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츠부르크"라는 이름만 들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냥 아주 오래 전 부터 아는 도시, 익숙한 이름 같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은 그저 세계사 책과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고 들었을 뿐이지만 웬지 친근한 이미지로 존재해온 듯 한.
그렇게 찰츠부르크를 향해 가는 동안 산자락을 넘나드는 창밖 풍경은 그야말로 탄성과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절경인데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이번엔 여행객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눈이 기세좋게 내리기 시작한다.
지나가면서 이미 곳곳에 내린 눈을 환상스런 기분으로 기분좋게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하고
대한민국으로 부터 수천 길로미터나 떨어진 동유럽에 와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교차한다....세상 좋아졌다.
펑펑 내리던 눈이 어느덧 잦아들자 목적지 찰츠부르크가 가까이.
"트램"이 그들의 교통수단 일부이다 보니 트램을 이끌고 다닐 전선이 하늘을 뒤덮은 장면조자 당연하지만 장관이기도 하다.
우린 있던 전차도 도심의 속도에 방해된다고 죄다 없애버린 지가 언젠데 싶은 것이
아무리 세월이 미래지향적으로 달려가도 묵묵히 조상이 물려준 그대로 옛것을 지켜나가는 힘이란 도대체 뭘까 를 생각한다.
심란스런 일기와 달리 벅찬 감동에 젖어드는 마음을 따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그 유명한 "미라벨 궁전과 정원"에 도착을 한다.
미라벨 정원에서 바라보는 찰츠부르크 대주교의 성이자 "호엔찰츠부르크" 요새에서 바라보는 시가지는
참으로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으나 우리는 건물을 조망만 하는 걸로.
아직은 꽃들이 만발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런대로 분위기는 즐길만 하고 이미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눈으로 익은 장면들이 현재인 듯 선명하다.
미라벨 정원으로 더욱 유명해진 1606년에 지어진 궁전은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연인 "살로메 알트"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둘 사이에는 15명의 자녀가 있었다고 하니 결혼이 금지되어 있던 그 시절, 떳떳하고도 당당하게 사랑을 밝힌 죄는
종교 단체의 화를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 성직자의 품위 손상을 가져온 대주교로서 자청한 사랑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결국 요새에 감금되어 외롭고도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사랑 앞엔 성역이 없었던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운드 오브 뮤직" 에서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송' 을 불렀던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정원 장면은
비록 만발한 꽃은 없었을지라도 이미 한 편으로 그림으로 다가와 익숙하고 친밀하기만 하다.
시청사가 되어버린 궁전들을 뒤로 하고 모차르트가 7년 동안 살았던 흔적이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로 휘리릭.
당시만 해도 문맹이었던 자국민을 위해 상점은 자신들이 팔고자 하는 물건의 상징적인 로고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간판 그림만 보아도 무엇을 팔고자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으며 문맹이어도 상품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그런 방법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으로서 아예 전통이 되어버렸다고 하는데 오히려 단순 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 하다.
아쉽게도 "모차르트 생가"는 바깥에서 구경만 하고 말았다.
신이 사랑했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바이올린,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패키지 여행이다 보니 개인 행동은 어려운 처지,
외형상으로 보여지는 집의 구조로 보아서도 그 시대의 중산층 모습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카페가 시작된 1703년 이후로 페스티벌의 관계자나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한때는 세계적인 지휘자 " 카라얀"이 자주 찾았다는 곳이다.
일설에 이곳에서 우리가 말하는 뷔엔나 커피의 원조 커피 향내가 코끝을 자극한다고.
사실 커피 한 잔 마실 자유시간을 주었어도 다른 상점 구경하기가 바빠서 혹은 초컬릿 사느라 애써 외면한 카페이기도 하다.
꼭 마셔보고 분위기도 느껴보라던 가이드의 말은 귓등으로 휘리릭.
케트라이데 거리를 지나 모차르트 생가를 눈도장 찍고 다시 이동을 하여 5분 거리에 있는 "레지던츠 광장"으로 이동.
