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자유로워지리! 통영, 돌로 빚은 바다 위의 연꽃을 찾아서 1박2일
2026년 5월 두발로학교는 <비경! 연화도와 통영 예술가 유적 탐방>
5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94강으로 통영 연화도로 떠납니다. 연화도는 통영8경 중 하나인 용머리가 돌로 빛은 연꽃처럼 신비로운 곳입니다. 기가 세서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행했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5월의 생명력 가득한 연화도, 그리고 남파랑길 따라 통영의 예술가들을 찾아 함께 떠나보시죠.(*연화도 걷는 길은 연화봉 오르는 길이 살짝 가파를 뿐 전체적으로 쉬엄쉬엄 걷는 힐링 코스입니다. 바위, 절벽 구간은 조심하세요^^) ▶참가신청 바로가기
▲연화도 연화봉 정상에 서면 비경! 용머리해안 너머로 욕지도, 소매물도 등 한려수도 수많은 섬들이 선경처럼 펼쳐진다.ⓒ이상희
*코로나19와 독감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 참가회원님은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를 권합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94강, 2026년 5월 23(토)-24(일)일, 1박2일로 진행하는 <아름다운 연화도와 통영 예술인 명소 탐방 1박2일>에 대해 들어봅니다.
토박이들이 최고로 꼽는 섬, 연화도
통영은 바다로 열린 땅이다. 시내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아름답지만, 섬 여행을 해야 통영의 진가가 드러난다. 통영 앞바다에는 한산도, 연대도, 비진도, 매물도, 욕지도 등 보석 같은 섬들이 흩뿌려있다. 그중 연화도는 유명세는 덜하지만, 토박이들이 통영 최고로 꼽는 섬이다.
1시간쯤 뱃길을 달려 연화항에 내렸다. 연화도는 둘레 12㎞로 크지도 작지도 않다. 최고 절경은 섬 동남쪽 끝에 꼬리처럼 달린 용머리다. 용머리는 네 개 바위섬과 해안 절벽을 통칭한다. 주민들은 ‘네 바위섬’으로 불렀는데, 통영8경을 선정하면서 ‘용머리’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옛 이름은 생김새를 잘 알 수 있고, 새로운 이름은 헤엄치는 용을 상상하게 한다.
▲용머리전망대에 서면 장대한 해안 절벽이 펼쳐진다. 통영의 많은 섬 중에 이런 절경이 펼쳐지는 곳은 드물다.Ⓒ진우석
연화도 트레킹은 먼저 용머리를 찾아가는 게 순서다. 마을버스를 타고 용머리 입구인 동두항에 내렸다. 여기서 용머리전망대를 먼저 오르고, 보덕암과 연화봉을 거쳐 연화항으로 돌아가는 코스가 좋다. 동두항은 여덟 가구가 사는 아담한 항구 마을로 둥그스름 후덕해 보이는 봉우리 아래 폭 안겨 있다.
용머리전망대 가는 길에 놓인 출렁다리가 섬과 섬을 이어준다. 다리 위에 서면 입이 쩍 벌어진다. 거칠면서 눈부시게 흰 절벽이 웅장하게 펼쳐지는데, 바위들 생김새가 가히 만물상이라 부를만하다. 특히 바다로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는 듯한 망부석이 눈길을 붙잡는다.
▲수묵화처럼 아련한 연화도 앞바다Ⓒ강제윤
네 개의 섬과 해안 절벽 어우러진 용머리
출렁다리에서 능선을 10분쯤 걸으면 용머리전망대에 닿는다. 용머리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끝 지점이다. 꿈틀거리는 용머리의 해안 절벽과 멀리 가야 할 보덕암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다시 출렁다리를 건너가 용머리 능선을 따른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아기자기한 능선을 따르면 어느새 시원하게 전망이 열리는 봉우리 위에 서게 된다.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하염없이 용머리를 바라보는 이가 있다. 그 옆에 슬쩍 앉아 해초 유부초밥을 꺼내 먹었다. 밥을 먹는 건지, 풍경에 취하는 건지. 그에게 슬쩍 말을 붙여보니 통영 토박이다. “잘 오셨습니더. 통영 여러 섬 중에 연화도가 최고 아임니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헤어져 보덕암을 찾아간다. 눈은 멀고 발은 빠른 법. 저 멀리 있던 보덕암에 1시간도 채 안 돼 닿았다. 보덕암 삼거리에서 암자로 내려가는 길에는 수국 군락이 가로수처럼 자리한다. 6월 중순이면 꽃이 핀다. 화장실 창문에서 본 용머리가 꽃처럼 보인다. 보덕암은 용머리가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자리 잡았다. 암자 마당에서 용머리를 바라보니 바다로 헤엄쳐 나가려 용 한 마리가 자맥질하고 있다.
