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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반년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의 단을 쌓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고유하고 비범한 덕목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데살로니까 성도들은 외부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까 성도들이 이 어려움을 잘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말씀으로 도왔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맥추감사절 말씀을 통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항상 기뻐하라 (5:16)
16절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온통 속상하고 화나게 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이 이상해지고 우울증 환자가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잠시라도 기뻐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가 상황에 관계없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기쁨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기쁨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인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주부들은 요리하는 TV프로를 보면서 기뻐하고 청년들은 족구하면서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일시적입니다. 그래도 이런 즐거움은 건전한 즐거움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해악을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를 죄의 쾌락이라고 말합니다. 성적인 쾌락, 알코올, 마약, 도박, 게임과 같은 것들은 순간적인 쾌락을 주지만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영원히 고통과 슬픔에 이르게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 주는 줄 알면서도 찾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기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영적 기쁨이 필요합니다.
본래 인간은 ‘기쁨’의 에덴동산에서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을 슬프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죽음이나 질병이 없었습니다. 죄도 없었기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탐욕을 부릴 필요도 없었고, 또한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죄의 소욕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인간은 단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사랑하면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기쁨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단의 꾀임에 넘어가 교만과 의심에 빠지면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죄를 짓게 되었고 이로 인해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을 단절시켰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에덴에서 상실하게 되었고, 에덴을 상실한 인간은 더이상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어 늘 사단이 심어 주는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로 인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창 3:19). 죽음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하는 둘째 사망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계 21:8).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가장 슬픈 소식이였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다 소유하고 원없이 산다 할지라도 죽음과 함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무엇을 한들 기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을 괴롭히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소유가 많아지거나 좋은 조건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영혼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을 어떤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크게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 (5:17)
17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pray continually)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누가복음 18:1절에서 예수님이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 즉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남편들과 이웃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하면 마귀가 눈여겨 봅니다. 건달들도 사람을 가려서 시비를 겁니다. 세계챔피온 권투선수나 UFC 선수에게 시비걸지 않습니다. 마귀도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 중심이 불분명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마귀와의 싸움입니다(엡 6:12).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길 때 사람들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더 사단의 궤계에 말리게 됩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 한나와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씨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한나는 브닌나의 시기와 무시로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브닌나와 감정과 혈기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을 쏟아 놓고 기도함으로써 고차원적인 영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사무엘을 허락하사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쉬지않는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잠깐잠깐씩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할 때든, 전도하러 가든지, 방문하든지, 대화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5초씩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누굴 만나러 갑니다. 잘 성사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수시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하는 기도뿐 아니라 듣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눅 11:1-4). 주기도문은 우리가 어떤 내용으로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욕심에 기초해서 기도를 하면 들어주시지 않지만(약4:2)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요일 5:14,15).
셋째, 범사에 감사하라 (5:18)
5:18절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대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귀한 생명을 주시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와 마실 물과 먹을 음식과 가족과 친구들과 우리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해서 죄사함의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죄책감과 슬픔과 두려움과 각종 흉악의 결박과 어두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참 자유와 기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주셔서 천성을 향하여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가장 값지고 의미 있는 사명인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칩니다. 우리에게는 불평할 이유가 하나도 없고 오직 감사할 이유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고 적극적으로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2-5)
이렇게 하나님의 모든 선하심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불평할 이유만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을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가 되지 않고 감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모든 죄의 시작입니다. (롬1:21). 원망과 불평은 전염병과 같아서 누구에게 교회를 불평하고 지도자를 불평하면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죽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립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파괴되어 버립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면 사단이 역사하게 되지만, 감사하게 되면 성령이 역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틴루터는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불평은 불행을 낳지만 감사는 행복을 창조합니다. 감사하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는 행복과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사할 것이 있어야 감사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일상생활에서 적극적으로 감사 제목을 찾아야 합니다.
헬렌 켈러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 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의 소망은 우리는 매일 누리고 있는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얼마나 감사제목을 찾지 못하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까? 분수에 지나친 높은 마음, 욕심, 경쟁심, 시기, 질투가 감사의 마음을 빼앗아 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감사하고자 하면 감사할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감사를 하되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상황이 좋으면 감사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면 감사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감사는 상황이 좋아졌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in all circumstances) 해야 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불평은 하지 않지만 마음에 감사가 없을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감사하지 않는 것도 큰 죄가 됩니다. 좀더 깊이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감사해야 할 일도 불평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로볼 때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감사하고자 마음을 먹고 감사제목을 자꾸 찾고 찾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를 가장 베스트의 삶으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선하신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주위 사람들의 시기로 사자굴에 들어가 사자의 밥이 되는 위기 상황을 만났습니다. 일반적으로 힘든 상황을 만나면 “왜 나에게 이러시는 겁니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다니엘도 이날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참았는데 “하나님 왜 하필 노년에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였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는 위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었지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는 원수들을 망하게 하시고 사자굴을 없이해 주시도록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고 감사하였습니다. “전에 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하나님은 이런 다니엘을 기뻐하시고 사자굴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자 굴을 없애지 아니하시고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사자의 입을 막으심으로 입맛도 다시지 못하게 하시고 다니엘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을 없이 하시지 않고 우리가 믿음으로 위기 상황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위기 상황을 통해서 더 큰 믿음과 기도의 힘을 체험하도록 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은혜가 넘치고 무엇보다 감사가 넘치는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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