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가는 길 ② 낙엽이 건네는 지혜
◀ 낙엽은 지는데 ◼백호빈
◀낙엽 ◼김동률, 기타:정재일 아코디언:하림
◀낙엽 ◼손태진 ✱트원폴리오 번안곡(Let it be Me: 내 곁에 있어 줘)
◀시간과 낙엽 ◼악뮤(AKMU) ✱ 이수현 노래 이찬혁 작사 작곡
◉ 창밖의 단풍나무와 자작나무의 잎이 떨어지면서 가지가 앙상해지고 있습니다.
근처 숲과 주변 산들의 여러 나무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숲길에 들어서면 낙엽 비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절반의 단풍과 절반의 낙엽이 함께 친구가 되는 늦가을날입니다.
◉ 가을바람이 재촉하니 나뭇잎은 더 이상 가지에 머물러 있기가 어렵습니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추풍낙엽(秋風落葉)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세력이 약해지거나 시들어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패할 때 흔히 이 말을 씁니다.
사람이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낙엽은 그렇게 힘 없이, 의미 없이 떨어지는 존재는 아닙니다.
◉ 낙엽은 애초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나뭇잎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떨켜를 미리 만들어 두고 언제라도 떨어지려고 준비하고 있는 나뭇잎입니다.
그래서 추풍낙엽은 낙엽에 빗대어 사람 일을 얘기하려고 만든 말입니다.
편하게 떨어지도록 도와주는 바람이 나뭇잎은 오히려 고마울 수도 있습니다.
◉ 부는 바람에 두서없이 그냥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낙엽이 가는 길에도나름의 원칙이 있습니다.
대체로 아래쪽 잎이 먼저 떨어지고 안쪽 잎이 먼저 떨어집니다.
꼭대기 잎과 바깥쪽 잎은 오래 견디다가 나중에 떨어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잎이 날 때는 꼭대기에서 먼저 생기서 아래로 잎이 퍼져갑니다.
또 바깥쪽에서 먼저 난 잎이 안쪽으로 퍼져갑니다.
그러니까 통상 늦게 난 잎이 먼저 떨어지고 일찍 난 잎이 늦게 떨어지는 향을 보입니다.
◉ 늦게 난 잎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식물의 성장 호르몬 분비가 끝나는 대로 낙엽이 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모든 나무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대체로 그런 패턴을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나뭇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람이 그려 넣은 잎새라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 대부분 사람이 낙엽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만든 대중가요에는 떠나간 사람이나 옛사랑 등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별을 상징으로 낙엽이 등장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50년 전에 만들어져서 반세기 동안 여러 가수가 불러온 늦가을의 익숙한 노래 ‘낙엽은 지는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 노래부터 들어봅니다.
◉ 백호빈이라는 가수가 1974년에 불렀던 노래입니다.
당시 이름있던 작곡가 임석호가 만들고 김양화가 노랫말을 붙였습니다.
백호빈은 별로 빛을 보지 못한 가수였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1977년과 1991년 조영남이 앨범에 리메이크곡으로 담으면서 7080 가을 명곡 반열에 올랐습니다.
최백호와 최진희 등 여러 가수가 각자의 색깔로 불렀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근황조차 찾기 어려운 백호빈의 원곡을 불러와서 들어봅니다.
https://youtu.be/i36-VG1MVPQ?si=LDEwPD8lZqhinG8
◉ 앞의 노래가 나온 1974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김동률과 이적이 합작해서 만든 노래 ‘낙엽’을 만나볼 차례입니다.
김동률의 ‘낙엽’은 그가 버클리음대 유학 시절에 나온 앨범 ‘귀향’(歸鄕)에 담긴 23년 전의 노래입니다.
앨범 속 대부분의 곡을 김동률이 작사 작곡했지만 ‘낙엽’의 노랫말은 ‘카니발’를 결성해 함께 활동했던 이적과 공동 작업했습니다.
떠나보낸 여인에 대한 공허한 마음을 낙엽에 빗대어 노래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새잎이 돋아나도 어찌 소중했던 그 여인과 같겠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할 수없게 됐다고 한숨짓습니다.
과거에 매달려 있다는 면에서는 낙엽만큼 쿨하지는 않습니다.
◉ 김동률은 지난달 이적의 콘서트 ‘이적의 노래들’에서 이적과 9년 만에 함께 무대에 섰습니다.
