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것은 바람에서 시작된다.
by 세이크리드
1
나와 루스는 공주의 방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대강 가다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귀찮고 싫어도 우선 예의는 갖춰야 명예에 손상이 가지 않을 것 아닌가. 나중에 뒤에서 기본적인 매너도 없는 귀족 놈들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절대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는 지긋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준 후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고는 그 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듯 한 문을 손 등으로 두드렸다. 목재가 좋아서인지 통통 튀기는 듯 한 좋은 소리가 났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진정 됐다고 할까?
“누구시죠?”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문을 연 남자는 덥수룩한 갈색 수염이 사방으로 뻗힌 흡사 산적 같은 인상이어서 하마타면 칼을 빼어 들 뻔 했다. 남자는 우리가 대답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는 우리를 한참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아마 자신들의 나라가 아니라서 이상한 사람이라도 궁에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나보다.
우리는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문 안을 힐끔 바라보았다.
“저희는 국왕 폐하께서 공주님을 보필하라고 보낸 자들입니다. 지금 공주님을 뵐 수 있을까요?”
사내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아마 이 자는 공주가 고국을 떠나올 때 따라온 호위기사인 듯싶었다.
“아, 그렇다면 먼체스터 공작님과 티리스 백작님 되십니까?”
남자의 말에 우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 우리를 한 번 흘겨보더니 문을 활짝 열어 우리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 줬다.
“저를 보호해 달라는 티베츠 국왕 폐하의 말씀이 계셨다구요?”
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 안은 촛불 하나 없이 달빛에만 의지해 은은히 비춰지고 있었고, 때문에 우리는 공주로 추정되는 여성의 실루엣만을 아련히 볼 수 있었다. 우리 둘은 온통 ‘무슨 손님맞이가 이따위야? 나 정말 기분 상했소.’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후후, 손님이 손님을 대접한다는 상황이 재미있군요. 실례했습니다. 헨델, 불을 켜줘요. 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밝게요.”
공주는 무엇이 그리 유쾌한지 연신 웃음을 흘리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헨델이라 불린 호위기사는 바쁘게 움직이는 듯 하더니 부싯돌을 이용해 하나의 촛불에 불을 붙였다.
촛불 하나가 켜지자 초가 얹혀져있던 금색의 화려한 촛대가 보였고, 촛불 두개가 켜지자 화려한 촛대가 얹혀져있는 흰 테이블보를 씌운 넓은 탁자가 보였고, 촛불 세 개를 켜자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공주의 상처받은 눈동자가 보였다.
왜 그런 눈빛으로 보였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눈이 서글프도록 가슴이 시리다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아마 루스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멀거니 공주의 검은 눈동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흠!”
헨델의 헛기침 소리에 그제 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공주에게 머리를 숙여 약간의 예를 취했다. 뭐래도 우리보다 지위가 확실히 높은 것이니까.
“노아르 공주님, 왼쪽에 계신 금발의 분이 이븐델 먼체스터 공작님이시고, 오른쪽에 계신 붉은 머리의 분이 루스 티리스 백작님이십니다.”
헨델은 꽤나 정중한 목소리로 우리를 소개했고, 그에 대해서 우리는 일말의 불만조자 없었다. 타국의 사람이라고 해서 나쁘게 본다거나 거림직하다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말투였다. 하지만 문제는 공주에게 있었다. 그녀는 잔뜩 꼬인 목소리로 우리의 화를 돋구워 놓았으니까.
“그러시군요. 이거, 제가 오히려 고개를 숙여야 하지는 않을까요? 이렇게 귀한 분들이 저를 보살펴 주신다니 왠지 실감이 나지 않는군요.”
헨델 또한 그런 공주의 말투가 당황스러웠는지 말리지도 못하고 맞장구치지도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뭔가 계속 말을 꺼내려고 했다.
루스는 그런 그를 인상을 찌푸린 채 한 번 보고 나서는 다시 인상을 쓰며 공주를 바라보았다.
“노아르 공주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우선 실례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혹시라도 저희가 호위를 맏는 것이 불편하시다면 국왕 폐하께 말씀드려서 다른 분들로 교체해 드리지요. 공주님을 호위하고 싶어하는 기사들은 부지기 수 이니까요.”
루스의 말에 공주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 표정도 그녀의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다. 무슨 인형인 듯 표정도 없이 그저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그럴리가요. 오히려 과분한 영광인걸요. 이렇게 두 미남 분들이 약소국인 저희 헤벨츠니아에서 온 저를 지켜주신다는 것이요. 국왕 폐하께는 내일 정식으로 감사를 드려야겠어요.”
“공주님께서는 혹시 피해의식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절대로 싸우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녀가 너무 공격적인 말투로 나오기에 그저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주에게는 그런 내 뜻이 전혀 한 마디도 전해지지 않았는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 무표정한 얼굴이 서서히 빨갛게 익기 시작했다. 마치 잘 익은 토마토처럼.
“공작, 무엄하오! 이 분이 아무리 타국의 땅을 밟고 계신다 하지만 엄연히 한 나라의 공주님이거늘 어찌 그런 말을 함부로 하시오!”
헨델 자신도 꽤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공주만큼 얼굴이 빨개져서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뭐, 솔직히 반은 수염으로 덮힌 얼굴이 얼마나 빨개지겠냐만은......
하..하.. 좀 늦었네요...-_-;;;
있다 저녁때 뵈요!![쌩~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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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자신의 업보가 가져다준 결과를 잘 보아라, 죽은 자들이 당신을 부르고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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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약소국의 서러움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