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코드는 ‘엽기’라는 단어였다.예전 같으면 돌팔매질을 당했을 트렌스젠더 하리수가 많은 이들의 사랑속에 또다른 ‘성’으로 인정을 받는 등 이제 엽기는 우리의 일상이 됐다.
올해 프로야구 그라운드에도 유난히 엽기적인 사건과 해프닝이 많았다.흥행에 새바람을 몰고와 희망을 안긴 우리 프로야구를 관통한 엽기시리즈 중 10개를 모았다.
[편집자주]
◆BK 주연=‘모교 도망 사건!’
김병현이 지난 11월29일 은사를 찾기 위해 모교인 광주 무등중학교를 방문했다가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던 취재진에 놀라 빗속을 뚫고 도망치듯 사라지는해프닝을 벌였다.
헐리우드영화처럼 출발부터 취재진을 따돌리던 김병현은 학교에서도 매스컴이 기다리자 처음에는 하차를 완강히 거부.간신히 교무실로 직행한 뒤 김진표 교장이 자리를 비운 사실을 전해듣고 곧바로 육상선수 못지 않은 실력을뽐내듯 교정 밖으로 사라졌다.
김병현은 2∼3분 동안 짧게 머문 교무실에서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놀란토끼눈으로 숨을 곳을 찾는 등 안절부절 못하며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며취재진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임창용 출연=“꿇어!” ‘우리 감독은 코끼리!’
삼성 임창용의 고집은 천하무적이다.누구도 꺾지 못한다.그런 그의 기질이그대로 드러났다.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 도중 연봉협상에 불만을품고 훈련장에 나가지 않았다.감히 ‘코끼리’ 김응룡 감독의 코앞에서 항명한 것이다.예전 해태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 벌어졌다.
김 감독은 다음날 임창용을 귀국시켰다.결국 아버지가 구단을 찾아와 사정하고 간신히 연봉재계약을 마쳤다.
지난 6월 21일 한화전 때는 투수교체에 불만을 품고 글러브를 땅바닥에 내던지며 또다시 감독에게 대들었다.기가 찬 김 감독은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지만 “감독님 마음대로 처리하세요”라는 구단의 방침을 듣고서야 결국은 밉지만 감싸안기로 결정.
◆발비노 갈베스 주연=‘그래 나 골통이다.어쩔래.’
롯데의 펠릭스 호세만큼이나 화제를 모은 선수가 바로 삼성 발비노 갈베스다.한국에 선을 보이자마자 빈볼시비로 뜨거운 이슈를 만들어내더니 8월 중순부터는 아예 미국으로 건너가 한달 보름간 장기외유를 즐겼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아프다고 했고 다음에는 어깨 이상을 치료하고 돌아가겠다고 했다.갈베스의 이런저런 변명에 구단에서는 아무말도 못하고 전전긍긍속만 태웠다.국제소송 감이었지만 태업에도 아무런 조치조차 취하지 못한채단장이 달려가 간신히 모셔왔다.
그러나 갈베스는 한국시리즈에서 믿었던 삼성에 배신의 칼을 꽂았다.이런 문제아에게 팀의 운명을 걸었으니 우승의 복을 차버린 것은 당연했다.
◆호세 누네스 주연=‘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한화가 소방수로 데려온 호세 누네스는 기량미달보다도 ‘여자문제’로 이광환 감독의 골치를 *였다.처음 한국에 왔을 때 미모의 부인과 두딸의 사진을보여주며 “내 와이프 예쁘죠?”라고 자랑했던 그는 알고보니 ‘두 얼굴의남자’였다.
그의 위험한 줄다리기는 지난 5월 한화와 SK가 청주에서 3연전을 마친뒤 터졌다.누네스가 한국에 다른 여자를 데려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본처가 미국에서 날아와 누네스가 살고 있던 대전의 아파트를 ‘급습’했다.눈이 뒤집힌 아내는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 미국으로 돌아갔고 이혼소송이무서운 누네스는 조강지처를 달래려고 미국을 오가야했다.야구에 전념하지못해 퇴출된 것은 당연한 결과.
사태 수습을 어떻게 했는지 누네스의 부인은 그 뒤에도 한화 구단에 전화를걸어 거취를 묻곤 했다.
◆정수근 주연=‘마이 웨이’
제34회 대만야구월드컵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정수근은 게임리더로서 좋은 활약을 했지만 너무 머리가 좋아 스스로의 판단도 빨랐다.
11월 14일 대만과의 예선리그 마지막 경기.정수근은 2-0으로 뒤지던 5회말수비에서 주전포수 김상훈을 심광호로 교체하자 스스로 걸어나왔다.
