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사
제사 지내는 날이 돌아오기를 많이도 기다렸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제삿날은 명절과 같이 좋게만 느껴지는 날이었다. 평소에 먹기 힘든 과일이며 고기국에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보고픈 얼굴들이 꼭 돌아와 주는 날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승려가 된 지금에도 어른 스님의 제일 (祭日)이 기다려지니, 웃 스님 제삿날이 되면 멀리 흩어져 있던 사형 사제가 모여 들고, 쥐죽은듯 고요하던 산사가 시끌벅적 깨어나는 날이 된다. 돌아가신 어른의 다정하셨던 모습과 그분의 가르침을 되새겨도 보고 덕을 추모하며, 제상 앞에 머리 조아리는 마음들은 다 같이 하나가 된다.
제사 지내고 음식 나눠 먹으며 밤 새워 나누는 이야기들은 표현 할 수 없는 기쁨 중의 기쁨이 된다.
제삿날을 기다리는 사람이라 그러한 지 조상 제사를 마다하는 이들을 이해 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기쁨들을 제쳐 놓고서라도, 조상이 없는 자손이 있을 리 없고, 부모 없는 자식이 존재할 리 없건만……. 하찮은 동물인 개와 고양이도 족보를 찾고 조상을 찾아 자신들의 뿌리를 단단히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이 자손의 도리인 제사를 거부함은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서양 사고의 잘못된 부분에 물들여진 사람들에게 용악이란 스님의 얘기를 들려 주고 싶다.
용악 스님은 조선조 순조 때 사람으로 함경남도 안변에 있는 석왕사에 머물렀다가 양산 통도사에서 생을 마쳤고, 처음으로 해인사 대장경을 종이에 찍어 책으로 엮은 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스님이 석왕사에 계실 때 일인데, 「이월 스물여드레 밤」이 되면 어김없이 꿈을 꾸게 되고 그때마다 어디론가 가서, 차 석 잔과 음식을 대접받고 오게 되는데 매년 되풀이되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집이 여염집이 아닌 수암사라는 현판이 붙은 절집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도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 수 없어 항시 수암사의 일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던 중, 어느 날 수암사에서 왔다는 객승을 맞이 하게 되고, 바로 꿈속에 찾아가는 수암사의 스님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 궁금한 「이월 스물여드레」가 수암사을 크게 중창한 중창주의 제일임도 알게 된다.
제사는 밤 제사를 지내며, 스님이 살아 생전 차를 좋아하셔서 제사를 지낸 후 차 석잔을 다려 올린다는 사실도 듣게 된다. 용악 스님은 자신이 전생에 수암사의 중창주였음을 알게 되었도 수암사 객승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수암사 중창주의 소원이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영인본으로 엮어 내는 것이었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얘기도 듣게 되는데, 바로 자신이 갖고 있던 평소의 생각이요 추진하고 있는 일이었으니, 더 말할 것 없이 객승과 함께 경기도 시흥군 수암리에 있다는 수암사에 들리어 자신의 영전에 제 올리고 발원을 한다. 결국 소원을 이루게 되어 대장경 목판본을 영인본으로 만들어 통도사와 법주사 등 네 곳에 모시게 되었다.
용악 스님의 경우와 같이 제사는 영가의 정신에, 혼에 좋은 영향을 주어 (어떤 곳에 화생하였더라도) 거룩한 복이 되고 덕이 됨을 우리는 믿고 있다.
전생에 못한 일을 금생에 다시와서 하고 가신 스님의 행적을, 제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평면적이고 분석적인 서양 사고에 물든 사람을이) 이해할 수 있을까?
제사! 그것은 미풍양속의 의미를 넘어 뿌리를 찾는 몸짓이요, 나아가 (몸을 가진 영혼이나) 몸을 버린 영혼 모두를 살찌우는 거룩한 행위요, 세상을 맑게 하는 일이 됨을 요즘 사람들이 알 수 있었으면 한다.
[석용산 스님의 여보게 저승갈 때 뭘가지고가지 중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잠시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