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핸드볼 여자 결승전에서 당시 소련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기쁨에 겨워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Credit : Getty Images/Pascal Rondeau ?[2004.07.22]
환호일까, 안타까움일까?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한 펜싱선수의 사진. (서울, 1988) ?[2004.07.22]
88서울올림픽에서 박종훈 선수가 링 연기 2차시기에서 10점 만점을 받아 한국선수중 최초로 올림픽 체조경기에서 만점을 기록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박종훈 선수는 뜀틀경기에서 동메달을 따내 남자체조 최초의 메달 주인공이 됐다. (서울,1988) ?[2004.07.22]
환상의 콤비’양영자-현정화 조가 88년 올림픽에서 중국의 자오즈민-천징 조를 3-0으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해 세계 최강임을 증명했다.(서울, 1988) ?[2004.07.22]
88 올림픽 탁구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유남규 선수. (서울, 1988) ?[2004.07.22]
88 서울 올림픽은 여러모로 특별한 대회였다. 두번의 ‘반쪽짜리’올림픽 이후에 처음으로 양대진영이 함께 참여하는 대회였고, 또한 아마추어 선수만 출전할 수 있다는 오랜 조항이 삭제되고 프로선수들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한국의 한명우 선수가, 32살이라는 나이와 경기중 부상이라는 악조건을 이겨내고 레슬링 자유형 82kg급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 (서울,1988) ?[2004.07.22]
인간새’세그레이 부브카가 1988년 서울 올림픽 장대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Credit : Getty Images ?[2004.07.22]
1988년 서울올림픽 대회에서 벌어졌던 세기의 명장면 중 하나. 100m 달리기에서 캐나다의 벤 존슨이 1위로 골인했으나, 도핑검사에서 약물복용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 칼루이스가 금메달을 얻었다. 은메달은 영국의 크리스티, 동메달은 미국의 캘빈 스미스가 차지했다. Credit: Getty Images ?[2004.07.22]
미국의 칼 루이스는 100m, 200m, 멀리뛰기, 400m 계주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1936년 제시오언스가 세운 기록을 재현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사진은 멀리뛰기 종목에서 도움닫기를 하는 장면. Credit : Getty ImagesCANNON David ?[2004.07.22]
1980년 모스크바 대회는 여름에 열렸다. 남자부 사이클 도로 경기중 선수들이 구불구불한 길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다. Credit : Getty Images ?[2004.07.22] 소련과 위성국들의 보복불참으로 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도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다. 이 대회에서 수려한 외모의 그렉 루가니스는 단연 최고의 스타였다. 몬트리올 올림픽에 16살의 나이로 출전한 그는 플랫폼 종목에서 은메달을 땄다.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의 불참으로 참가하지 못했지만, 84년 대회에서 스프링보드, 플랫폼 종목에서 남자로서는 처음으로 700점을 돌파하면서 우승하였다. 인기를 몰아 <뉴스위크>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고, <플레이걸>지의 누드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런 생활 탓인지 나중에 HIV 보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Credit : Getty Images/DUFFY Tony ?[2004.07.22]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보복으로 1980년 모스코바 대회에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65개 이상의 나라가 불참해 반쪽자리 대회로 전락했고, 많은 선수들이 그러한‘정치적이유’때문에 좌절해야 했다. 하지만 역시 스타는 등장했다. 구 소련의 알렉산드르 디디아틴(왼쪽)은 혼자, 금3, 은4, 동1개등 모두 8개의 메달을 따냈고, 역시 소련의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오른쪽)도 금메달 2, 은메달 2,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photo TASS ?[2004.07.22]
몬트리올에서 올림픽 구기사상 처음으로 여자배구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2004.07.21]
1976년 제 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선수. 한국의 이름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기 시작한지 28년만에 맞은 경사였다. ?[2004.07.21]
한국국적 첫 올림픽 금메달 따고 금의환향한 양정모가 시민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04.07.21]
