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는 왜 끊임없이 같이 있고 싶어하고 또 쉽게 헤어질까? 지난해도 하루 평균 877쌍이 결혼하고 370쌍이 이혼했다고 한다 , 10쌍이 결혼할 때 4쌍 이상이 이혼한 셈이다. 그런데도 연애 상태에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사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젊은이들은 더 사랑을 갈구하고 겨울연가 가을동화 같은 드라마에 열광한다.
그래서 조한혜정 교수는 연애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고통과 방황을 일삼는 젊은이들을 한심해하면서도 그들이 해체의 시대를 살아갈 규칙과 기술을 익히고 있다고 오히려 기특해 한다. 만나고 헤어지며 인간적인 책임을 다하며 서로에게 행복한 방법으로 헤어지는 방법을 익히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도 아니고 자신이 수납한 각본의 선택이다. 그리고 낭만적 사랑은 그리 긴 역사를 갖고있는 것도 아니다. 볼프강 라트의 ‘사랑, 그 딜레마의 역사' 벡 부부의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옥스퍼드대 교수 테오도르 젤딘의 ‘인간의 내밀한 역사’는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이 얼마 되지 않은 현대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낭만적 사랑이 그리 유구한 역사를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시대 시민계급 남성들이나 조선시대 양반계급남성들에겐 아내는 재산관리자이자 제사를 지내주는 존재였지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고 고대인에게 ‘사랑’은 이성을 혼란시키는 광기로 간주되었으며 이성애는 로마시대에 와서야 동성애보다 우위에 서게 되고 지금 같은 사랑의 방식은 기껏해야 18세기에 와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야 사랑과 결혼이 구별된 정략결혼이 다반사였고 '인간의 내밀한 역사’에서 젤딘은 역사적으로 안정이 자유보다 더 중요했다고 말하는데 그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낭만적이란 말은 이성과 균형의 답답한 형식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고 정열적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우주와 합일하는 명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 미적 회고취미(懷古趣味), 이국정서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신념이나 태도의 경향을 말한다. 또 한편에서는 감정의 과잉과 무분별한 분출이라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통상 낭만적이다란 말을 '감성이 풍부하고 열정적이며 진실하고 풍류가 있다'는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하거나 받아들인다.
제법 알려진 머리 히끗한 중견인들이 낭만파클럽을 만든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따지지 않고 손해보며 즐겁게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삶을, 살기 위한 모임을 만들어 삶을 나누고 즐긴다는 것이다
saludyamor라는 낭만파 클럽 게시판의 낭만파 지수 테스트 항목은 1. 지갑을 보고 친구를 삼지 않는다. 2.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3. 꼬치꼬치 따지지 않고 차라리 내가 손해를 본다. 4.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귀고 그들과 정을 나눈다. 5. 자연을 사랑하고 즐긴다. 6. 멋을 부릴 줄 안다. 7. 문화, 예술 및 스포츠를 사랑한다. 8. 조건없이 서로 돕는다. 9.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한다. 10. 다방면에서 많은 지식을 습득한다. 등이고 마지막으로는 24. 흥이 나면 '거리의 악사'의 음악에 맞추어 대중 앞에서 깜짝 춤을 출 수 있는 낭만적인 용기가 있다. 라고 되어있다.
상상만 해도 여유롭고 한가한 모습이다. 마치 우리시대 귀족클럽 회원의 자격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러나 촌음을 다투고 경쟁하며 살아가는 이 각박한 시대에 자신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남보다 더 손해보며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결국 낭만적이란 것은 현실을 마취된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환각이 아니었을까?
한국일보에 니르바나 컬럼을 썼던 한 남성은 "당신은 왜 프로포즈나 연애론 등 그런 낭만적인 것을 강조해서 사람들에게 환상을 부여하는가?"란 독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삶에 있어 환상은 다분히 필요한 요소이며 어느 누구도 꿈이 없는 건조한 삶은 원하지 않을 테니까. 낭만은 일종의 윤활유이며 연애야말로 어른들의 놀이이며 낭만은 인생의 양념이다 "
어떤 이들은 말한다. 환상이 없다면 인생은 무슨 맛으로 살 것인가? 그러나 여성과 남성에게 심어준 환상 때문에 삶은 얼마나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던가? 하루 10쌍이 결혼하고 4쌍이 이혼하는 세상에서 낭만적 사랑의 대본은 충분히 해악이 많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환상을 원하는가? 환상은 현실보다 아름답고 그곳으로의 도피는 마취약처럼 달콤하기 때문이다. 나도 환상을 가진 사랑과 결혼으로 인생을 허우적대었다. 운명처럼 느껴졌던 그것이 사실은 내게 주입된 것인 줄 알게된다면 사랑에 대해 좀더 이성적이 되지 않았을까?
