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칠십 리
강 문 석
서귀포는 언제나처럼 이국적인 풍광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겨울에 만나는 이러한 정취는 남국에서나 접할 수 있는 야자수와 먼나무 담팔수나무 같은 열대성식물들이 만들어낸 가로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새벽까지 비를 흩뿌리던 날씨는 한낮으로 접어들면서 청명한 가을하늘처럼 해맑았다. 불황의 늪에 빠졌다는 장탄식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유람선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선상은 마치 사람을 골라서 태운 것처럼 시끄러운 중국인들이 보이질 않아 바다를 감상하기엔 더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부서지는 햇살을 받은 쪽빛바다는 눈부셨고 가끔씩 너울성파도가 일렁였지만 해면은 고요했다. 새우깡에 중독된 갈매기들이 유람선을 따르며 펼치는 군무는 이제 친숙한 광경이 되었지만 바다여행에는 활력을 보태고 있었다. 서귀포항의 유람선선착장 바로 앞 무인도 새섬은 오래전 육지와 교량으로 연결되었고 다리엔 나선계단과 예술미가 돋보이는 조형물까지 곁들여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새섬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서귀포는 천혜의 미항으로 거듭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한라산이 화산폭발하면서 백록담 자리에 있던 산봉우리가 이곳까지 통째로 날아와 섬이 되었다는 전설은 너무 과장이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정상 이번에 오르지 못하는 한라산은 좀 멀긴 하지만 서귀포바다에서 조망하고 끝낼 참이었다. 그랬지만 흡사 거대한 이불자락으로 한라산을 뒤집어씌운 형국인 새하얀 구름 띠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다. 이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오른 한라산은 내년부터 입장료 2만원을 받겠다는 뉴스가 떴다. 다른 국립공원이나 이름난 관광지들은 이미 받고 있던 입장료도 점차 없애는 추세인데 거꾸로 새로 그것도 고액을 받겠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유람선 해설자는 마이크로 선상의 손님들에게 한 시간 내내 구수한 입담을 풀어냈다. 목소리는 비교적 젊어 보이는데 자신의 인생경험까지 녹여 배꼽을 잡게 만들었다.
세 개의 섬을 돌아오는 유람선코스 중간지점엔 같은 업체에서 운영하는 잠수함관광도 들어있었다. “어떤 아저씨는 저한테 직접 찾아와서 이 배가 언제 잠수하느냐고 묻는데 만약 우리가 탄 유람선이 잠수하면 저녁 9시뉴스에 바로 나옵니다.” 하는 식이다. 이삼백 명이 수장된다면 9시까지 갈 것도 없을 테지만 하루에 일어난 사건사고를 망라한 종합뉴스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는 일층 선실에서 열리고 있는 노래자랑을 알리는 광고도 몇 차례나 해댔다. 제주여행에 나서면서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해군기지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 첫날 혼잡한 제주공항에 마중 나온 청년가이드에게 같은 국책사업인 제주신공항 진척상황을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입에 거품부터 물었다. 정부에서 제주 사람들을 그렇게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는 말부터 꺼냈다. 동문서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 오늘은 서귀포에서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하다가 인근에 해군기지인 강정마을 안내판이 나타나기에 물었더니 역시 같은 논리로 그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알려진 대로 제주해군기지는 국방부가 주도하는 신항만이다. 9년 전 해군과 정부는 2014년까지 1조3백억을 들여 전투함 20여 척과 15만 톤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45만 제곱미터의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항만 상주인원은 장병과 가족을 포함해 7천5백 명 정도로 보았다. 작년 9월 해군기지 부두가 준공되어 이지스 세종대왕함 등의 시험입항을 거쳐 금년 2월 완공되었다. 기지의 필요성이 13년 전 제기된 것은 우리나라 수출입 물량의 대부분이 제주 남방해역을 지나기 때문에 이 지역의 해상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당초 예정지는 강정항이 아닌 화순항이었고 화순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환경단체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무산되자 다른 마을들이 기지유치를 희망했다. 그래서 결성된 위미리해군기지 추진위원회는 해군기지가 특정지역에 치우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는 제주해군기지란 용어를 사용키로 했다. 