찰츠부르크 대주교의 막강했던 권력과 맞물려 상징적으로 대변되는 "성 폐터 대성당"에서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았다.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증축되기를 반복하면서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은 6,000 개 파이프로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이 유명하다.
다시 상점가로 걸어나와 유유자적으로 거리를 즐긴다.
물론 오스트리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초컬릿과 모차르트 없었으면 어떠했을까 싶도록 권역권내에 상점들은
모차르트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는 듯한 인상이지만 그럼 또 어떠랴...각양각색의 모차르트 활용도가 눈을 즐겁게 하는데.
그리고 중국음식점으로 향하여 저녁을 먹고 호텔로 고고고.
그들이 건네 준 "자스민 차"가 묵은 차여서 입맛을 버려놓기도 했다는 것과 나무 젓가락 하나 빌리려고 하다가
된통 혼만 났던 기억이...동행했던 친구가 컵라면을 가져오고 나무젓가락을 가져오지 않은 실수를 했던 까닭에
나무 젓가락 하나 구하여려다 쥔장 할머니에게 억수로 욕만 먹었다는 것.
어쨋거나 그렇게 또 하루, 이틀째의 밤이 지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건네다 본 주택가는 조용하지만
그 아침의 시작은 천천히 여유있게 사브작사브작 거리는 듯 하면서도 모양새는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우리 역시 장거리 운전을 한 기사를 위해 그에게 피로도 회복할 기회를 주기 위해 수요일 여정의 아침 행보는
7시 45분에 시작되었으나 그다지 바쁘게 헐떡거릴 만큼은 아니었으니 이래저래 즐거운 여정을 다시 기대하게 된다.
와중에 참으로 철두철미하게 운전기사 컨디션과 노동시간을 고려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첨언 1 호엔찰츠부르크 요새는 오스트리아세서 손꼽히는 문화재라고 하고 구시가지 관광 여행의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1077년 게하르트 대주교가 남독일의 침략에 대비하여 지어진 이래로 수 차레에 걸쳐 증축되었으며
요새 외부는 단조롭고 단단하지만 내부는 매우 복잡하다고 한다.
2 미라벨 정원은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의 후임자 마르쿠스 대주교가 궁전과 정원이 종교적 수치임을 감안하여
"아름다운 전경"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미라벨로 바꿨다고 한다.
19세기 초에 화재로 파괴되었던 궁전은 새로 복원되어 오늘날엔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내부의 '대리석 방'은 모짜르트 가족이 대주교를 위해 연주회를 한 장소로
이즈음엔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장과 연주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3 Tomselli Cafe에서 맛보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애플파이와 케이크도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4 오스트리아의 명물 초컬릿....모차르트 "쿠겔른" 초컬릿을 반드시 구입하여 먹어보기로 한다.
게트라이데 거리에 존재하는 "Sternbrau" ...모차르트가 즐겨 찾았으며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는
600년 전통의 맥주집은 찾아가보지도 맥주를 마셔보지도 못하고 설명만 들었음이니 더더욱 아쉽기만 하다.
수제품인 "슈테른 생맥주'와 "에델바이스 맥주"가 유명하다고.
5 대성당에 세개의 청동대문은 믿음, 소망, 사랑을 상징한다고 한다.
계절에 걸맞는 공연과 음악회 혹은 마켓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첫댓글 미라보 정원에 꽃 많이 피면 더 멋지다네~! 커피 맛도 봤는데 맛있었지만 지금은 생각 안난다네~! ㅋㅋ 오스트리아 여기저기 거리의 건물들이 나름 과거에 유럽을 주룸잡던 나라여서 인지 볼만했지~! 모짜르트 쵸컬릿을 교우들을 위해 사왔는데 글쎄 뭔 맛의 차이를 아시기는 했던건지 잘 모르겠네~? ㅋㅋ
그러게나 말입니다...미라벨 정원은 원래 아름다운 꽃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하는데 발이죠.
아, 커피 마셨군요. 그런데 기억이 안난다니 ㅎㅎㅎㅎ.
암튼 영행 중에 만난 오스트리아는 행복 그 자체로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