1999년 ‘카니발’을 결성해 함께 활동했던 두 사람은 각자의 음악으로 활동하다가
오랜만에 한 무대에서 멋진 호흡을 맞춰 열띤 박수를 받았습니다.
김동률은 콘서트 모든 회차에 단독 게스트로 등장했습니다.
2004년 콘서트 ‘초대’에서 ‘낙엽’ 무대를 불러옵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음악 동지 정재일이 기타를 하림이 아코디언을 맡아 김동률의 무대를 빛내줬습니다.
https://youtu.be/vhpxhUVEBt0?si=9TaoDZz-6bJx9HVA
◉ 사람들은 낙엽을 보고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시가 그렇고 노래가 그렇습니다.
나뭇잎도 좋은 시절을 함께 보낸 나무와의 추억을 되살리는 흔적을 나무에 남겨 놓고 떠납니다.
바로 엽흔(葉痕: leaf scar)입니다.
사람도 상처가 생기면 딱지가 앉습니다.
나무도 마찬가지로 나뭇잎이 떨어져 생긴 상처를 코르크를 만들어 덮습니다.
그래야 바깥에서 오는 감염의 위험을 막습니다.
그것이 바로 엽흔입니다.
◉ 가지에서 잎으로 연결됐던 관속 조직이 잘려 나간 흔적이어서 관속흔(管束痕)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나무마다 관속의 수가 달라서 엽흔의 모양도 다양합니다.
초승달 모양에서 원형 삼각형 등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이 나뭇잎을 보고 되살리는 추억이 각자 다르듯이 나뭇잎도 낙엽이 되면서 나무에 남긴 추억이 다릅니다.
◉ 송창식과 윤형주가 트윈폴리오를 결성한 것이 1968년이었습니다.
이때 ‘추억의 히트송’ 앨범을 내면서 그 속에 번안곡 ‘낙엽’을 담습니다.
1960년대 히트곡 ‘Let it be Me’(곁에 있어줘)를 번안해 ‘낙엽’이라는 제목으로 담았습니다.
추억을 되살리는 노랫말은 작사가 홍현걸이 원곡의 분위기에 맞게 은유적으로 잘 다듬었습니다.
특히 낙엽이 주는 쓸쓸한 이미지와는 달리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노랫말을 담았습니다.
이 노래를 두 사람의 화음으로 녹여내면서 아름다운 가을 노래가 됐습니다.
◉ 프랑스의 가수 길버트 베코드(Gilbert Beccoaud)란 가수가 1955년에 부른 노래를 1960년대 미국의 The Everly Brothers가
‘Let it be Me’란 제목을 달고 리메이크하면서 널리 알려진 팝송이 됐습니다.
트윈폴리오는 뒷부분에 팝송 원곡을 그대로 불렀지만 가사속 ‘낙엽’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져 상당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베이스바리톤 성악가이자 ‘불타는 트롯맨’ 우승자인 손태진이 원곡의 분위기를 살려 부드럽고 편안하게 부르는 ‘낙엽’입니다.
https://youtu.be/7TSpe9ZMmy4?si=bUWQgd4ELCd-BDFl
◉ 젊은 감각이 만들어낸 낙엽 노래를 마무리로 듣습니다.
악뮤(AKMU)의 오빠 이찬혁이 만들고 동생 이수현이 부른 ‘시간과 낙엽’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에서 옛 추억을 불러보는 노래는 놀랍게도 이찬혁이 2014년 열아홉 살 때 만들었습니다.
동생 이수현이 ‘비긴어게인’에서 부른 노래는 조회수 5백만을 넘긴 인기곡입니다.
https://youtu.be/qsy-zJXLchk?si=N4TitOxcroIJ0tkC
◉ 낙엽이 진 앙상한 나무에 다가가 보면 또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뭇잎이 떠나기 전에 여름부터 준비한 잎눈입니다.
그 잎눈은 혹독한 겨울 추위와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지켜 내년에 새잎을 돋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낙엽은 땅에서 거름이 돼 새순이 잘 돋아나도록 도와줍니다.
◉ 나뭇잎을 떨군 나무는 이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앙상한 몸으로 미래를 그려나가는 나무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와 친해지면 겨울에도 나누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꽤 있습니다.
(배석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