1976년 몬트리올 대회 5000m에서 핀란드의 라센 바이렌이 13:24.76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Credit : Getty Images/Tony Duffy ?[2004.07.21]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날아다니는 요정'...1976년 몬트리올 대회 체조경기에서 사상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은 코마네치에게 따라붙는 찬사다. 모두 7번의 만점을 받으면서 종합, 2단 평행봉, 평균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얼마전 딕 파운드 전 IOC부위원장이 그녀가 만점을 받은 것은 소련의 음모였다고 말했지만, 코마네치는 올림픽 전에 열린 아메리카컵에서도 2번이나 만점을 받을정도로 당시 독보적인 체조선수였다. 지금도 뛰어난 체조선수에게 ‘제2의 코마네치’란 말은 최고의 찬사다. Credit : Getty Images ?[2004.07.21]
올림픽 사상 최악의 비극이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일어났다. 경기 11일째 되던 날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스트들이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한 것이다. 올림픽 선수촌에서 납치극을 벌였고, 거기서 2명이 살해했다. 나머지 9명의 선수들도 경찰이 진압하는 와중에 5명의 테러리스트들과 함께 사망했다. 국제올림픽 위원회는 대회를 중단한 것인지 논의했지만, 테러행위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경기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사망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추모하기 위해 경기장에 조기가 걸려있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20]
17세 소녀 올가 코르부트.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몸무게 39,5kg의 체조 요정 올가 코르부트는 2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따며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깜찍한 외모와 미소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기억되었다. Credit : Getty Images ?[2004.07.20]
1972년 뮌헨 대회에서 7개의 세계 신기록으로 7개의 금메달을 따낸 마크 스피츠. 그의 엄청난 기록을 깬 선수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미국의 펠프스가 과연 그의 대기록에 가까이 갈 수 있을지 수영팬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20]
올림픽 원반던지기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딴 알 오터.조용하지만 끈기있게 52년 대회부터 68년 대회까지 올림픽 원반던지기 4연패라는 대역사를 이룩했다. Credit : Getty Images ?[2004.07.20]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68년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의 드보라 메이어가 역영하고 있다. 그녀는 200m,400m,800m,자유형 경기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20]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날아다니는 요정'...1976년 몬트리올 대회 체조경기에서 사상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은 코마네치에게 따라붙는 찬사다. 모두 7번의 만점을 받으면서 종합, 2단 평행봉, 평균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얼마전 딕 파운드 전 IOC부위원장이 그녀가 만점을 받은 것은 소련의 음모였다고 말했지만, 코마네치는 올림픽 전에 열린 아메리카컵에서도 2번이나 만점을 받을정도로 당시 독보적인 체조선수였다. 지금도 뛰어난 체조선수에게 ‘제2의 코마네치’란 말은 최고의 찬사다. Credit : Getty Images ?[2004.07.21]
봅 비몬은 기록은 경이적인 것이었다.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1968년 올림픽 멀리뛰기 경기에서 8.9m의 기록으로 우승했는데 이것은 종전 세계기록을 24cm나 넘어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기록이 해발 2300m나 되는 멕시코시티의 높은 고도 때문이며 다시는 깰 수 없는 기록이라고 얘기했고, 비몬 자신도 이 기록에 다시는 근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기록은 1991년 마이크 파월이 8m95의 우승하면서 깨지게 된다. 마이크 파월은 자신의 기록이 ‘한 시대를 넘어서는’기록이라고 으쓱했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20]
호주의 돈 프레이저는 멜버른과 로마에 이어 도쿄에서도 100m자유형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올림픽 3연패보다 그녀의 ‘도둑질’사건이었다. 프레이저는 술을 마시고 한밤중에 일본 왕실의 정원으로 들어가 깃발을 훔치다 체포되었다. 후에 풀려났고 일본 경찰은 그녀에게 깃발을 선물로 주었지만 되려 호주 수영연맹이 그녀에게 10년간 경기출장 금지명령을 내렸다. 프레이저는 연맹을 고소했고 재판에서 이겨지만, 국제경기에는 다시 출장하지 않았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20]
