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월간중앙』 20호, 1969. 11)
[작품해설]
이 시는 3연 11행의 짧은 형식이지만, 구 속에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최근 대중가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는 ‘저녁에’라는 저목부터 여러 가지를 암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녁은 안식과 평화의 시간이다. 하루의 분주하고 고당ㄴ한 일상에서 가정으로 돌아오는 저녁 시간, 하늘에선 하나 둘 별들이 떠오르고, 안식과 평화의 마음속에선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이러한 안식의 시간에 떠오르는 무수한 별들은 사람들에게 끝없는 외로움과 하염없는 그리움에 빠져들게 하기 마련이다. 밤이 깊어 갈수록 별들은 더욱 밝은 빛으로 빛나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들은 점점 고뇌와 어둠으로 물드러가게 된다. 어둠 속에서 빛나기 시작하는 별들의 그 밝음과, 그에 대조되는 인간 현실의 고뇌와 어둠은 결국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나 하나’의 대응을 통해서 단독자(單獨者)로서의 인간적 고절감(孤絶感)을 심화시켜 준다. 어쩌면 이 1연은 어둠 속에 빛나는 밝은 별빛으로써 인간 세계의 온갖 더러움과 어둠을 정화하고 싶은 시인의 소망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2연에서는 ‘밝음 속에 사라지는 별’과 ‘어둠 속에 사라지는 나’의 대조를 통해 ‘별’로 대표되는 자연과 ‘나’로 대표되는 인간과의 영원히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보여 준다. 또한 역설적으로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더욱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고소 참된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별과 나의 거리감은 곧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인간관계의 단절감을드어내고 있으며, 수많은 군중 속에서 살면서도 영원히 혼자일 수밖에 없는 단독자로서의 숙명성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단독자로서의 숙명적인 고절감은 마침내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라는 3연을 통해 유한적 인생으로서의 존재론적 생의 인식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인 단독자로 태어나 무수한 만남을 겪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지만, 결국에는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로 죽어 가는 일회적 존재에 불과하는 생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라는 구절 속에는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설마 죽는다 하더라도 저 세상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나야 한다는 안타깡누 기대와 간절한 소망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밝음 속에 사라지는 별’의 외로운 모습은 바로 모진 세파를 헤치며 힘겹게 살아가다가 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적 고독과 운명을 상징한다. 이렇게 볼 때, ‘별’과 ‘나’, 어둠과 밝음의 대조는바로 영혼과 육신, 현실과 이상, 그리고 생과 사의 갈등 속에서 전개되는 인간의 숙명적 비극성을 표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물질문명으로 인해 점차 인간적인 따뜻함과 진솔망을 상실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자화상을, ‘별’과 ‘나’의 대조를 통해 존재론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표현해 낸 성곡적인 작품이라 평할 수 있다.
[작가소개]
김광섭(金珖燮)
이산(怡山)
1905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24년 중동학교 졸업
1932년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극예술연구회 참가
1945년 중앙문화협회 창립
1950년 『문학』 발간
1952년 경희대학교 교수
1956년 『자유문학』 발간
1957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1961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974년 예술원상 수상
1977년 사망
시집 :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이삭을 주을 때』(1965),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사회시집』(1971), 『김광섭시전집』(1974), 『동경』(1974),
『겨울날』(1975), 『김광섭』(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