사랑의 각본이란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믿음 인식 태도 등을 말한다. 사랑의 감정을 굳이 '각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감정이나 행동양식도 저절로 우러나거나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서라기보다 사회·문화적으로 확립된 각본의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아마도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적 사랑까지도 제 스스로 삶과 사랑의 각본을 짰던 게 아니라 가족과 학교와 사회 문화가 만든 주어진 각본에 따라 행동한 공주와 왕자의 역할극 배우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적 사랑에 열광하는 연령은 겨울동화와 교문지도라는 교사의 글까지 나올 정도로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로 낮아지고 있다. 또 낭만적인 사랑의 환상은 젊은날 정신없이 바쁘게 경력을 쌓은 성공한 장년의 남성까지도 그 함정에 빠트린다. 무기판매를 위해 접근한 여성로비스트에게 보낸 전 국방부장관의 연애편지는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그의 환상을 비극적으로 말해준다. 성공한 남성들까지도 사랑의 환상 때문에 집을 나와 호텔을 전전하게 만들고 누구보다 똑똑한 여성변호사가 단번에 반한 남성과 사기결혼해서 고생을 자초한 이야기 등등 낭만적 사랑의 폐혜는 단지 안나카레리나 같은 소설 속주인공이 겪는 특수한 일이 아니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제대로 된 관계를 가질수 없게 만드는 사랑에 대한 환상, 즉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는 아직도 건재하고 갈수록 강화된다.
어린시절 '늘 바람이 부는 쪽에 서서 바람을 막아주고 내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 흑기사가 되어주고 자신이 가진 귀한 것은 모두 내게 바치며 오직 나만 생각해주던 남친.을 가졌던 내가 요즘도 가끔 옛날영화를 보다가 혼자 웃는 것은 내 어린 남친이 내게 보였던 그 행동들이 당시 헐리우드 흑백영화 속의 미남배우들이 여주인공에게 하던 행동과 무척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 십대 초반의 조숙한 시골소년은 아마도 그런 영화를 통해 낭만적인 사랑 각본을 받아들였나 싶은데 어린 나이에 추워도 윗옷을 벗어 내게 주었고, 제 손수건은 내게 주고 이슬 내린 풀밭에 그냥 앉았다가 엉덩이가 온통 풀물과 이슬로 뒤범벅이 되어 돌아갔을 그를 생각하면 지금도 참 우습고 안스럽다.
나의 남친은 믿음직하고 늠름하며 정열적인 서구신사의 역활을 자신에게 내면화했고 신데렐라 ,빨간머리 앤과 키다리아저씨 등을 읽고 자란 나 또한 약간의 내숭어린 순결과 정숙(?)의 포즈를 가진 서구숙녀의 역할을 하려고 했으니 우리들 사랑각본도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나는 온갖 연애소설과 주변 어른의 조언과 영화가 만들어 보여주는 각본에 따라 모시러 오는 왕자가 많은 공주가 되기 위해 자립의 준비보다 겉을 꾸미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방년 25세에 주입된 낭만적 사랑의 각본을 따라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돌진해온 현재의 남편과 용감하게 결혼에 꼴인하게 된 것이다.
낭만적 사랑의 수많은 신화들은 우리의 모든 판단과 이성을 마비시켜 나는 그가 뭐든 다 해결해줄 해결사로 보였고 그에게는 내가 해결사로 보였나보다. 둘은 함께 있으면 서로가 보완되리라 믿어 미친 듯이 부모님을 졸라 미혼의 형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강행했다. 그러나 그 감상은 아래 나의 시가 그 진한 체험을 말해 주리라.
나는 떠났네 환상의 나라로 /스물 세 살에 둥둥 풍선처럼 부풀어 /가난했지만 얼굴이 맑고
꽃다발을 바칠 줄 아는 남자에게 //
산데리아는 은성했고/촛불은 신성함에 떨렸지 / 이마 위 보석 별 빛나고
하이얀 꽃다발을 든 /나의 흰 손은 고귀하여 /구름같이 흰 너울을 쓰고 /오직 그에게로 걸어갔네 //
아아 신데렐라의 아침처럼 /희디흰 결혼의 환이 풀리고 /내게는 한 짝의 유리구두도 없이
/세상으로 가는 길마다 /깊푸른 강이 넘쳤네 //
나는 견디었네 봉분 속에서 /아침이면 끊임없이 밥을 지었고/많은 날 엎드려 마루를 닦았네 /마술이 풀린 생쥐들이 /내 원고지에 지린 오줌을 눌 때까지 //
아이가 울면 나도 울고 /아이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 칭칭 감긴 관계엔 실핏줄 돋아/ 하이얀 날개옷 낡아버릴 때까지 /나 결코 하늘로 떠오를 수 없었네 //
사랑의 도금은 덧없이 벗겨지고 /관습의 누더기 우리를 덮었지 /나는 갔었네 돌아가기엔
너무 먼 곳까지 /자궁 속엔 박쥐가 날아다니고 /가슴엔 쓸쓸한 홍살문 하나 세워질 때까지//
나는 장승처럼 그저 /노년의 바다에 잠기려 했었네 /묻어 줄 아이 하나 남기고
/가장 숭고하고 외로운 /어머니의 이름으로 소리없이 /기울어지는 배를 타고 있으려 했네//
그러나 놀라워라 /날개 털이 다 빠져도 새는 새 /푸른 하늘을 꿈 속에서도 날개치는 /본능이 있었지//
나는 이제 날아오르려네/ 하늘에는 나의 별 반짝이고 /가슴속엔 아직 그대로인 벌판이 있어/ 그 원시의 초록은 /꿈속에서도 나를 불렀네.
