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처럼 텅 비어
최승자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세계의 끝에서
세계의 끝에서
슬픔 한 자락을 접는다
어느 먼 허공,
그 너머 허공에서
바람이 지고
하늘 虛 그 너머 그 너머로
새 한 마리 건너 뛴다
― 최승자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사/2016)
최승자
1952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독문과에서 수학했다.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쓸쓸해서 머나먼』 『물 위에 씌어진』 『빈 배처럼 텅 비어』, 산문집으로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어떤 나무들은』, 옮긴 책으로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자살의 연구』 『빵과 포도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침묵의 세계』 『죽음의 엘레지』 『자스민』 『상징의 비밀』 『혼자 산다는 것』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아홉 가지 지혜』 『중독보다 강한』 『아홉 가지 이야기』 『워터멜론 슈가에서』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지리산문학상,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