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류문명의 근간,
금속활자 발명 시주의 꽃, 묘덕스님에 대하여
묘덕은 인근에서 내로라하는 장인들을 찾았다.
금속활자장, 한지장, 배첩장, 필장, 서예가 등 1백여 명에 달했다.
이 일대는 일찍이 신라말기부터 불교문화가 꽃피고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철기와 한지제조법이 대대손손 이어져 왔기 때문에
장인을 찾고 협력을 끌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묘덕의 제안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이 조건 없이 따르겠노라 했다.
이들은 흥덕사 대웅전 인근에 준비된 공방에 모여 밤낮없이 작업을 계속했다.
글자본을 제작하고 밀랍을 녹여 판형틀에 붓고 응고시켜 밀납판형을 만들었으며
그 위에 결정된 글자본을 뒤집어 붙였다.
이어 어미자를 만들고 밀납가지와 주형(거푸집)을 만들었으며
청동을 녹여 주형의 입에 5가지 금속 성분( 주석, 철, 납, 구리, 아연)쇳물을 붓고
쇳물이 식으면 단단해진 거푸집을 파내서 활자 가지쇠를 들어냈다.
그리고 쇠톱을 사용해 활자를 하나씩 떼어내
인쇄틀에 조판을 한 뒤 인쇄를 하기 시작했다.
인쇄용지는 닥나무 껍질을 베고, 찌고, 담그고, 짜고, 말리는 등
99번의 과정을 거쳐 100번째 장인의 손에서 나온다는 벌랏마을 한지만을 고집했으며
금속에 잘 묻는 유연먹으로 애벌인쇄를 했다.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문득 "쉬운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살다 보면 수많은 욕망의 덫과 유혹에 빠지겠지만
그 욕망을 잠재울 수 있는 내밀함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선이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가슴속으로 짠하게 밀려왔다
스님은 공교롭게도 직지시인(直指詩人)과 동성동본
풍천임(任)씨 자손이다
불가사의하고 운명론적 같아
직지 공부하다 말고 울었다.
-직지사랑운동본부-
첫댓글 활자 틀을 만든뒤 청동을 끓여 쇳물을 붓고 굳은다음 그활자를 손질하여 한지에 찍어서 책을 만드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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