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ㅡ 인류사의 다음 단계와 혈연주의 문화의 선진화 기능
조문부ㅡ 국립제주대학교 명예교수
국립제주대학교 前총장
20세기 최고의 영국 역사가 아널드 J. 토인비(A. J. Toynbee)와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SGI 회장은
1974년 나눈 대담에서, 과거 5세기 동안 서유럽 여러 민족의 활동으로 인류가 기술면에서 통합을 이루었으나,
인류사의 다음 단계는 동아시아가 서양에서 주도권을 양도 받아 정치 정신면에 걸친 통합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기대했다.
다음 단계에서 인류사의 주도권을 갖는 동아시아에 한국이 포함되어야 할 것인데,
그 가능성 여부는 오늘의 우리에게 달려 있다.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려면 기술면에서 구미(歐美)와
동등한 수준으로 선진화해야 함은 물론 나아가서 정치 정신면에서 인류의 통합을 이루는 역사적 선구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혈연에 의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혈연주의 정신문화를 형성해 왔지만,
구미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혈연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혈연적 인간관계의 분열과 갈등을 방지하고 질서와 단합을 강화하기 위해
인위적 사회제도로 화합을 규범화하는 정신문화를 형성했다.
일본은 일찍이 604년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17조 헌법'에서 그 제1조에
'이화위귀(以和爲貴)'를 내세워 '화(和)'를 중요시했으며, 국가주의(statism) 역사를 통해 화의 문화를 정착했다.
지금도 공(公) 사(私) 조직에서 도덕과 윤리 규범으로 화를 강조하며 화의 문화를 자부한다.
독일에서는 나폴레옹 군에게 점령당한 1807 ~ 1808,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피히테(J. G Fichte)의 명연설에서,
우선 '공과 사를 구별 할 줄 알라'고 하여 공공영역에서의 단결을 강조했으며, 강력한 내셔널리즘 국가철학으로
근대국가를 건설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청교도 중심의 칼뱅이즘(Calvinism)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종교윤리에 의해 사생활을 청렴결백하게 하고 종교적 사회집단의 공공이익을 위한 봉사정신을 생활철학으로 하여
공공윤리를 형성하고 강화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족애보다도 애국애족하는 사회적 정의감을 더 강하게 하고,
생명을 거는 생의 가치관을 혈연적 애정이 아닌 애국애족에서 찾으려 했다.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국가 중에서도 한국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강조하여 혈연관계를 특히 중요시했다.
전통적으로 혈연을 중시하는 문화를 형성한 국가에서는 혈연관계의 질서를 엄격하고 분명하게 하여
인간관계 조직의 기본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려 하지, 인위적 사회 제도로써 규범만을 특별히 강조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전통적으로 충효사상(忠孝思想)을 강조하면서, 효의 추구와 함께 충성심을 촉발(促發)시킨다.
그러나 충과 효가 상반돼 불일치할 때에는 충보다도 효를 우선해 택하게 되므로,
국가에 대한 관계는 오히려 반역으로 뒤바뀌게 되어 권력암투와 삼족 멸살(滅殺)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혈연관계와 그 질서의 경계선이 매우 강하고 명백해, 식민통치와 같은 강력한 권력도 그 혈연 질서를 무너뜨리지
못한 것은 큰 장점이었으나, 근대국가의 초석이 되어야 하는 국민정신을 가족 사랑 이상의 강한 애국심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점이 단점이다.
이러한 혈연주의 문화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야 할 공권력이 혈연관계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는
사유물로 전락해 부패와 타락의 풍조를 낳게 했다. 그래서 역대 집권자의 가까운 친인척 대부분이 부정에 개입돼
신성해야 할 공권력을 사적 혈연관계로 유린하는 폐단을 낳아 국민들에게 지탄 받고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 이런 혈연주의 문화의 단점을 어떻게 극복하고, 국가사회 선진화에 순기능으로 작용케 하여
한국이 인류사의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인가.
구미 선진국에서도 가족애를 중시하기에 혈연주의적 가족애가 비혈연적 구미 문화에서의 가족애보다 강하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가족애를 소중히 하면서 각 개인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이 구미 선진국의 국민정신이고 과학기술 발전의 호조건이라면,
혈연주의 문화 역시 강한 가족애를 토대로 보다 강한 애국심과 과학정신을 발휘하도록 하는 국민정신 승화에
더 좋은 조건이 될지언정 결코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강한 가족애로, 가장 강한 애국을 하는 국민정신 형성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행화타는 지극히 인간적 행위
어의구전에 가로되,권(勸)이란 화타(化他)이고 지(持)란 자행(自行)이며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자행화타(自行化他)에 걸치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등의 동류가 남묘호렌게쿄를 권해서 수지케 하느니라. (어서 747쪽)
통해
법화경 <권지품>의 권지라는 것에 대해 <어의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권이란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것으로 화타이며, 지란 스스로 수지하는 것이며 자행이다.
남묘호렌게쿄는 자행화타에 걸친 것이다. 지금 니치렌 대성인과 그 문하는
남묘호렌게쿄를 권하고 그것을 일체중생에게 수지하게 하고 있다.
◇ ◇
자행화타. 여기에 묘법(妙法)을 신앙하는 사람의 행동의 원점이 있다.
진지하게 근행, 창제하고 생명력을 풍부하게 하며 행복을 향한 대도(大道)를 날마다 착실히 걷는다.
그리고 그 자행에 힘쓸뿐 아니라 생명차원에서 타인도 행복해지게 하는 (화타행) 것이다.
이것은 사실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다.
그런데 이기주의나 어리석음, 욕망에 사로잡혀서 좁고 어두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사람은
그것을 좀처럼 알 수 없다. 그만큼 생명이 탁하다고도 할 수 있다.
민중구제를 위해 일관되게 인간주의 평화주의를 관철한 국제창가학회(SGI)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불법(佛法)의 자비로운 행동은 한없이 깊다.
상대가 비록 이쪽의 성실을 배반했더라도 여전히 그 사람의 생명속에 빛나는 불계를 보고
생명의 촉발작업을 계속 한다.
창제를 근본으로한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상대를 따뜻하게 감싸고, 우리의 생명공간 또한 커진다.
자, 각자가 자비의 체현자로서 민중의 바다 속으로 뛰어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