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어떤 시] [16] 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김수영(金洙暎 1921~1968)
김수영 시인의 대표작 ‘풀’ ‘푸른 하늘을’보다 나는 이 작은 소품에 더 끌린다. 전통적인 운율이 있어 소리 내 읽으면 흥이 나고 간결한 시어들이 피라미드 쌓듯 포개져 점점 감정이 고조되다 마지막에 번개처럼 갈라지며 독자의 가슴을 찢는 ‘금이 간 얼굴’. 어둠, 불빛 그리고 얼굴과 번개의 이미지만으로 만든 연애시.
김수영이 쓴 200여편의 시 중 제목에 사랑이 붙은 시는 몇 편일까? 세어보니 ‘사랑’ ‘사랑의 변주곡’ 두 편뿐.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로 시작하는 ‘사랑의 변주곡’이 자유와 인류애를 노래했다면 ‘사랑’은 ‘너’가 분명한 연애시.
내가 가끔 가던 일산의 식당 벽에 김수영의 그 유명한 러닝셔츠 사진이 걸려있었다. 러닝셔츠만 입어도 멋있는 사람.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를 우연히 뵌 적이 있다. ‘김수영의 연인’을 재미있게 읽은 게 책 홍보로 이어져 김현경 선생님으로부터 장욱진의 그림을 선물 받았다. 글 쓰느라 바빠 고맙다는 말을 못한 게 후회된다. 부디 건강하시길.
#최영미의 어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