독일의 잉그리드 크레이머가 1964년 올림픽 3m 스프링보드 다이빙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20]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당시 소련 대표로 출전했던 라리사 라티니나가 마루운동에서 아름다운 연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Credit : Getty Images ?[2004.07.20]
1964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레슬링 63kg급의 오사무 와타나베가 불가리아의 이바노프 콜레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Credit :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20]
미국의 알 오터가 60년 로마대회에서 원반던지기를 하고 있다.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인기도 없었던 오터는 하지만, 56년 대회부터 68년 멕시코시티 대회까지 원반던지기 4연패라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다. 그 비결은 그의 이러한 말 안에 녹아 있다. “사람들은 메달을 따기 위해 4년이라는 세월을 연습해 원반을 던지는데, 나는 다른 생각을 하며 훈련했다. 특히, 원반이 날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내겐 큰 즐거움이었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6]
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마라톤 코스는 로마 시내를 일주하는 순환 코스였다. 더욱 멋진 것은 이탈리아 병사들이 들고 있는 횃불로 거리를 밝히며 야간에 달리게 되어 있던것. 이 마라톤에서 우승한 선수가 바로 에디오피아 국왕의 경호담당 병사 아베베 비킬라. 자갈투성이의 아피안 가도를 맨발로 달리고도 자토펙의 기록을 8분이상 단축하는 혁명적인 기록을 냈다. 그는 4년뒤 도쿄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했으나, 69년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이번에는 탁구 라켓을 들고 장애인 올림픽 대회에서 우승하며 진정한 스포츠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1973년 41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2004.07.16]
로마에서 열린 1960년 올림픽 대회 십종경기중에 나온 사진. 결승점을 앞두고 미국의 레이퍼 존슨과, 대만의 양창광이 탈진한채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미국의 존슨이 1위, 양창광이 2위를 차지했다. Credit :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6]
1960년 로마올림픽 100m 자유형에서 우승한 호주의 돈 프레이저. 그녀는 56년 멜버른에서도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고 1964년 도쿄대회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해서 3번의 올림픽에 걸쳐 1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6]
1960년 로마올림픽 100m 자유형에서 우승한 호주의 돈 프레이저. 그녀는 56년 멜버른에서도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고 1964년 도쿄대회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해서 3번의 올림픽에 걸쳐 1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6]
멜버른 올림픽 당시 소련과 독일의 축구경기. 소련이 독일을 2대1로 이겼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JAY Harry ?[2004.07.16]
1956년 멜버른 대회의 신데렐라는 호주의 18살 소녀 베티 커스버트(오른쪽)였다. 그녀는 단거리 경주에서 3개의 금메달을 땄다. 원래 수줍음을 잘 타는 그녀는 나중에 인터뷰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공인이 되는게 너무 싫었지만 운동선수로서의 재능을 신에게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달려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달렸다.”사진은 200m 경주이며 독일의 크리스타 스터브닉이 2위, 호주의 말린 매튜가 3위를 차지했다. Credit : Getty Images/Getty Images UK ?[2004.07.16]
52년 헬싱키 올림픽 10,000m경기.체코의 에밀 자토펙이 1위, 프랑스의 오카차가 2위를 차지했다. Credit :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6]
1952년 헬싱키 대회에서 미국의 로버트 리차드가 장대높이뛰기 경기에서 우승한후 기뻐하고 있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RUBELT Lothar ?[2004.07.16]
헝가리의 마기 코론디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체조 이단평행봉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Credit :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6]
