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 여행 ] 투구꽃 그 마을 입석리 선돌백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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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여행] 투구꽃 그 마을 입석마을 선돌백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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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랑자는 청풍명월의 고장, 충절과 효의 고장 제천시 松鶴(송학)면 에서도 立石里(입석리)마을을 찾았다. 남
한강 상류의 시곡천이 앞으로 흐르고 있는 입석마을은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입석’ 돌의 마을이라는 뜻이 담
겨져 있는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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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석 마을은 찾은 이유는 목적지 “원호 유허비 관란정”을 찾아가는 도중 마을 초입에 선돌백이의 고장 이라는
입간판이 크게 세워져 있어 궁금증이 유발 갑자기 핸들을 돌린 곳이다. 입석리 서남쪽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38
번국도 도로변 들판에 “선돌”이라는 특이한 돌이 있다기에 호기심에 찾았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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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기념물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돌은 송학면 입석리 서남쪽 논둑 주변에 소재하며 하나의 돌이 아닌 7
개의 돌을 3단으로 쌓아 높이가 약 4m에 달하고 둘레만도 어른 세 사람이 팔을 펼쳐야 잡을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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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형상 입석리가 있는 松鶴(송학)면은 병풍처럼 감싸 안은 청정 송학산(819m)이있다, 산전체가 거의 소나
무로 이루어져 있는 산으로, 송학천 과 무도천 등에 물고기들이 많아 학들이 둥지를 틀고 산에 지천으로 노닐어
송학 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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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명칭의 뜻도 재미있다, 歲歲松風萬古喜(세세송풍만고희) 一飛白鶴千年寂(일비백학천년적) 이말인 즉슨 “세
세년년 솔바람 불어오니 만고의 즐거움 가득하고 한무리의 학이 날아오르니 천년이 고요하네“ 송학의 지명이 유
래된 한시로 알려진 구절이다. 극히 평범하고도 전형적인 강원도 인접 산촌의 조용한 마을, 노송숲 사이로 부는
솔바람에 마음을 씻고 푹신하게 쌓인 솔잎을 밟아 오르면 거기 발아래로 펼쳐지는 작은 마을 풍경이 말을 건넨다
는 입석리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이다, 요즘엔 흉물스러운 채석장터 들과 시멘트 공장의 환경 피해가 넘 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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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지방에서 확인된 선돌 가운데 가장 큰 편에 속하며, 위 끝 한쪽이 뾰족한 남성선돌의 특징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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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은 입석마을 입구 길 옆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으며, 「선돌백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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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언젠가 입석이라는 마을의 이야기가 어렴풋이나마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있다, ‘투구꽃 그 마을’이
라는 영화(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다, 그런데 영화 제목에 왜 ‘투구꽃’을 접목했을까? 본시 투구꽃은 다년생풀
로 9월에 로마 병정의 투구를 닮았다 하여, 투구 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투구는 아름다운 보라색 꽃을 피운다. 하
지만 이 투구 꽃은 독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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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후화’에서 극중 황후가 계속 마시던 탕약도 사실은 투구 꽃에서 추출한 독약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
은 투구는 서늘한 그늘에서 잘 자라며, 햇빛을 많이 받으면 오히려 꽃이 피지 않는다.
아~그러고 보니까 이 마을이 그 마을? 유랑자 기억엔 아세아 시멘트 공장의 폐해로 인한 환경 문제로 마을이 병
들어 가는 이른바 환경 고발 영화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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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은 민간신앙의 대상물인 숭배 기능과 농경에 대한 풍요, 그리고 마을의 안녕과 경계의 기능이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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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논 가운데 있었던 선돌을 1992년 농지개량을 하면서 노원을 조성하고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마을의
명칭이 입석리(立石里)가 된 것도 바로 이 선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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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유랑자는 선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선돌을 향해 다가간다. 먼저 안내판을 보니 충북도기념물 제117호
로 지정되어 있는 선돌은 하나의 돌이 아닌 7개의 돌을 3단으로 쌓아 높이가 약 4m에 달하고 둘레만도 어른 세
사람이 팔을 펼쳐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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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지방에서 확인된 선돌 가운데 가장 큰 편에 속하며, 위 끝 한쪽이 뾰족한 남성선돌의 특징을 가진다. 선돌
에 볏짚이나 새끼를 감겨 있는 것으로 보아 신격화하여 마을 守護神(수호신)으로 모시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농촌이나, 어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堂山(당산), 즉 마을의 안녕이나 또는 토지의 신이 있다고 여겨
지는 사물 등에 대하여 민간 신앙으로 산, 나무, 돌, 등등 여러 형태의 의미를 부여하고 민간에서 전승되는 주술적
인 종교를 가리키는 용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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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에 볏짚이나 새끼를 감아 신격화하여 마을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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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민간신앙은 주로 가정이나 마을이라는 지역 생활 공동체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발전한 일종의 종교라는 점
에서 가신신앙과 마을신앙, 무속신앙이 그 중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의 지형으로 보아 과거 논 가운데
있었던 선돌을 1992년 농지개량을 하면서 노원을 조성하고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마을의 명칭이 立石里
(입석리)가 된 것도 바로 이 선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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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름이 "입석리"로 된 것처럼 이 마을의 문화적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 이 선돌을 보존하기 위하여
1986년부터 매년 음력 10월 중에 택일하여 주민들이 "선돌회"를 조직하여 관리하고 있는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
원하는 선돌 제를 지내고 있으며 선돌의 기능·구조·학술적 의미 등에서 중원지방의 대표적인 선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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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입석리 선돌에는 선돌과 마고할미 전설을 소개 해본다.
원래 마고할미는 이 세상의 지형을 만든 거인 여성신이다. 입석리 선돌에 얽힌 마고할미 전설은 다음과 같다.
아주 옛날 麻姑(마고)할미들이 우연하게 입석 리에서 마주쳤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마고할미는 서로 힘
자랑을 하게 되었다. 한 마고할미가 옆에 있던 큰 돌을 들어 던졌다. 그 돌은 논 가운데로 날아가 땅에 박혀 우뚝
섰다. 이것을 본 다른 마고할미도 커다란 돌을 짚어들어 앞서 마고할미가 던진 곳을 향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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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돌은 하늘을 날아 먼젓번에 던진 돌 위에 떨어져 두 개의 돌이 겹쳐져 하나의 돌처럼 되었다. 결국 여기서 벌인
두 마고할미의 힘내기는 승부를 보지 못한 채 무승부로 끝내고, 두 마고할미는 각기 제 갈 길로 떠났다. 이때 마고
할미가 던진 돌들이 입석리의 선돌이 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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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할미와 입석리 선돌 설화는 단순한 설화를 넘어 지역의 문화적 구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고대 한국인
들이 자연계와 가졌던 깊은 관계를 반영하며, 자연을 신성한 힘에 의해 형성된 살아있는 캔버스로 본다. 그러므
로 입석리 선돌은 물리적인 랜드마크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천상의 존재들의 창조적이고 때로는 경쟁적인 정신
을 기념하는 영적인 상징으로도 남아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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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9toB/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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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문화관광(제천 여행은 여기에서)
tour.jecheon.go.kr/
*입석리 선돌 찾아가기
- 주소: 충북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665-3
- 대표전화: 043-641-6731 ~ 3 (제천시 관광안내)
- 운영시간: 0:00 ~ 24:00
- 입장료: 무료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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