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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
이 사제 생활이 인간의 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내 실존과 성소를 걸고, 아니 내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해서 인격적으로 하느님을 체험하길 원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체력이나 정신이 따라 주지 않는다.
그렇게 10개월 정도를 하다가 소위 성령의 전률이 내 등위로 흘러 내렸다. 그것도 일회성이 아니라 기도할 때마다 장소 불문하고 6 개월 이상 그렇게 몸을 텃치했다.
그러다가 2000년도에 예기치 않게 미국을 오게 되었는데, 오자마자 사순절이라 기도와 단식으로 피정하는 마음으로 그 기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부활절 선물은 '영들의 체험'이라는 영적 수련이었다.
자연인(自然人)이 초자연(超自然)에 개방된다는 것이 너무나 적응이 안되어 진짜 미칠 지경이었고, 함께 사는 수도자와 교우들에게 내색하지 않기 위해 정말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소위 내 자신의 '무의식의 정화'라는 '영적 수련'은 나로 하여금 성령 체험 후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게 되었는데, 그 영적 고통이 24시간 365일 계속 되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다시 와인을 수면제로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괴로웠다.
난 미사 시간과 피정 강의 시간을 빼놓고는 잠시도 가만히 나를 놓아두지 않는 영들에 의해 죽을 지경의 단련을 받았다.
아니 너무 고통스러워 몇 차례 죽으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 소위 은사 받은 자들이 나타나 나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해준다. '여기 미국에 불법 체류 하면서 먹고 살기 힘들어 이 허드슨 강에 와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죽고싶어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을 이해하고 기도해주고 치유해주려면, 너도 똑같이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야 하고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꽤 세월이 흐른 후, 피정에 들어가서 면담때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줄 때, 내 눈에는 그들의 고통이 전이가 되어 눈물이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다.
치유란, 먼저 측은지심과 연민의 정, 동정심을 갖고서 상대방의 슬픔과 고통, 병고와 병마마저 체험하지 않은 경우에는 불가능함을 주님께서 몸소 체험시켜 주셨다.
이제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며, 난 이 땅에 자연인으로 있지만, 초자연과 연결되어 반(半)은 선한 영들과 반(半)은 악한 영들과 접목이 되어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되어 버렸다.
사도 바오로의 선악의 내면적 갈등에 관한 로마서 7장의 말씀이나 겸손하게 자신의 성소를 잘 끝내도록 육체를 찌르는 가시와 같은 병을 주셨다는 그 말씀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영적 고통을 수없이 겪었고, 악한 영들의 공격이 사람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오든지, 직접적으로 오든지 그것들을 무수히 겪었기에 영적 전쟁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나는 산전, 수전, 공중전, 원전 쓰나미까지 다 겪었고, 지금도 가끔 겪는다.
성령 운동이란, 바로 한 영혼을 놓고 악한 영들과 선한 영들이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임을 피부로 느낀다.
단순히 미지근한 영혼을 영적으로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사탄한테 빼앗긴 영혼을 찾아오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백전백패하기에 영적 봉사자로서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이다.
내가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 성령의 은사를 받아 봉사할 수 있는 것, 특히 치유와 구마라는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 영적 고통을 죽을 지경까지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나 힘들어 수없이 삶을 포기하고 죽으려고 했고, 우울증에 빠진 상태에 있은 적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내 안의 성령은 또 기도하게 하고 말씀을 붙들고 초극(超剋)하는 훈련을 반복하여 시켰다.
특히 묵주의 기도는 나로 하여금 영적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내 영혼의 생명줄이요, 구원의 밧줄과 같은 것이었다.
내 인간 본성(本性)은 내 삶과 성소를 체념했는데, 내 초성(超性)은 그것을 또 뛰어넘게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속에서 마지막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게 하였다.
주 하느님께서 위에서 보실 때, 내가 너무나 형편없는 놈이요, 열등감을 가장하고 포장한 교만한 놈이기 때문에 이렇게 영적으로 매섭게 그리고 강하게 다룬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지면상으로 표현할 수없는 것들이 많다.
나는 나를 이렇게 다루는 하느님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의 불투명한 미래와 한치 앞도 모르는 앞날을 예비해서 나를 이렇게 다루는 거라 생각하고, 내 탓없이 수동적으로 당하는 이 영적 수련과 정화의 과정 속에서 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상처, 위로받지 못한 마음, 수없이 버려진 마음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하느님을 용서한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어쩌면 나에게 아직도 사람들을 대할 때 온유 대신에 폭력성이 남아 있다면, 지난 15년동안 받아온 상상 초월의 강한 영적 수련 때문이다.
이제는 많이 영적 수련 중에 여유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잘 모르는 교우들이 찾아와 '신부님! 저희들과 함께 늙어 가요!'라고 말한다.
별볼일 없는 나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영적 위로와 삶의 지침을 받는 사람들이 조금은 늘어나는 것 같다.
내가 꿈꾸고 있는 사막에서의 '만남의 천막'과 '피정의 집'을 함께 지어 보자고, 영혼의 마지막 추수를 위해 단기 선교사들을 양성해서 파견하고,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마지막 남은 생을 바쳐보자고, 같은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주 하느님께서 바로 이러한 일들을 하시기 위해 조금씩 나를 준비시켜 온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있는 이곳 사막에는 고국처럼, 저기 사계절이 명확한 곳들의 아름다운 단풍으로는 가을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공해와 오염으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는 사막의 아침, 저녁의 차가운 공기와 하늘의 별들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한다.
내가 가는 길에 쓸쓸함을 느낄 때 '신부님! 우리 함께 늙어가요!'하는 동력자들이 나타나 조금은 인간적으로 위로를 받는 가을이다~^*^
-임언기 안드레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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