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야화>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중>
태조의 ‘정도전’
- 조선 건국의 주역…개혁정책 주도 민본사상 제시와 실천 등 ‘본보기’
태종의 ‘하륜’
- 주요정책 펼칠 때마다 힘 실어줘 선왕 능침 순시 떠났다가 생 마감
500년 이상 장수한 왕조 조선에서 왕을 보좌하는 명참모들은 건국초 창업 시점부터 배출됐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정도전(鄭道傳, 1342~1398년)은 창업 시기를 대표하는 참모다.
건국 후 그의 삶은 극히 짧았지만 고려말 혁명을 완성해 새 왕조 건설의 설계자가 된 그는 왕을 만든 참모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정도전이 살았던 시대는 이성계를 비롯해 이인임·최영·정몽주·이방원 등 선 굵은 다양한 참모들이 경합하던 때이기도 했다.
정도전은 취중을 빙자해서 ‘한나라 고조(유방)가 장량(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고조를 이용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조선이라는 새 왕조 건설의 최고 주역임을 스스로 자부했다.
1388년 위화도회군으로 이성계가 권력을 잡은 후 정도전은 이성계의 참모로서 개혁정책을 주도해나갔다.
신속히 과전법이라는 전제개혁에 착수해 구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박탈하는 한편,
새 왕조의 관리와 백성들에게 토지를 고르게 분배한 것이 대표적이다.
건국 후에는 한양 천도와 경복궁의 조성, 종묘와 사직의 정비, 한양 도성(都城)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해나갔다.
또 <조선경국전>과 같은 저술을 통해 고려왕조를 뛰어넘는 조선왕조의 기본 플랜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해나갔다.
건국 이후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정작 조선에서의 그의 삶은 극히 짧았지만,
정도전이 제시한 새로운 국가 모델은 500년 조선왕조의 기본 골격이 됐다.
특히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다’라고 선언한 적극적인 민본사상의 제시와
토지제도·교육제도·과거제도 등을 통해 이를 실천해 나간 점은 현재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태조에게 정도전이 있었다면 태종에게는 하륜(河崙, 1347~1416년)이 있었다.
하륜은 태종을 왕위에 올리는 데 기여하고, 왕이 된 태종을 보필하면서 마지막까지 ‘태종의 남자’로 살아갔다.
하륜이 본격적으로 태종의 남자가 돼가는 과정에는 ‘관상’에 관한 일화가 있다.
<태종실록> 총서의 기록에는 하륜이 본래 관상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친구이자 태종의 장인인 민제를 보고,
“내가 관상을 많이 보지만 공의 둘째 사위 같은 사람은 없었다.
내가 뵙고자 하니 공은 그 뜻을 말해주십시오”라 부탁했고,
결국 민제의 주선으로 태종을 만난 하륜은 마음을 기울여 섬기게 됐다.
관상을 본 하륜이 이방원의 풍모를 보고 먼저 접근했다는 것은 킹메이커 하륜의 자질을 잘 보여준다.
공동의 정적 정도전의 존재가 두사람을 확실히 결속시켜준 점도 주목된다.
태조시대에 이방원은 태조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세자 방석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정도전을 견제했으며,
하륜은 정도전의 미움을 받아 충청도관찰사로 내려갔던 만큼 그에 대한 반감이 컸다.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는 하륜이 충청도관찰사로 내려가면서 베푼 환송연에서,
일부러 이방원의 옷에 술을 쏟고 사과를 핑계로 이방원과 함께 정도전 제거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한 장면이 소개돼 있다.
1402년(태종 2년) 하륜은 명 영락제의 등극을 축하하는 사절로 가서 이듬해 4월에 명나라 사신 고득(高得) 등과 함께
황제의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받고 귀국했다.
궁궐 안 신문고 설치와 지폐인 저화(楮貨) 유통과 같은 태종 시대의 주요 정책에도 늘 하륜이 있었다.
1401년 태종은 백성들의 민원을 듣는 신문고 설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조정 신료들 다수가 우려를 표방했으나, 하륜은 신문고의 설치가 백성들에게는 큰 혜택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태종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하륜은 고령임에도 관직에 있었다.
하륜은 70세가 되던 1416년 선왕의 능침을 순시하러 함길도(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지역의 조선 전기 명칭)에 들렀다가
객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죽는 날까지 태종의 참모로서 그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태조와 태종은 조선왕조의 창업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왕을 적극 보좌해 왕조의 서막을 안정되게 연 참모 정도전과 하륜이 있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