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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글쓴이: 들풀처럼
까비르 1. 벗이여 어디 가서 나를 찾느냐.]
1.
벗이여 어디 가서 나를 찾느냐
보라. 나는 그대 옆에 있다.
나는 사원에도 모스크에도 없다.
카바 신전에도 카일리쉬에도 나는 없다.
어떠한 종교의식 속에도 요가와 명상 속에조차
그리고 이 속세를 떠나는 그 결단 속에도 나는 없다.
그대여 진정한 구도자라면
지금 나를 볼 수 있을 텐데.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까비르는 말한다.
친구여 신은 모든 생명의 한가운데이다.
2.
벗이여. 살아 있을 동안 그를 찾으라
살아 있을 동안 그를 알라.
삶의 이 자유가 계속되는 동안
살아 있을 동안 이 속박이 풀리지 않는다면
죽은 후에 자유를 원해서 또 무얼 하겠는가
오직 영혼만이 그와 결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크나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금 육체라는 이 에너지 통로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를 발견하라
지금 그를 찾지 못한다면
그대 갈 곳은 죽음의 도시 뿐이다.
지금 그와 하나가 되라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 진리에 몸을 담그라.
진정한 구루를 알라.
그리고 진정한 신의 이름을 굳게 지켜가라.
까비르는 말한다.
목마르게 찾는 영혼만이 그를 만난다.
그런 영혼에게 내 모든 걸 바치고 싶다.
[까비르 2. 어떻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
5.
저 비밀의 언어를 어떻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이렇다, 그는 저렇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가 내 안에 있다고 해도 맞지 않고
그가 내 안에 없다고 해도 맞지 않다.
그는 안의 세계와 밖의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
의식과 무의식은 그의 발받침에 지나지 않을 뿐
그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은폐되지도 않는다.
그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6.
강과 그 물결은 하나다.
여기 강과 물결의 차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물결이 일 때도 그것은 강물이요
물결이 잘 때도 그 역시 그저 강물일 뿐
벗이여 말하라 여기 무엇이 다른가를
물결이기 때분에 더 이상 강물일 수 없단 말인가.
유일자 속에서 이 우주는
로자리오의 알들과 같이 널려 있다.
보라, 지혜의 눈으로 저 로자리오를
로자리오의 널려 있는 알들을..
[까비르 3. 돌아오라 이 육체 속으로]
7.
저 쪽 언덕으로 건너 가려 하는가, 내 가슴이여.
여행자도, 길도 없는데
삶의 율동이, 영혼의 휴식이 저 언덕 어디에 있단 말이냐?
강물도 나룻배도 그리고 뱃사공도 없는데
닻줄도 넉넉지 않고 줄 잡을 사람도 없는데
여기 몸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다.
영혼이여, 도대체 어느 곳을 아직도 갈망하고 있는가?
저 텅 빈 것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용기를 내라.
그리고 그대 자신의 육체 속으로 돌아오라.
반석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가습이여, 내 가습이여
이제부터는 어느 곳으로도 가지 말라
까비르는 말한다.
"모든 관념을 멀리 하라.
그리고 어서 그대 자신과 마주 서라."
8.
스승은 나로 하여금 미지의 세계를 알게 했네.
발 없이 걷는 법을
눈 없이 보는 법을
귀 없이 듣는 법을
입 없이 먹는 법을
그리고 날개 없이 나는 법을
스승은 나에게 가르쳤네,
해도 없고 달도 없는 곳,
그리고 밤도 없고 낮마저 없는 곳에서
내 사랑과 명상은 시작되었네.
마시지 않고도 능히 감로의 진수를 맛보았고,
물이 없으나 내 갈증은 이미 풀렸네
거기 기쁨의 응답만 있을 뿐, 환희의 충만이 있을 뿐
뉘라서 이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까비르는 말한다.
"스승은 위대하네, 스승은 이미 언어의 차원을 너머갔넨.
위대하여라 스승이여, 이것이 제자의 기쁨이네."
[까비르 4. 그대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9.
갠지스에 가 보라, 거기 물 빡에는 아무 것도 없다.
성수(聖水)에 목욕한다는 것이
정말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미지들은 모두 생명이 없다.
무릎이 닳도록 불러 보았지만
그들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뿌라나(Purana)나 쿠란 역시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비밀의 커튼을 열어 젖히고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까비르의 언어는 체험에서 나온다.
진리는 체험을 통해서만 입증된다.
까비르는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0.
물 속의 고기가 목말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진리는 그대 집안에 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은 이를 잘 모르고 있다.
이 숲, 저 숲 쉴새없이 헤매고 있다.
여기, 바로 여기 진리가 있다.
가라, 가고 싶은 대로 가 보라.
베나레스로, 마투라로,
그러나 그대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세계 전체가 환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까비르 5. 이 형상의 영광을 노래하네]
11.
사두여, 간단하게 그대 몸을 정화하라.나무 속에 씨가 있고
씨 속에 다시 꽃과 열매, 그리고 그늘이 있다.