----------------장정임 <결혼을 노래함> 전문 ----
기든스는 남녀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형태를 중독적 사랑, 낭만적 사랑, 그리고 합류적 사랑으로 구분하고 있다. 감정속에 자신의 주체적인 정체성을 투영시키는 낭만적 사랑이 '관계의 순수성'을 살려나갈 수 있어 에로티시즘에로 모든 의미를 귀착시키는 중독적 사랑으로부터 거리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흔히 누구에게나 낭만적 사랑의 장점이 개인적인 가치의 존중이란 면에서 중독된 사랑이나 계산된 결혼보다 의미있게 평가된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은 여성의 경제적이고 심리적인 상황을 사랑의 환상으로 뒤덮어 여성의 남성 예속을 당연시 해버린다. 마치 마취제에 취한 나포된 동물처럼 여성은 환상에 취해 운반차에 실린채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팍팍한 현실에 뛰어든다. 이점은 환상에 빠진 남성들도 다를 바 없지만 사회적 배려라는 면에서 여성보다 그리 치명적이지는 않다.
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은 그 낭만적 사랑의 각본이 가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알지도 대비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이 두 가문의 결합이요 두 사람의 본심이 숨어버린 거래인 줄은 꿈에도 몰랐고 불같은 정열과 사랑이 그렇게 빨리 식어버릴 줄도 몰랐다. 철저한 설계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주 나중에 나날이 닥치는 고통에 "왜 이러지? 왜 이렇지? "하며 허겁지겁 뒤뚱거리고 쓰러지며 상처받은 후에야 깨닫게 된 일이다. 우리는 어느새 부모라는 원죄 외에도 아무런 준비 없이 아기를 만들고 낳은 철없는 남편과 아내로 또 온갖 시행착오로 가여운 아기들을 고생시킨 철부지 부모가 되어 죽는 날까지 반성해야 할 죄인이 되어버렸다.
하이얀 웨딩드레스를 가장 멋진 패션중심지에서 맞추고 온갖 친구를 불러 두시간이나 식을 진행하며 호화결혼식(?)을 했지만 얼마 되지않아 남편이 그리 유능한 왕자가 아니라 순 거짓말쟁이란 (고생 안시키겠다고 얼마나 공약을 했던가?) 것을 알고 당황했고 그는 내가 공주가 아니라 바가지를 박박 긁는 마누라쟁이란 것을 알고 집에 들어와 애 보는 것을 어떻게든 피해보려 자주 거짓말을 하고 도망 다녔다.
공주와 왕자가 결혼해서 오래 오래 잘먹고 잘 살았다는 말은 우리들이 읽었던 이야기의 결과이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의 결과는 짧으면 패로몬이 작동하는 3달 ,길어야 3년의 정열이 식으면 끝나는 일이다. 그런데도 왕자님을 기다리는 것이 여성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경쟁하며 아귀다툼을 하는 것보다 우아하게 보인다고 흔히 여성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공주가 되기 위한 노력을 오너가 되기 위한 공부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
만약 내가 그런 환상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부모와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도록 조언하고 도왔다면 내가 얼마나 단단해졌을까? 그러므로 사랑도 이제 학문처럼 연구하고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온갖 정보를 제공하고 제공받는 일이 되어야 한다. 사랑을 연구나 탐구 대상이 아닌 것으로 미화하고 신비화시켜 천상에 올려두어서는 안된다.
흔히 "사랑은 친밀감과 열정과 헌신의 세가지 측면이 있어야 완전한 것이라며 부부는 결혼초 낭만적 사랑으로 시작하고 결혼생활이 지속되면 우애적 사랑으로 변하는 경향이 많으며 낭만적 사랑에는 친밀감과 열정은 있으나 헌신이 없고 우애적 사랑에는 친밀감과 헌신은 있으나 열정이 없다" 고 말한다.
어쩌면 사랑은 불길로 훨훨 태우기보다 함께 손잡아 강을 건너는 일이다. 낭만적 사랑이 가지는 인간에 대한 그대로의 수납과 정열은 아름답다. 그러나 이 신화는 너무도 견고해져서 춘향이와 신데렐라와 앤의 의존성조차 미화하고 신화화 해버린다. 신화속에 사로잡힌 여성들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일, 그들을 해방시켜 스스로 걸어나가게 하는 일, 사랑 때문에 혀와 다리를 잃는 인어공주가 되기를 거부하는 일이 여성에겐 무엇보다 필요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