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 앞바다. 잠시 치열한 삶을 살았던 화가 이중섭의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자.
날씨가 스산하게 추워지니 따스한 남쪽으로 내려가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 아름다운 남국의 정취를 그대로 보여 주는 짙푸른 바다의 도시 서귀포는 누구나 잘 아는 제주관광의 메카이다.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등 제주도의 3대 폭포와 중문 관광단지, 빼어난 절경의 70리 해안 등 한라산 남쪽 기슭의 이 도시는 참으로 수려한 자연을 타고났다.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정말 타고났다고 해야 옳다.
하지만 최근까지 이 아름다운 도시의 한 부분에 한국 현대 회화사상 가장 천재적이며 개성적인 작품을 남긴 한 화가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생시에 많은 에피소드와 불우한 삶으로 유명한 이 화가의 이름은 이중섭.
이중섭 거리

이중섭 거주지로 통하는 이 길은 아기자기한 공방과 젊은이들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야수파적인 강한 터치로 고개를 쳐들고 있는 "황소",강한 골격을 드러내며 꼬리를 흔들고 있는 "흰 소"를 그려 낸 이중섭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약 1년여를 이 도시 서귀포에서 보냈다. 서귀포시 서귀동 512-1 번지의 한 평 반 정도의 방을 세내어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머물며 지금까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대부분의 그림들을 그려냈다. 전쟁 피난민으로서 일시적인 체류였지만, 힘들고 불우한 그의 일생 중 그래도 가장 안정적인 시기였기에 뛰어난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고, 그러한 중요성 때문에 서귀포시는 그가 살던 집을 매입하여 복원하고 이중섭 기념관을 지었다. 그리고 그가 아침, 저녁 거닐던 그 집 앞 거리를 "이중섭 거리"로 지정하였다.
이중섭 생가

제주도에서 이중섭과 그의 가족은 1.3평 정도의 아주 협소한 공간에서 살았다. 그의 인생이 얼마나 초라했고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이른 아침에 이중섭 거리를 찾아가보자. 가게 집들도 문을 열지 않은 조용한 거리. 약간 내리막길인 거리로 내려가면 멀리 보이는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기분도 든다. 생가로 정비된 집에 그의 손때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의 흔적만이라도 이렇게 남겨 놓으니 다행이다. 그의 생가 구석에 있는 문을 열어보면, 조촐한 기념관 안에 이중섭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모습이 보인다. 생전의 이중섭을 이야기할 때 이 사진은 어디서나 그 모습을 나타낸다.
화가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군 태생이다. 1937년 일본에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여 재능을 닦은 후 미술창작가 협회상(1940), 미술창작가협회 태양상(1943) 등을 수상하였고, 1945년에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山本方子, 한국 이름 이남덕)와 원산에서 결혼, 원산 사범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였다. 해방 후 북한에서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제약을 받던 중 6.25때 남하하여 처참한 피난민 생활을 시작하는데, 제주도, 부산, 통영 등지를 전전했으며, 이 때 부인과 아들들은 안전을 위해 일본 동경에 건너갔다. 그 이후 1953년에 잠깐 일본에 건너갔으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다시는 가족과의 단란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혼자서 부산, 통영 등지로 전전하다 결국 1956년 나이 40에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적십자병원에서 요절하였다.

이중섭의 <황소>
서양화가이면서도 향토성을 강하게 띈 "황소" "투계" 등의 작품들과, 동화적이며 자전적 요소를 담은 "닭과 가족" "해변의 가족"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바닷가의 아이들" 등의 작품들을 냈다. 서양화 기법을 사용하는 그가 지난 시절의 한국적 정서를 대표하는 한국적인 화가라고 평가받는 건 그림의 소재와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후 15년이 지난 1970년대 이후에야 수많은 회고전과 재평가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적 화풍을 이룩한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게 된다.
아이들을 좋아하여 그림에도 즐겨 사용했던, 천진무구하고 순수한 감성의 소유자이며 자유로운 삶과 화풍을 원했던 이중섭. 일생의 많은 부분을 가족과 떨어져 있었기에 더욱 그리움과 외로움에 시달렸던 그의 삶은 가족과 함께했던 짧은 서귀포 생활에서 약간의 행복을 맛보았으니, 그의 감성을 자극하여 창작활동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아름다운 바다와 남국의 풍광이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서귀포시가 그렇게 자랑하는 서귀포 70리 해안의 절경과 그를 무대로 그려진 이중섭의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이 어울린 참으로 멋진 조화였던 셈이다.

정방폭포. 천지연, 천제연과 더불어 제주도내 3대 폭포중의 하나이다.

외돌개. 돌로 굳어버린 그리움이 뭍에서 아슬아슬하게 홀로 외롭게 바다에 서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중섭 거리를 다녀온 뒤, 그가 생전에 바라보았을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 그리고 서귀포 일대의 해안을 돌아보자. 항구와 그 일대, 훌쩍 바닷가에 선 외돌개, 그리고 중문 관광단지 일대와 육각형 기둥을 세워놓은 듯한 빼어난 지삿개 주상절리라 부르는 기암절벽들...
그 멋들어진 절경들이 한 예술가의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면 좀 달라 보이지 않는가. 그저 이중섭만을 보자고 하면 아이들은 싱겁겠고 지루해하겠지만,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경치에 덤으로 의미부여를 하여 이중섭을 본다면 참으로 좋은 여행길이 될 것이다.
여행정보
이중섭 거주지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9
외돌개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홍동 791
- 문의 : 064-760-3033
정방폭포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칠십리로214번길 37
- 문의 : 064-733-1530
첫댓글 윗 쪽에 써있는 생가는 거주지로 고쳐야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 통영에 가서 이중섭이 살았던 집을 찾았었는데 집은 없어지고 작고 초라한 표지만. 겨우 찾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