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화(山桃花)
박목월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시집 『산도화』, 1955)
[작품해설]
박목월의 초기 시 세계는 『청록집』의 세계와 『산도화』의 세계로 나누어진다. 『산도화』의 사계에 이르러 그 전대에 막연하게 드러난 임에 대한 슬픔의 정서가,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화자가 대상으로서의 ‘임’과 화해를 획득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제시된다.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자연은 실재하는 자연이 아닌, 우리 한국인의 가슴 밑바닥에 내재해 있는 정신적 고향이다. 이러한 자연을 통해 동양적 이상향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꿈꾸는 시인의 의식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상화(理想化)된 세계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을 한 폭의 동양화로 그린 이 작품에는 세상 이야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1~3연은 모두 배경이 되며, 4연에서 비로소 ‘암사슴’이 등장한다.
물론 시적 화자는 그것을 엿보는 사람이다. ‘구강산’이라 명명(命名)된 선경(仙景)은 시인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이상향 속의 산으로 「청노루」에서 보여준 ‘자하산(紫霞山)’, ‘청운사(靑雲寺)’와 동일한 이미지다. 그 구강산, 보랏빛 돌산에 백색, 담홍색 산도화가 두어 송이 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충만이 아닌 여백을 중시하는 동양적 미학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상향의 공간에는 세속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고, 상서롭고 고결한 사슴 한 마리가 봄 눈 녹은 옥 같은 물에 발을 씻고 있어 마치 신선도(神仙圖)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서 암사슴도 실재하는 동물의 의미라기 보다는 ‘인간의 삶으로부터 멀리 떠난 자연 존재’의 상징이라는 시적 기능을 지닌다.
사람 이야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 같은 가상 세계(假想世界)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이 상향임에 틀림없지만, 이 작품을 현실 도피성 문학으로 비판받게 하는 별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한 시인이 그리고 있는 ‘도화원(桃花源)’은 곧 우리 한국인들의 시원(始原)의 고향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닌 자연 합일의 동양적 정신을 구현함으로써, 잃어버린 고향과 자연을 회복시키려 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소개]
박목월(朴木月)
본명 : 박영종(朴泳鍾)
1916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33년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퉁딱딱 퉁딱딱」이 『어린이』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에 각각 당선
1939년 『문장』에 「길처럼」, 「그것이 연륜이다」, 「산그늘」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46년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조선문필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5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1973년 『심상』 발행
197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8년 사망
시집 : 『청록집』(1946), 『산도화』(1955), 『란(蘭)·기타(其他)』(1959), 『산새알 물새알』(1962),
『청담(晴曇)』(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8), 『박목월시선』(1975), 『백일편의 시』
(1975), 『구름에 달가듯이』(1975), 『무순(無順)』(1976), 『크고 부드러운 손』(1978),
『박목월-한국현대시문학대계 18』(1983), 『박목월전집』(1984), 『청노루 맑은 눈』(1984),
『나그네』(1987), 『소금이 빛하는 아침에』(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