나무 속에 새싹이 있고,
새싹 속에 또 나무가 있다.
불, 공기, 물, 흙, 공간
이런 것들은 결코 그 (神)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벗이여, 이를 잘 여겨 보라.
영혼이 없는 것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잔 말인가.
가득찬 물 주전자를 다시 물에 놓으면
주전자의 안도 물이요 밖도 물인 것을...
어떠한 이름도 붙이지 말라.
부디 상대주의 쪽으로 끌려가지 말라.
까비르는 말한다.
"들어라. 그대 자신의 소리인 이 진리의 말을..."
그는 그 자신에게 말한다.
그는, 그 자신은 누구인가.
그는 유일자다.
그는 창조주다.
12.
여기 이상한 나무가 한 그루 있네.
뿌리 없이 자라고, 꽃피지 않고 열매를 맺으며
가지도 잎도 없으면서 연꽃이 활짝 피었네
두 마리 새가 이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데
한 마리는 '스승'이요 또 한 마리는 '제자'네
'제자'는 삶이라는 이 과일을 맛있게 먹고 있으며
'스승'은 기뻐하며 그걸 지켜보고 있네.
새는 이미 심계를 넘어갔으나
지금 가장 뚜렷하게 보이고 있네.
이 모든 형상의 한가운데는 무형이니
형상들의 이 영광을 나는 노래하네
[까비르 6. 그는 도처에 있다]
13.
스승은 나로 하여금
무형의 형상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스승은 그(神)에게 이르는 간단한 방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 방법은 어떠한 종교의식보다도 더 실제적이다.
명상. 요가수행
그리고 이 속세를 떠나는 따위의 어린 짓을
스승은 결코 권장하지 않는다.
가라. 어디든지 그대 마음이 가는 곳에세
세속적인 그 애착을 통해서
저 유일자를 만나라.
이 일상생활의 한복판에서 고요의 상태를 지켜 보라.
저기 축복이 햇살처럼 쏟아지고 있다.
두려워 말라 그대여,
부디 삶의 이 즐거움을 등지지 말라.
이 즐거움은 그의 선물이다.
삶의 이 즐거움의 한가운데서 그를 만나라.
영원한 존재의 거주처는 이 세상 모든 곳이다.
땅이. 물이. 하늘이
그리고 공기가 영원한 그의 거주처이다.
찾는 자여. 그대의 발판은 흔들리지 않는다.
저 진공, 그 위에 그대는 자리잡았으믈
보라, 그는 이 모든 것들의 안이면서 동시에 밖이다.
둘러보아도 둘러보아도,
아무리 아무리 휘저어 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직 그(神)밖에 없다.
14.
방황할 때, 스승은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모든 형식과 종교의식을 버렸다.
성수에도 더 이상 목욕하지 않았다.
"너는 혼자다, 비정상이다.
보라. 너를 둘러싼 이 세상이 정상이 아니겠느냐"거
사람들은 주먹을 휘둘러댔다.
이 어리석은 성자들 때문에
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 어리석은 자들 속에,
이 먼지구덩이 속에
더 이상 같이 뒹굴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사원의 종을 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우상에게 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등상에게 꽃을 바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은
저욕의 억제도 아니요, 엄숙성도 아니다.
몸을 학대하고 감각을 죽이는 것은
결코 그에 대한 찬양이 아니다.
진실만을 굳게 지켜 가는 사람.
아귀다툼하는 이 속세의 한복판에 묵묵히 남아 있는 사람
이 모든 창조물들을 자기자신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영원한 존재에 이를 것이다.
신은 영원히 그와 함게 있으므로
까비르는 말한다.
"그 사람은 진정한 이름에 도달했다.
그 사람은 자만심과 독선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까비르 7. 이 세상의 리듬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곳]
15
요기는 그의 마음이
사랑의 빛깔로 물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차디찬 법복 속에서 죽는다.
그는 신의 집에 앉아서
신을 멀리하고 돌덩이를 숭배하고 있다.
그는 긴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를 가졌다.
그는 마치 염소와 같다.
그는 숲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욕망을 모두 죽인다.
그리고는 그 자신을 고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기따'를 읽고 굉장한 말꾼이 된다.
까비르는 말한다
"요기여, 손발이 꽁꽁 묶여서
그대는 지금 죽음의 문으로 가고 있다."
16.
그의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내 자신을 도저히 가눌 수 없구나
봄도 아닌데 웬 꽃이 이렇게 만발한가.
벌들은 이미 꽃의 초대를 받았다.
하늘이 으르렁거리고 번갯불이 하늘을 가른다.
내 가슴에서는 물결이 일고....
이윽고 비가 내린다.
내 가슴은 지금 몹시 그를 갈망하고 있다.
이 세상의 리듬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곳,
마침내 그 곳에 내 가슴은 닿았다.
숨겨진 깃발들이 공중에서 펄럭이고 있다.
까비르는 말한다."내 가슴은 죽는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영원히 산다."