1960년 로마올림픽 100m 자유형에서 우승한 호주의 돈 프레이저. 그녀는 56년 멜버른에서도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고 1964년 도쿄대회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해서 3번의 올림픽에 걸쳐 1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6]
2차대전이 끝난지 3년만만인 1948년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영국공군의 막사가 올림픽선수촌으로 사용되었다. 네덜란드의 블라케르스 쿤(오른쪽)은 100m, 200m, 80m 허들, 400m 계주에서 4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멀리뛰기에서도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기 일정으로 인해 메달을 따지 못했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히틀러는 흑인을 싫어했지만, 다른 독일인들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멀리뛰기 결승전에서 오언스의 라이벌이었던 루츠 롱은 멀리뛰기의 비결을 오언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결국 오언스가 멀리뛰기도 우승해 4관왕이 됐다. Credit :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Lothar Rubelt ?[2004.07.15]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아리아 민족의 선전장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목화씨를 따던 흑인 제임스 오웬(애칭 제시 오언스)의 등장으로 백인 우월주의는 잠잠해졌다. 제시는 100n, 200m, 400m계주, 멀리뛰기에 걸쳐 4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미국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영웅이 됐다. 그의 육상 4관왕 기록은 칼루이스가 나오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2004.07.15]
베를린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우승하고 시상대에 서 있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동메달). 가장 오른쪽은 은메달을 딴 영국의 어니스트 하퍼. 애써 일장기를 가리고 있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베를린 올림픽에서 역주하고 있는 손기정 선수. 1936년 8월 9일.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RUBELT Lothar ?[2004.07.15]
1936년 8월 9일.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가 영국의 어니스트 하퍼선수와 선두를 다투고 있다. Credit :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손기정 마라톤 미공개 사진. 먼 거리에서 본 시상식 전경.(연합뉴스) ?[2004.07.15]
손기정 마라톤 미공개 사진. 1948년 서윤복 선수의 보스톤 마라톤 제패 기념사진으로 백범 김구 선생과 이승만 박사가 한자리에 모인 장면이다(감독 시절의 손기정과 남승룡 코치도 보인다). ?[2004.07.15]
손기정 마라톤 미공개 사진. 베를린 올림픽을 앞둔 손기정 선수의 모습을 담은 사진.(연합뉴스) ?[2004.07.15]
손기정 마라톤 미공개 사진. 1946년 8월 9일 열린 세계 제패 10주년 기념 행사에서 손기정선수가 김구로부터 격려를 받고 있는 모습. ?[2004.07.15]
손기정 마라톤 미공개 사진. 선두로 골인점을 향하는 손기정 선수. ?[2004.07.15]
손기정 마라톤 미공개 사진. 해방 후 전국 체전에서 시범경기에 임한 손기정 선수의 결승점 통과 장면. ?[2004.07.15]
손기정 마라톤 미공개 사진.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당시 손기정 선수가 우승 후 국내 기자들과 전화로 인터뷰하는 모습.(연합뉴스) ?[2004.07.15]
손기정 마라톤 미공개 사진.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당시 손기정 선수의 우승 순간을 새로운 각도에서 촬영된 사진.(연합뉴스) ?[2004.07.15]
손기정 마라톤 미공개 사진.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당시 손기정 선수가 우승 후 쓸쓸히 트랙을 빠져 나가는 모습.(연합뉴스) ?[2004.07.15]
1932년 로스엔젤리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스위스의 게오르게 미에즈 선수가 마루운동 경기를 하고 있다. 그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1928년에 열린 제 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여자부 펜싱 플러레 경기에서 독일의 헬렌 메이어와 올가가 경기하고 있다. 헬렌이 우승을 차지했고 올가는 3위를 했다. Credit :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제8회 파리 올림픽 대회 200m 결승전. 미국의 패독이 2위, 숄츠가 1위, 영국의 리들이 3위, 미국의 힐이 4위 영국의 에이브럼스가 6위, 미국의 노튼이 5위를 차지했다. (왼쪽부터 오른쪽). 영국의 에이브럼스는 100m에서는 1위를 차지했는데 나중에 그의 이야기가 ‘불의 전차’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제8회 파리 올림픽 대회 200m 결승전. 