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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차] 권창순의 김유정소설문학여행 -2016. 5. 29
[2016 김유정문학제 봄.봄(3일차)]문학여행기(1)
“장인님! 인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 하고 꼬박이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그만 벙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했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박이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차려서,
“어 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 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김유정 소설 [봄.봄]에서
기다림이란 희망의 나무에
시간과 약속의
물을 주는 것
2016 김유정 문학제 (3일차)에 김봉균 시인 가족과 동행하게 되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간단하게 낸 카페의 글을 보고 동참해준 것이다.
키가 뭐 중요할까?
먼저 조건부터 내걸기에 익숙한 오늘날 현실이 얄밉기도 하다.
나도 사랑이 좋다!
-소설 [동백꽃]의 점순이와 소작인아들
글 : 권창순
넌 바보야! 정말 바보야! 왜 내 맘 몰라주니?
이놈의 닭, 죽어라! 죽어! 네가 얄미우니까
점순아, 지게막대기로 네 집 울타리를 후려쳤지만
왜 네 맘 모르겠니
넌 마름의 딸, 난 소작인의 아들
우리 어머니 다짐처럼 내가 너와 붙어 다니다 일을 저지르면
우린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마는 걸
미안해, 점순아
그래도 난 몰라, 내 사랑!
우리 수탉아, 쪼아라! 쪼아!
닭의 횃소리! 청승맞은 호드기 소리!
대뜸 달려들어 네 수탉을 때려 엎었지만
점순아, 용서해다오! 네 홉뜬 눈이 정말 무서워!
이젠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겠지
괜찮으니깐, 울지 마! 요담부터 그러지 마라
내가 못살게 굴 테니까
안 이를 테니 이리와
넌 내 어깨를 짚은 채 퍽 쓰러졌지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아! 알싸하고 향긋한 그 냄새!
난 땅이 꺼지는 듯, 온 정신이 고만 아찔했다!
너 말마라
금병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소보록하니 깔린 노란 동백꽃 속
우리 둘만의 사랑을
그래! 그래! 뭐, 사랑에도 소작인 있나?
나도 사랑이 좋다!
16마당으로 구성된 실레이야기길을 걷는다.
금병산자락의 실레이야기길! 제1마당 '들병이들이 넘어오던 눈웃음길'을 향해 함께 걷는다.
원창고개를 향해 ‘물음표길’을 걷는다.
“왜 금병산을 진병산이라고 그랬냐구요?”
“지금의 춘천시 동산면 원창리와 신동면 증리(실레마을) 경계에 있는 높이 652미터의 진병산은 마을 동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비단 병풍처럼 둘러섰다고 해서 금병산이라고 하지요. 진병산이라 부른 까닭은 임진왜란 때와 을미의병, 정미의병 때 우리 군사들이 진을 쳤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답니다.”
“신라고분군이 있다는데 정말입니까?”
“정말이랍니다. 그런데 소설가 김유정이 여자야 남자야 하고 묻는 건 너무 우습습니다.”
“동명의 탤런트도 있고 정치인도 있으니까 그런 말이 있을 법 하지만 소설가 김유정은 남자지요. 1930년대 우리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난 작가지요.”
“어릴 적 서울로 이사를 간 김유정이 청년이 되어 고향에 내려와 약 1년 7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그때 조카와 소작인의 아들 조명희군과 야학을 열며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답니다. 그리고 금병의숙이란 야학당도 세웠구요. 그리고 그때 김유정이 직접 목격했거나 체험했거나 들었던 이야기들이 훗날 소설로 만들어졌지요.”
“노란 동백꽃에서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는데 사실입니까?”
“소설 [동백꽃]의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을 말하는 것이지요. 생강나무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아 보세요.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지요. 생강냄새 말입니다.”
“김유정 소설에는 실제의 지명들이 많이 나오지요?”
“백두고개, 거문관이 수아리골, 새고개 등 많이 나온답니다.”
“김유정 작가님의 생가 앞에서 첫 번째 마당까지가 물음표길이지요?”
“맞아요. 지금 실레이야기길의 첫 번째 마당인 ‘들병이들의 넘어오던 눈웃음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요. 들병이에 대해 좀 알려주시지요?”
이때다. 가까이서 여인들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우리가 알려드릴 테니 어서 이리와 앉게유!” 한다.
아마도 홍천이나 인제에서 넘어 오는 여인들이리라. 이곳 실레마을에서 얼마간 머물다가 떠날 것이다.