[까비르 8. 귀 없이 그 소리를 듣는다]
17.
나는 종교적이지도 않고 무종교적이지도 않다.
나는 계육적으로 살지도 않고 감각적으로 살지도 않는다.
나는 '말하는 자'도 아니요 '듣는 자'도 아니다.
나는 하인도 아니요 주인도 아니다.
나는 구속받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다.
나는 집착하지도 않고 초연하지도 않다.
나는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다.
나는 지옥에도 가지 않고 천국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일에 종사한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일에서 멀리 떠나 있다.
이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이 뜻을 이해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까비르는 보고 있다.
설립도 아니요 파괴도 아닌 것을.
18.
하아프의 소리 들려온다.
손도 없이 발도 없이 춤이 시작된다.
손가락이 없이 하아프를 켠다.
귀없이 그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귀다. 동시에 그는 듣는 자이다.
문은 굳게 닫혔다. 그러나 그 속에 향기가 있다.
이 만남은 누구도 엿볼 수 없다.
그러나 지혜 있는 이는 이를 이해할 것이다.
[까비르 9. 두 선율 사이의 침묵]
19.
누가 신이 있는 것을 알고 있겠는가.
까비르는 말한다.
"나무를 모르는 자여,
너는 결코 숲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추상적인 개념을 통해서는
결코 구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20.
사두여. 내 나라에는 슬픔이 없다.
높은 자여, 거지여, 그리고 수행자여.
나는 그대들에게 외친다.
영원한 집에 들어가고자 하는가
오라. 모두 오라. 내 나라로 오너라
목마른 자여, 지친 자여,
여기 그대 짐을 벗어 놓아라.
형제여, 여기 살아라.
여기 피안으로 가는 나뭇배가 있다.
이 나라에는 땅도 없고 하늘도 없다.
달도 없고 별마저 없다.
오직 진리만이, 진실만이
내 어머니의 궁전에서 빛나고 있다.
까비르는 말한다.
"형제여, 사랑하는 형제여
'빈 것'이야말로 진리의 심장부이다"
까비르, 15세기 인도가 낳은 순수한 영혼
【웹발췌 】|
까비르를 아는가? 까비르를 알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까비르를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
까비르는 1440년경 인도 비하르州 베나레스에서 가난한 과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이내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업동이로서 베짜는 직조공이었던 회교도 집안에서 자라서 평생 베를 짜며 평범한 삶을 살다 갔지만 그의 집에는 힌두교의 사두와 요기, 회교의 파키(수행자)와 수피(회교의 신비주의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은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인도 민중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글을 배우지 않아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인도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시성이라 일컫는 타골과 마하트마 간디의 정신적인 스승이기도 하다.
그의 생애는 그저 베짜고 물긷고 시장에 가는 것이 전부로 보였을 정도이지만 신(神)을 향한 헌신과 사랑의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까비르의 신(神)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의 초월신도 아니요, 범신론(汎神論)도 아니다. 추상적이거나 맹목적인 존재가 아닌 그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각성된 영혼의 상태로서 신(神)을 말하고 있다. 그의 신(神)에 대한 사랑은 현세에서 생활하는 매 순간순간의 체험을 통해 구체화 할 수 있는 그런 사랑과 절대적 헌신이다.
그는 형식적인 모든 종교와 명상마저 거부한다.
종교라는 이름아래 행해지고 있는 어떤 형태의 조직이나 권위, 그리고 물질적 타락을 거부한 채 신(神)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헌신만을 강조한다.
작금 이 땅에서도 종교의 테두리 속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가. 종교간 다툼이 문명의 충돌로 비쳐져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있는 현실을 보면 인류는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일찌기 부처님께서도 진리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라 가르쳤다. 유마경에서도 전해지는 무설설(無說說) 침묵의 소리를, 영혼의 교감을 통해서만 체득이 가능하리라. 자연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서서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바람 불고, 물 흐르는 가운데 전해져 오는 진리의 소식에 감사해야 한다.
욕심을 채우기 채우기 위해 온갖 비리와 범죄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행위를 멈추고 순수한 영혼의 떨림에 응답해야 한다.
까비르의 죽음도 의미심장하다.
시신을 두고 다툴 힌두교 제자들과 회교 제자들을 위해 죽은 뒤 일정기간 천으로 덮어둘 것을 당부한 그 마음에 이르면 그야말로 신비하다. 나중에 천을 들어보니 몸은 어디로 가고 꽃 몇 송이만이 남아있었다는 거룩한 죽음. 힌두교 제자들은 그 꽃을 화장하여 강가에 뿌리고, 회교 제자들은 땅에 묻어 묘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
- Bill Douglas
첫댓글 침묵의 소리 ...영혼의 교감으로 통하는 언어
언젠가 부터 침묵의 언어를 공부 중입니다
까비르 ...
공유감사합니다
사랑 가득한 오늘이 되시기 바랍니더 ^^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에~~_()_
까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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