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가 인종차별 투쟁의 최고 전략가라고 칭송했던 시민권 운동가 제임스 로슨이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11일 전했다. 그 동안 살아 온 로스앤젤레스에서 전날 숨을 거뒀다고 가족이 밝혔다.
그는 인도를 직접 찾아 시민 불복종 및 비폭력 저항운동을 연구했다. 감리교 목사인 로슨은 미국에서의 인종 격리 정책에 저항하는 시위 참가자들을 불러 모아 워크숍을 개최, 인종주의의 부도덕함을 드러내기 위해 경찰과 성난 백인 폭도들의 잔인한 폭력과 위협을 그냥 견뎌내라고 교육했다.
킹 박사는 거듭해 로슨의 방법론을 찬양했으며, 특히 암살되기 전날에도 연설을 통해 미국에서의 흑인 투쟁 가운데 "품위있는 남성들" 중 한 명이라고 불렀다. 동갑이었던 두 사람은 스물여덟 살 때 처음 만났는데 킹 박사는 로슨을 “세계를 이끄는 비폭력 신학자이며 전략가”라고 불렀다.
조부와 부친 모두 목사였던 로슨은 1928년 펜실베이니아주 유니언타운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인종 욕설을 퍼붓는 아이에게 뺨을 때린 뒤 비폭력을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무엇이든 참아 넘겨야 한다고 믿었던 모친은 아들에게 "어떤 선한 것이" 그런 반응을 불러온 것이냐고 물었고, 그는 두 번 다시 언쟁을 해결하기 위해 완력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비폭력 신념은 대학 시절에도 시험 받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한 미 육군 징병에 응하지 않아 징역 13개월형을 복역했다. 대학을 마친 뒤 인도 나그푸르로 떠나 선교사 일을 하며 간디가 발전시킨 저항 전술을 연구했다. 3년의 인도 생활을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와 오하이오주 오벌린 단과대학에서 동료 킹 박사를 만났다. 이 때는 제도적인 인종 차별과 격리에 어떻게 저항할지를 놓고 흑인 사회의 의견이 갈려 있었다.
킹 박사는 로슨에게 테네시주 내시빌로 이사해 비폭력 저항 운동을 가르치던 반더빌트 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하도록 설득했다. 그의 제자들은 시민권 운동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해냈다. 예를 들어 나중에 하원의원이 된 존 루이스, 워싱턴 DC 시장이 된 매리언 베리 등이다.
킹 박사가 1968년 암살된 뒤 로슨은 암살범 제임스 얼 레이를 만나 그와 친해졌다. 당시 로슨은 "마틴 킹이라면 그를 찾으러 갔을 것이다. 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레이의 옥중 결혼을 집전했고 레이가 킹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학생들의 비폭력협력위원회(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 SNCC)를 창립해 1960년대 인종 평등 시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0년 존 루이스 장례식에서 로슨은 "우리 가운데 많은 이는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 선택권이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초기 단계에 우리는 살기 위해 강요받은 것들 아래에서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은총을 받아 주님께 맹세한다. 우리는 이 나라가 다뤄야 할 의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위해 주님이 우리에게 청한 일들을 무엇이든 할 것이다. 끝장내야 한다. 흑인 목숨이 소중하기에(Black lives matter)”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