“자, 이 들병에 담은 술 맛! 좋을 테니 어서 한잔 하게유!”
열아홉 쯤 돼 보이는 들병이가 손을 끌어 자리에 앉히더니 술을 따른다.
“자, 떡시루 마을을 앞에 두고 시루떡으로 안주 좀 하시구유!”
계숙이라는 들병이가 시루떡 조각을 입에 넣어주니 사르르 녹는다.
“왜 우리를 들병이라고 부르는지 이젠 아셨지유!” 하고는 들병을 흔들며 저희끼리 눈웃음을 친다.
“그런데 남편들은요?”
“왜 멱살이라도 잡힐까봐 겁나유! 걱정말아유! 밤새 노름을 했을 테니 주막에 자리라도 잡으면 그림자처럼 찾아 올거예유!”
그러면서 어느 들병이는 병든 남편을 물레방앗간에 숨겨놓아야겠다고, 또 어느 들병이는 뭉태며, 덕만이며 사내들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신명난 눈웃음이다.
막걸리 몇 잔을 얻어먹고 값을 계산하려고 하니 카드는 사절이란다.
“솥도 좋구, 맷돌도 좋구, 속곳도 좋구유!”
“콩이나 좁쌀도 좋아유!”
어느 들병이는 은비녀보다 사내의 솜바지가 더 좋단다.
“우리는 생계형작부지만 그래도 정은 두둑하지유!” 하면서
한마디씩 들병이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데.
“애교를 판다는 것도 근자에 이르러는 완전히 노동화 되었지유!”
“노동하여 생활하는 여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구유!”
“조선의 집시지유!”
“우리두 성한 오장육부가 있고 낌끌한 희망으로 땅을 파던 농군이었지유!”
“농촌의 유일한 명절인 가을을 역경으로 보냈지유.”
“지주와 빗쟁이들에게 수확물을 주고는 다시 한겨울을 염려하기 위해 땀을 흘렸지유!”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거기서 분발한 것이 우리들 생활이지유!”
“아, 그렇군요!”
“뭇사람들이 구경거리라 할지 모르지만 분발하여 사는 게 중요하지유!”
젓 물린 애기를 등에 다시 들춰 업으며 한 들병이가 힘주어 말한다.
“떡시루마을에 자리를 잡아야하니까 이만 가지유!”
“그래유!”
“저기 술값을 치러야 하는데.”
“됐어유! 그냥 가게유! 조금가면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이니 즐겁게 길 가게유! 그리고 시간 있으면 아랫말 주막으로 김유정작가님과 함께 한잔하러 오게유!” 하고는
여인들이 눈웃음치며 실레마을로 내려간다.
[이렇게 생각 해보니 참 재밌다]
“아버질 혼내주라고 점순씨가 그래놓고 이제 와서 왜 사랑하는 사람의 귀를 잡아 댕기며 우십니까?”
“몰라유! 몰라!” 점순이는 막무가내, 그의 귀를 더 세게 잡아 댕기며 운다.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함께 울던 장모님은 갑자기 나타나 딸년이 왜 우느냐고 묻는 우리의 말에 강울음을 멈추고,
“그게 무슨 말이래유? 우리 점순이가 아버질 혼내주라고 했다니유?” 하며, 놀라서 묻는다.
“아무것도 아니예유. 우리 말 절대 믿지 말아유.” 점순이는 반대편 손으로 어머니의 손도 더 세게 댕기며 울뿐이다.
기운이 탁 꺾인 데릴사위는 아픔도 모른 채 얼빠진 등신이 되었다.
“점순씨가 빙장님을 혼내 주라고 그랬지요?” 우리가 얼빠진 데릴사위를 흔들며 물어도 그는 눈만 멀뚱거릴 뿐이다.
“점순씨! 왜 그때 그랬잖아요. 이이가 점순씨랑 성례시켜 달라고 장인님과 함께 구장님댁으로 담판 갔다 온 뒤 말입니다.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 하고 그때처럼 되우 쫑알거렸잖아요.”
“그때처럼 쫑알거리다니유?”
“사랑하는 사람이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갈 때 점순씨가 참을 가지고 왔고, 밥을 다 먹자 고개를 푹 숙이고 밥함지에 그릇을 포개면서 ‘밤낮 일만 하다 말텐가!’ 하고 성화를 부렸잖아요!”
