득시(高得時), 대정(隊正) 돈장(敦章) 등이 이의방을 위해서 복수하고자 정중부를 암살하려고 음모하다가 일이 누설되어 중방에서 이영령 등을 체포하여 먼 섬으로 추방했다.
一時武臣皆義方麾下相謂曰:
한 때는 무관들이 모두 다 이의방의 부하였으므로 서로들 말하기를
"軍國權柄屬之重房者實由義方之力."
“군국(軍國)의 권력을 중방(重房)에 속하게 만든 것은 실로 이의방의 힘이다”라고 하고
遂配宗감等十餘僧于海島.
드디어 중 종감 등 10여 명을 섬으로 귀양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