위미리 주민들의 유치움직임에 다른 지역도 유치에 나서면서 강정마을도 유치건의서를 제출했고 2007년 6월 평가에서 강정마을이 결정되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이곳 해군기지가 미국을 대신하여 중국과 맞설 '불침 항모'라고 선동했었다. 이들 언론의 주장은 중국에 대한 견제로 제주도에 해군기지와 공군기지가 설치된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어도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현재 해군작전사령부가 있는 부산에서는 481킬로미터나 되는데 이는 중국의 287킬로미터보다 훨씬 멀지만 제주도에 기지가 들어서면 불과 174킬로미터로 그 거리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을 이들은 마치 북조선 노동당 기관지처럼 국가안보를 해코지하는 망언을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유람선이 지나는 해안에서는 팔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일본군이 구축한 해안포진지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픈 역사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태평양전쟁 말기의 제주도민은 20만이었지만 일본군 병사가 7만5천이나 주둔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제주에 들어온 것은 중국의 난징을 공격한 후 전투기가 본토까지 되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기의 연료통을 크게 만들면 폭탄을 적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제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368개의 오름 중 한국인을 강제로 잡아들여 120여 군데에 진지를 구축했다. 유람선 해설자는 당시 제주도에 파놓은 진지가 3천여 개나 아직 남아있다고 했다. 하지만 진지만이 아니었다. 육군과 해군의 비행장과 포대 참호 고사포진지 훈련장 감시초소 대피소 진지동굴 특공대기지 비행기격납고 탄약고 폭탄매립지가 70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그대로 존재한다. 제주도에 중문관광단지가 들어서던 1970년대에 부산에서 제주도에 땅을 사러가자며 나선 직장 동료가 있었다. 중문 호텔단지를 지날 때 그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일제 때인 1930년대까지만 해도 한낱 보잘것없는 어촌에 불과했던 서귀포였다. 이러한 서귀포를 바깥세상에 퍼뜨린 것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가요곡 ‘서귀포 칠십리’였다. 노랫말 어디에도 천혜의 경관을 가진 서귀포를 찬탄한 내용은 없었지만 그땐 그랬다. 이는 아마도 일제 치하에 억눌려 살았던 국민들에게 끝없는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을 자극하였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아마도 노래를 부른 남인수의 미성 가창력이 격동의 한 시대를 풍미했고 금지곡과 개사 해금의 우여곡절을 거친 때문에 노랫말은 더욱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심금을 울렸을 것이다. 하선하기 위해 유람선 선실로 내려서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실 앞면 무대에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대한민국 중년 아줌마부대가 질펀한 노래와 춤판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대다수 출연자들은 빠른 템포의 유행가를 선곡했고 가사는 저속하고도 낯 뜨거운 것들이었다. 유람선 업체에선 남성 사회자를 내세우면서 무대에 서는 손님은 무조건 칭찬 일변도로 모시라는 임무를 부여한 것 같았다. 악을 악을 써대며 고래고래 소리로 발악하는 출연자에게 "전국노래자랑, 최우수했지요?"란 비행기를 태우면서 사회자는 유들유들한 낯짝을 흔들어댔다. 이들 공해집단을 애써 외면하면서 서귀포 앞바다가 안겨준 서정적인 낭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달해 보지만 기분은 많이 잡친 뒤였다. 부디 서귀포 앞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오래도록 무탈하길 바란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온다
금비늘이 반짝반짝 물에 뜨는 서귀포
미역 따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금조개도 그리워라 물 파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별도 외롭네
진주알이 아롱아롱 꿈을 꾸는 서귀포
전복 따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물새들도 그리워라 자개돌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물안개 곱네
첫댓글 너무도 생생한 서귀포 기행문 탐독 잘 했습니다.강회장님 건승하십시요.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십여 일 남은 병신년 마무리 잘하시고 복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