점순이 보다 귓배기가 작은 점순 어머니가 입을 반쯤 벌리고 점순이를 빤히 바라다본다.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 그리고 밤낮 일만 하다 말텐가! 그럼, 구장댁에 갔다가 그냥 오지 뭐 둘이 손잡고 오냐. 그리고 머슴이 밤낮 일만 해야지, 뭘 해!”
사위를 내려조기려고 지게막대기를 치켜든 장인님 봉필(욕필)이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대더니,
“이봐 뭐 별다른 뜻이 있는 것도 아니구먼 그래! 어서들 가게. 남의 집일 참견 말고!” 하며 곧 사위를 내려조길 기세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제 이야기를 더 들어 보세요. 그러니까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 점순씨 한테 이 말을 듣고 사위가 벽을 향하여 외면하면서 ‘안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담!’ 하니까 점순씨가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사위가 장인님의 바짓가랭이를 잡아채어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한 것은 다 점순씨의 충동질 때문이었다 이 말씀입니다.”
“점순이가 아버지의 쇰을 잡아채라 시켰다구유?”
반쯤 입을 벌린 점순 어머니가 놀라 묻는다.
그러나 봉필영감은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 같은 신음소리를 내다가 껄껄 웃어버린다.
“이봐, 점순이가 말한 쇰은 내 쇰이 아니라 그 구장놈의 제비꼬랑지 같은 쇰을 말한 거지. 그렇지 점순아?”
“몰라유! 몰라!”
점순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귀를 더 세게 잡아 댕기며 울뿐이다.
“그런데 점순 어머니는 왜 아까부터 입을 반쯤 벌리고 계세요?” 우리의 물음에 사위의 귀를 댕기던 손을 슬며시 놓는다. 그리고 우는 점순이의 등을 토닥거리며 들리듯 말듯,
“봄이 되면 온갖 초목에 물이 오르고 싹이 트는데, 사람도 그런가 봐유. 나도 사실 말이지만 부쩍 자란 점순이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구먼유. 저런 걸 키가 작다구 핑계만 대니 망할놈의 영감!”
“뭐, 누가 망할놈의 영감이야!”
지게막대기를 치켜든 봉필영감을 유심히 바라보니, 번이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그리고 생김생기길 호박개같애야 쓰는 거지만 외양이 똑 됐다.
“그 지게막대기로 사위를 내려조길 건가요?”
“물론이지!”
“둘이 성례를 시켜주면 이런 일이 없을 거 아니예요. 웬만하면 올 가을엔 성례를 시켜 주세요.”
“점순이가 좀 커야지.”
“그럼 점순 어머니는 참새만한 게 어떻게 애를 낳았지요?”
“뭐야, 너도 그런 말을 입에 올려! 이자식이!
나그네기자는 봉필영감의 지게막대기를 피해 달아났다. 그러나 뒤에서 퍽! 퍽! 몸뚱아리를 내려조기는 지게막대기소리에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우리는 다시 현장으로 갔다. 어디 갔는지 봉필영감은 없고 셋이 마루에 다정히 앉아 있다.
싱글벙글, 데릴사위가 성큼성큼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점순이 한테 얼른 그 이유를 물어 보라고 한다.
“점순씨 왜 울었어요?”
얼굴이 붉어지던 점순씨,
“속이 시원해서유, 이이의 귀가 빠질 정도로 아주 시원해서유.”
“아버지의 쇰을 잡아 챈 것 말입니까?”
“저두유!” 하며, 점순 어머니도 환하게 웃는다.
“아까 그 말 죄송합니다. 참새만한 그 말 말입니다.”
“아녀유. 사실 사위가 ‘빙모님은 참새만 것이 어떻게 앨 낳지유!’ 했을 때 어찌나 가슴이 찔렸는지 몰라유. 욕심이 많은 영감탱이. 우리 착한 사위를 머슴처럼 부려먹으니!” 하면서 멍이든 사위를 어깨를 다독인다.
장인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서 잡은 참 지게 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리갈겼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 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 알로 그대로 떠밀어 굴려 버렸다. 조금 있다가 장인님이 씩, 씩, 하고 한번 해보려고 기어오르는 걸 얼른 또 떠밀어 굴려 버렸다.
기어오르면 굴리고, 굴리면 기어오르고, 이러길 한 너덧 번을 하며 그럴 적마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 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하지만 장인님이 선뜻, 오냐 낼이라두 성례시켜 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랑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 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 줍쇼, 할아버지!”
하고 두 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 보다, 했다. 그래도 장인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맸다. 그러다, 얼굴을 드니(눈에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키고 잡아나꿨다.
-김유정 소설 [봄.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