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 야생화
봄이 제때 찾아오나 싶었는데 꽃을 시샘한 추위가 며칠 있었다. 나는 한겨울에도 들녘 들길을 걸으면서 여러 야생화들은 만나 허리 굽혀 눈높이를 맞추어주었다. 함안 군북역 근처서 봄까치꽃, 진동 선두 갯가서 광대나물꽃, 진례 송정에서 냉이꽃, 진북 서북동에서 꽃다지 등이다. 엊그제까지 내가 근무하는 교정에서 가는잎할미꽃과 민들레꽃과 괭이밥꽃과 양지꽃과 별꽃들도 보았다.
삼월 둘째 토요일이다. 이제 산간에 피는 야생화를 보러 도시락을 마련해 길을 나섰다. 아침 일찍 마산역에서 의림사로 떠나는 첫차가 있었으나 그 버스는 일부러 타질 않았다. 산기슭 검불을 비집고 피어날 야생화에게 볕살이 퍼지길 가다리기 위해서였다. 그 버스를 보내고 열 시가 지나 두 번째 떠나는 의림사행 74번을 탔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어 진동으로 갔다.
진북 면소재지에서 예곡과 동삼을 지난 현대사랑요양병원 앞에서 내렸다. 근래 의림사 입구엔 그림 같은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절로 가는 길가 어느 적 입적한 스님인지 모를 부도 네 기가 나란히 있었다. 일주문 바깥 수령이 제법 되어 뵈는 벚나무 가로수에선 꽃눈이 몽글몽글 부풀어갔다.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이면 나는 의림사 계곡으로 들어 산중에서 피어난 봄꽃들을 완상한다.
외진 산기슭이라 아마 내 말고 찾아오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내가 감상한 야생화들이 사진작가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앞 다투어 몰려들 것이다. 절간 산문 바깥 인성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들머리가 야생화 군락지다. 나는 등산로가 시작되기 전 해우소 뒤에서부터 산기슭으로 올랐다. 초피나무 등걸을 헤집고 낙엽활엽수들이 자라는 숲으로 들었다. 인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자갈돌 위에는 마삭덩굴이 엉켜 자랐다, 상록성인 마삭은 자갈돌 위에 무성히 엉켜 자랐다. 청청한 마삭넝쿨 잎은 겨울을 나면서 갈색으로 바뀌었다가 봄을 맞아 본래 색인 녹색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산기슭에 형성된 숲은 그 높이가 다양했다. 높게 자란 교목 활엽수림 아래에 중간층을 이루는 관목과 국수나무 같이 지표면에 붙어 자라는 키가 낮은 수종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있었다.
이른 봄 피어나는 야생화들은 그들만의 생존법칙이 있었다. 자잘한 자갈돌에 쌓인 낙엽은 바삭바삭 말라갔다. 그 아래층 삭은 가랑잎은 부엽토가 되어갔다. 야생화들은 이른 봄 낙엽활엽수들에서 잎이 돋아나기 이전 재빨리 꽃을 피우고 연이어 잎을 펼쳐 씨앗을 맺고 일생을 마감했다. 그러고는 녹음이 짙게 드리울 여름과 단풍이 물드는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오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숲에 들어 몇 발자국 떼지 않아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노루귀를 만났다. 작은 꽃대에 자잘한 솜털을 달고 나온 분홍 노루귀 꽃이었다. 그 주변 흰 노루귀도 보였다. 얼룩덜룩한 무늬가 새겨진 얼레지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고 덜 핀 백합 송이 같이 뾰족한 부리만 밀고 나왔다. 산언덕을 더 오르니 꿩의바람꽃도 만났다. 어쩌면 저렇게 낙엽 검불 속에서 하얀 꽃이 피는가가 신기했다.
내가 오르는 인성산 기슭은 응달진 북사면이라 그다지 볕이 바르지 않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지표면에서는 때를 놓치지 않고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그곳에는 삼지닥나무들이 많았다. 이맘때 삼지닥나무에서도 엷은 노란색의 꽃이 피어났다. 난초와 같은 파릇한 잎줄기가 솟은 산자고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 연이어 보라색 현호색도 꽃잎을 펼칠 텐데 철이 일렀다.
삼지닥나무 꽃이 핀 그 밑에도 노루귀와 꿩의바람꽃은 계속되었다. 꽃잎이 넓은 하얀 홀아비바람꽃도 만났다. 산자락을 더 오르지 않고 되돌아 내려와 저수지 둑에서 도시락을 비우고 의림사 절간으로 들었다. 법당 뜰에서 두 손을 모으고 염불당 곁에 피어난 노란 복수초를 보았다. 수리봉 등산로 들머리에는 왜제비꽃이 피어났다. 볕이 바른 자리에선 양지꽃이 피어 제 임무를 다했다. 17.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