외국기자들이나 관중들이나 갑작스런 그의 퇴장에 의아해 하는 것은 당연했다.표면적인 이유는 주루플레이 도중 무릎부상이 원인이었지만 정수근은 경기 뒤 “감독이 경기를 포기하는데 뛸 이유가 없었다”고 말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이런 분위기였으니 팀이 잘 될리는 만무.
◆트로이 닐과 자스민,여인 Ⅱ 등장=‘원초적 엉덩이’
두산의 용병 트로이 닐과 마이크 파머가 음주폭행사건에 철창신세를 진 뒤고향으로 돌아갔다.
지난 5월22일.퇴출된 마이크 파머를 위해 두산의 용병들은 이태원의 한 술집에서 조촐한 환송파티를 가졌다.
이들을 지켜보던 한 여인의 손이 사건을 크게 만들었다.딱 올라붙은 닐의 엉덩이가 매혹적이었던지 술김에 살짝 건드렸다.이 모습을 본 닐의 아내 제시카가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여인을 향해 술병을 집어던졌다.
질투가 화근이 된 싸움은 흉기를 이용한 집단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사건은 우여곡절 끝에 두 용병 모두 퇴출로 끝났고 고곡으로 돌아가는 닐은구치소에서 신었던 흰고무신이 마음에 든다며 고향으로 가지고 갔다.닐에겐영원한 기념품이 됐으리라.
◆김성한 주연=‘고의 4구야 놀자?’
지난 5월 4일 인천 해태-SK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무사 만루상황서 감독이 투수에게 고의 4구를 내주라고 지시한 것이다.
해태가 3-2로 뒤진 8회말 주심이 SK의 첫 타자와 세번째 타자를 모호한 판정으로 살려줘 5-2로 점수차가 벌어졌다.김성한 감독은 분을 참지 못하고 연속해서 고의 4구를 지시했고 만루에서도 밀어내기 고의 4구를 내줬다.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만루인줄 몰랐다"며 잡아뗐지만 그 속을 누가 모를줄 알고.
◆잠실구장 배경=‘오빠 불꺼.’
한국시리즈 경기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조명등이 꺼지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지난 10월 28일 한국시리즈 7차전.9회초 2사서 뒤지고 있던 삼성의 공격때 김종훈의 타구가 힘없이 3루수 김동주로 향했다.
평범한 타구라 모두들 두산의 우승을 의심치 않았다.TV로 경기를 지켜보던잠실구장의 조명실 직원들도 “때가 됐다” 싶었는지 재빨리 조명탑의 전원을 내렸다.KBO로부터 “경기가 끝나자마자 폭죽이 터지니 조명을 꺼달라”고미리 부탁을 받아둔 터였다.
그러나 1루로 송구된 공은 글러브를 맞고 떨어져 김종훈이 세이프됐다.3만명관중과 양팀 선수들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조명이 켜질 때까지 10여분간 그자리에서 꼼짝말고 대기.
◆펠릭스 호세 훌리안 얀 배영수 공동주연=‘친구’
롯데 외국인선수 펠릭스 호세는 투수들에게 공포의 존재였다.무시무시하게방망이를 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빈볼성 공을 던지는 투수에게는 주먹다짐도 마다않는 다혈질이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관중석으로 방망이를 집어던졌던 호세가9월 18일 마산구장에서 주먹으로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빈볼을 던졌다며씩씩거리며 1루로 걸어나가더니 동료 훌리안 얀에게 또 빈볼을 던지자 마운드로 달려가 삼성 배영수에게 강펀치를 날렸다.마치 성난들소처럼.
배영수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성난 황소처럼 달려오는 호세의 모습이 떠올라한잠도 자지 못했다.다음날에야 정신을 차린 배영수는 “어지간하면 대들려고 했는데”라고 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기어들어가고 있었으니.
◆김인식 주연=‘외팔이 감독의 비명’
두산 김인식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확정짓던 날 두번씩이나 비명을질렀다.진필중이 마지막 아웃카우트를 잡자 기쁨의 비명을 질렀고 곧이어 유지훤 코치와 포옹을 하다 팔뚝이 아파 비명을 질렀다.
김 감독은 포스트시즌에 들어가기 전에 왼팔뚝 뼈가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는데 유 코치가 그 사실을 잊은 채 너무 세게 껴안은 것.
하필이면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팔뚝을 다쳐 기브스도 하지 못하고 한국시리즈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김 감독은 어이없게도 우승을 확정지은 뒤 유 코치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했다.김 감독은 다음 날 곧바로 병원으로 직행해 기브스부터 했다.담당 의사는 “어떻게 이런 팔뚝을 갖고 한국시리즈를 치르셨어요”라며 놀라워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