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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사무실 여직원이 그만두었다. 덕분에 한 주 내내 사무실을 지키고 앉아있으려니 간만에 차 생각이 절로 난다. |
그런데...
오늘 이 놈 땜에 오전 내내 보이차에 대해 혼란스러워야만 했다. 시커먼 엽저가 난리도 아니구 제대로 펴지는 차청 또한 없다. |
이 놈을 한번 들여다 보자!
2번 세차후 첫번째 찻물이다. 때깔도 괜찮고 약간의 차유도 흐르는 게 그런대로.. |
3포째. 그런데 이 놈의 출처를 알지 못한다. 걍 선물로 받았는데(준 사람을 봐선) 그리 좋은것이 아닌것만은 확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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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이다. 원래 토종꿀을 담는 "2중 투각 백자 도자기 "가 원이름이다. |
속을 들여다 보면 10g 내외로 부수어 약 10덩어리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자세히 보면 하얀 종이가 보이는데 식품류에 들어가는 방습제(실리카겔)와 동거중이다 |
5번째 우린물. 사실 한 달째 마셔왔던 차고, 몇몇 손님들한테 접대도 했던 찬데.. 오늘 유난히 목넘김이 껄끄럽고 습냄까지 나는것 같다. |
그래서, 착한 놈 하나를 꺼냈다. 보이차 매니아인 동네 형님한테 구한 건데, 이 놈이 아주 귀한 거라 당분간 만날 수 없는 놈이라고 까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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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정체가 애매모호한 놈의 퇴색 정도가 훨씬 심하다. 차청은 그런대로 작고 균일하긴 하다. 긴압정도는 엇비슷 |
2002년生. |
차청도 고르고 어느 정도 풍파세월도 감내해 온 듯한 겉모습이 보기에 괜찮은 것 같다. |
좌측이 정체를 알수 없는 녀석이고, 오른쪽이 보이차 매니아인 동네 형님이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던 귀한 분이시다. |
한것 같고.. 우선 착한 녀석은 갈색이 많은 흑갈색이고, 차청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고 뭉개져 있는것처럼 보인다. 긴압정도는 훨씬 무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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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이 착한녀석의 본심을 알아보도록 하자. 대략 5g 정도를 떼어 냈다. |
심심해서 혼자 노는 일인데, 그냥 편하게 티포트로 우릴련다. 쿠쿠에서 나온 3L짜리와 테팔1.5L짜리 두 개를 번갈아 쓰고 있다. 13L짜리 스텐으로 나온 것도 있는데 폼생폼사.. 영 모양이 맘에 안들어 수고스럽게 이 놈들만 쓰고 있다. |
첫 세차 물이다. |
걸름망에 어느 정도 파편들이 모이는 지 알아보았다. 요 놈 무척 깔끔하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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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빨리 세차. 아직도 주변에선 두번씩이나 세차하는 나를 두고 한마디씩 한다. 하루에 세수는 두 번 하나?? 속으로 대답하지! 머리도 두 번 깜는걸!!! |
차 우림시간을 정확히 하고자 모래시계를 곁에 두었다. 4분짜리니까 약 2분간 우렸다. |
때깔 좋네. 빨리 잡숴 볼까.
고삽미라고들 하는 숙차 특유의 향, 미가 전해 오고 잘 익은 연보리차에 메밀을 섞은 듯한 구수함까지 전해 진다. 목넘김 또한 부드럽고 무엇보다 "좋다"라는 생각이 든다. |
2포 째. 탕색이나 투명도면에서는 위 문제아랑 별 차이가 없다. 문제아에 대해 내가 너무 선입관이 있었나? 약간의 혼돈 상황이 생기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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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 4포. 이 놈의 속내가 점차 나타나는가! 이른 아침 깊은 숲 속, 차갑고 청아한 물안개가 피어오르 듯 약간의 차유를 걷어 붙이고 둥글게 휘감아 피어오르는 모습이 경이롭다! |
5포째. 참 맛있다! |
엽저를 꺼내보았다. 그런데 뭐냐 이게...? 제대로 된 찻 잎은 단 하나도 보이질 않고 탄화되도 이정도까지.. |
그래서 다시 자세히 봤다. 마찬가지네.. 엽저만 보고선 소위 쓰레기(?)차..? 그래도 잔 부스러기는 별로 없다. 역시 초짜의 한계를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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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이 소위 (자칭) 착하고 귀하신 몸, 우측이 출처가 모호한 놈이다. 둘을 붙여 놓고 보니 별 차이가 없다. 잘 보이시는가! |
그나마 온전한 모습의 엽저 하나씩을 찾아 펼쳐 보았다. 오히려 착한놈의 모양새가 더 볼품이 없다. 왜 그럴까? 엽저만으론 차의 품성을 비교한 것이 무리였나? 진실에 목 마르다!! |
지지난주 전주 한옥마을 거리에서 산 백란향을 하나 피웠다. 머릿속이 거무스레 초짜의 한계를 절실히 느낄때 가끔 향을 피워 기분을 돌이키는 것도 경험으로 얻은 좋은 방법이다. |
고려시대 청자만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명품도자 "흑자"가 있다고 한다. 거의 맥이 끊어진 고려흑자를 재현하고 계신 청곡 김시영 선생의 작품이다. "흑유요철 5인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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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유요철다기 부세트" |
"火花黑釉 退水器" |
"화목흑유차통" |
"瑞加흑유5인다기" (서가-상서러운 가평의 색) -청곡선생은 가평에 기거하시면서 "가평요"를 운영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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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ㅠㅠ. 나를 헷갈리게 하는 애매한 놈의 첫 세차 물 (빨리). |
퇴수항아리가 많이 차서 물이 잘 안 빠지네.. |
두번 세차 후 첫 우린 물. 처음 느낌보다 다소 부드러워짐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
3포. 걸름망의 찌꺼기는 역시 착한 놈보다 못하네. 씁쓰름한 맛이 역시 남아있긴 하지만 처음 보단 역시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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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포째. 여러모로 확실히 첨 보다 괜찮은 맛과 느낌. |
결론적으로, 두 보이차의 평가가 크리라는 내 생각은 어느정도 틀린 것 같다. 내가 진짜 좋은 보이차를 알고 구할 수 있는 길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쌓여야 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위 차는 두 차를 섞어 놓은 것인데 의외로 괜찮은 맛이 났다. |
[보이차]에 대한 선입견, 포장, 연도, 제조차창, 구입비용... 그리고 맛, 향, 색, 감 등. 보이차를 차이외의 다른 무엇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부터 고치지 않으면 진실한 차의 느낌을 가져오긴 쉽지 않다. |
차를 우선 차로 보아야 할 것이고, 차의 본래 역할을 순수히 받아들일때 그가 지닌 문화와 가치도 함께 내게 오리라. |
첫댓글 ^^ 마치 소설을 읽듯이 보는내내 재미있었습니다...구성,연출 다 좋습니다..브라보!!
저도 오늘 상해에 사는 동서로 부터 보이차한편 선물을 받았는데 정말 좋은차와 나쁜차(?)의 차이는 뭘까~~~ 가격이 아니라 내입에 맞으면 좋은차가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보이차 넌 누구니? 정말 알기쉽고 재미나게 구성된 글 잘보았습니다.
잘 봤습니다. 정말 차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끝이 없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