미국의 패독이 2위, 숄츠가 1위, 영국의 리들이 3위, 미국의 힐이 4위 영국의 에이브럼스가 6위, 미국의 노튼이 5위를 차지했다. (왼쪽부터 오른쪽). 영국의 에이브럼스는 100m에서는 1위를 차지했는데 나중에 그의 이야기가 ‘불의 전차’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Credit :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1920년 앤트워프대회의 다이빙 경기장 전경.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린 제7회 올림픽 대회에서 다이빙에 참가한 ‘소녀’선수들(당시 14살). 어린선수들이라고 무시하다가는 큰코 다친다. 미국의 에일린 리긴은 3m스프링보드에서 금메달을 땄고, 스웨덴의 닐스 스코그 룬트는 하이다이빙에서 은메달을 땄다.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1920년 앤트워프 대회가 나은 가장 위대한 장거리 주자중의 한명인 파보 누르미. 그는 이 대회에서 10,000m와 크로스컨트리서 금메달을 딴 후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대회에서 모두 9개의 금메달과 3개의 은메달을 따며 각종 종목을 휩쓸었다. 총 22개의 세계 신기록을 세워 ‘나는 핀란드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2004.07.15]
191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핀란드의 알프레드 아시카이넨과(왼쪽), 러시아의 마틴 클라인이 레슬링 그레코로망형 경기를 하고 있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1908런던 올림픽 110m허들의 우승자인 미국의 포레스트 스미슨. 한손에 성경을 들고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다. 그의 금메달은 신앙의 힘이었을까?^^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5]
1908년 런던대회에서 여자선수들이 양궁시합을 하고 있다. 검은색 정장에, 모자까지 쓰고 경기를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4]
런던대회 100m 경기의 우승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레지날드 워커였다. 경기후 동료들과 관계자들이 그를 무등태우고 경기장을 한바퀴 돌고 있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4]
1908년 런던대회 마라톤경기에서 1위로 들어오고 있는 이탈리아의 도란도 피에트리. 극도로 지친 그는 경기장에 들어온 후 쓰러졌다 일어나는 것을 4번이나 반복했다. 다섯 번째 쓰러졌을때 보다못한 경기진행 요원이 그를 부축했고, 1위로 골인해지만 나중에 실격을 선언당한다. 마라톤 우승의 영광은 미국의 헤이즈에게 돌아갔다.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4]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에서 장대높이 뛰기에 참가한 한 선수가 경기하고 있다. 경기방법은 지금과 별차이 없지만, 높이는 한눈에 보아도 큰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4]
미국의 프레드릭 윈터스(Frederick wINTERS)선수가 1904년 당시 올림픽 종목이었던 한손 역기 들기 종목에 참가해 경기하고 있다. Credit :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2]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에서 선수들이 줄다리기 경기를 하고 있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2]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 대회에서 수영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이 세느강변에 있는 출발선에 서 있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2]
1900년 파리대회에서 미국의 레이 어우리(Ray Ewry)가 높이뛰기, 멀리뛰기, 정지3단뛰기(standing triple jump)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IOC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2]
제1회 올림픽 대회 마라톤 경기의 우승자인 스피리돈 루이스. 당시 주경기장 파나시나이코 경기장을 재건해 기증한 갑부 게우르기오스 아베로프의 “사위가 되어달라”라는 부탁을 거절하고,말 한마리와 손수레만 얻어 다시 목동으로 돌아갔다. 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2]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100m 결승장면. 미국의 토마스버크(왼쪽에서 두번째)는 허리를 구부렸다 출발하는 혁명적인 스타트 방법을 들고나와 100m에서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고 두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2]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에서 미국의 로버트 가렛이 포환을 던지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그는 이종목에서 최초의 챔피언이 되었다. IOC/Olympic Museum collections [2004.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