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을 뒤늦게 찾는 사울 왕
사무엘상 28:11, 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하는지라
찬송가 387장(멀리 멀리 갔더니)
선지자 사무엘이 죽자 이스라엘 왕국에 국가적 위기가 곧 닥쳤습니다. 늘 나라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여 블레셋 군대의 침략을 영적으로 저지하였던 사무엘의 서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슬픔이었습니다. 전 국민적인 애도 속에 사무엘 선지자를 그의 고향 라마 나욧에서 그 시신을 묻었을 때에 그토록 사무엘을 멀리하던 사울 왕도 잠깐이지만 영적 각성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왕으로서 해야 할 바를 제대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전국에 있는 신접한 자와 박수 무당들을 그 땅에서 쫓아냈습니다.
이는 모세 율법에서 반복적이고 분명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고 있는 규례입니다. 출애굽기 22:18 말씀에 이르기를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19:31 말씀에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20:6,7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 이래로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스라엘 곳곳에서 점치는 자들, 요술하는 자들, 무당들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하였으나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사울 왕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그 땅에서 이러한 점치는 자, 마술사, 진언하는 자, 죽은 자의 혼령을 불러 들이는 초혼술자들을 내어쫓는 일일 행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이 그렇게 행한 일은 사무엘 선지자의 죽음으로 인한 잠깐 동안의 각성이었을 뿐입니다. 사울은 정작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였던 선지자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한번도 스스로 찾아가서 국사의 자문을 구하거나 개인적인 조언을 받거나 축복 기도를 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사울이 사는 기브아와 사무엘의 거처인 라마 나욧의 거리는 3.2km로 십리 거리도 안 됩니다. 천천히 걸어도 약 40분 내지 1시간이면 도착하기에 족한 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사울 왕은 그의 집권 40년 기간 동안 자기가 직접 사무엘을 찾아간 적이 없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부어 왕위에 세운 하나님의 종이요 늘 자기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중보 기도자요 나라의 안위를 위하여 늘 깨어 기도하는 나라의 마병과 병거였습니다. 그런데도 사울 왕은 사무엘이 살았을 때에는 이처럼 사무엘을 경쟁 상대로 여기고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사무엘 선지자가 세상을 떠나자 그 때서야 사울 왕은 잠시 영적 각성이 일어나 시키지 않았으나 그 땅에서 무당들을 쫓아내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사무엘이 죽었고 사울이 그토록 못 잡아 먹어 안달이었던 다윗조차 블레셋 가드로 망명해오자 블레셋 다섯 왕들은 연합하여 큰 군대를 결성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큰 위기를 맞이하자 그제서야 사울 왕은 세상을 떠난 사무엘의 빈 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절감하게 됩니다. 만약 이러한 때에 사무엘 선지자가 있다고 한다면 선지자가 기도해준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블레셋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줄텐데 하는 아쉬움이 한 가득 마음에 차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무엘 선지자는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 때서야 선지자가 살아 있을 때 찾아가지 못하고 그에게 국사에 조언을 구하지 아니하였던 것이 큰 후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뒤늦게 자기가 쫓아내었던 신접한 여인을 찾아 가서, 죽은 사무엘의 혼령을 불러올려서 그의 조언을 받고자 합니다.
사무엘이 살아 있을 때에는 그를 멀리하고 홀대하고 경쟁 상대로 여기더니 죽은 뒤에야 그를 뒤늦게 찾는 사울 왕의 모습은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더욱이 하나님께서 심히 가증히 여기는 무당을 찾고 초혼술을 부려서 죽은 사무엘의 혼령을 불러내어 그에게 묻는 것은 마귀에게 영혼을 팔아넘기는 행위입니다. 그리하여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임하는데, 그 다음날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군대에 대 참패를 하게 되고 사울 왕과 그의 세 아들이 다 함께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울 왕이 선지자 사무엘을 대했던 잘못된 태도와 그가 죽은 뒤에서야 그의 소중함을 알고 심지어 초혼술을 통해서라도 사무엘을 찾았다가 멸망을 자초한 사건은 우리에게 뚜렷한 영적 교훈을 던져줍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비록 쓰라린 책망을 자주 할지라도 그를 소중히 여기고 늘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고 잘못이 있을 때는 근실히 책망해주고 충고해주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는 사람, 이런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 더 소중히 여겨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27:6 말씀에,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에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잠언 28:23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에게 있어서 사무엘 선지자 그리고 다윗 왕에게 있어서 나단 선지자나 갓 선지자처럼, 잘못했을 때에 찾아와 쓰라린 충고의 말을 해주는 이들이 진정한 친구요 패망에서 건져내는 진정한 한 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교우와 친구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생각하고 늘 가까이 찾아 교제하며 함께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들이 우리 곁에 아직 함께 있을 때 그에게 잘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평안할 때에 하나님을 자주 찾고 그의 말씀을 달게 여기고 늘 순종합시다. 그리할 때에 우리가 고난 중에 하나님을 갈급히 찾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내가 여기 있다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구원의 팔을 내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