보덕암에서 연화봉 정상 가는 길에 토굴이 있다. 이곳에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도하는 모습의 동상이 있다. 연화도인은 조선 연산군 때 억불정책으로 인한 불교 탄압을 피해, 비구니 셋과 함께 이곳에 와 도를 닦았다고 전해진다. 연화도인은 입적하기 전에 자신을 받아준 주민을 위해 둥근 돌에 ‘富(부) 吉(길) 財(재)’란 글을 새겼다고 한다. 이 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연화항에 있는 안내판에서 이 돌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연화세계의 풍경을 연출하는 연화도의 석양Ⓒ강제윤
연화도인과 사명대사의 수도처
연화도인이 입적하자 마을 주민들은 도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수장했는데, 그 자리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고 한다. 그 뒤 사명대사가 그를 따르는 여인 셋과 섬에 들어와 연화봉 밑 토굴에서 수도했다. 사람들은 사명대사를 연화도인의 환생으로 믿었다. 이런 이유로 섬 이름이 ‘연화(蓮花)’가 됐다. 연화는 연꽃이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향, 불국토를 가리킨다.
연화도에 다녀온 후 이상하게 몸이 생생했다. 장시간 운전에 녹초가 될 만도 했지만, 멀쩡했다. 아마도 용머리의 기운이 나도 모르게 스며온 것 같다. 연화도에서 도인들이 수도한 이유를 몸소 느낀 셈이다. 토굴 위가 연화봉 정상이다. 여기에 우람한 석조아미타대불이 세워져 있다. 정상 비석 뒤로 용머리의 장관이 유감없이 펼쳐진다. 호연지기가 절로 나는 장쾌한 풍경이다.
하산은 보덕암 쪽으로 내려오지 말고, 서쪽 능선을 타는 게 좋다. 요란하게 새들이 지저귀는 풍성한 숲길을 지나면 연화항에 닿는다. 시간 여유가 되면, 보행교로 연결된 우도로 건너가 구멍섬에 다녀올 수 있다. 연화항 용머리식당에서 ‘아지’라 불리는 전갱이 물회를 시켰다. 햇살 부서지는 바다를 보면서 감칠맛 나는 자연산 전갱이를 맛보는 게 일품이다.
▲하늘에서 본 통영. 아래 세병관과 가운데 강구항 등 미항 통영이 한눈에 잡힌다.Ⓒ진우석
남파랑길 걸으며 만나는 통영의 예술가들
남파랑길은 ‘남쪽[南]의 쪽빛[藍]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해안을 따라 총 90개 코스로 이루어진 1,47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물론 아름다운 통영도 그 길 위에 있다.
통영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순신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영의 큰 어른이었던 소설가 박경리 여사는 통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말을 했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친구들과 세병관 교실 칠판에 빨간 분필로 ‘대한민국독립만세’라고 쓰고 일본을 욕하는 글도 썼다. 그때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해저터널(다이코보리), 충렬사, 세병관을 통하여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를 배웠다.
통영에서 예술가가 많이 태어난 것은 이순신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순신은 덕장이면서 예술가였다. 임진왜란 당시 통영은 한촌(閑村)이다. 해군본부(우수영)가 들어서면서 8도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기술자(쟁이바치=예술가)들이 다 모였다. 통영은 기후, 먹거리, 풍광이 아름다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눌러 앉아 소목장, 입자장, 선자장, 주석장이 되었다.
이들이 통영예술의 토양이었다. 특히 ‘통영소반’은 특별한 것이다. 통영의 자부심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박경리, 2004년 마산MBC <특별대담> 중에서
박경리(1926~2008)
박경리 작가는 한국 문학사의 거대한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소설가로, 대하소설 <토지>를 통해 민족의 한과 생명력을 그려낸 거장이다.
문학적 성취 : 26년에 걸쳐 집필한 5부작 대하소설 <토지>는 한국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관되게 탐구했다.
통영과의 인연 : 통영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그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 배경이 바로 통영이다. 통영의 지형과 풍습, 당시의 삶이 작품 속에 생생하게 녹아 있다.
서피랑 마을(<김약국의 딸들> 배경지) : 서피랑 언덕 일대는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요 배경이다. 소설 속 문장들이 새겨진 조형물과 벽화, 작가의 생가 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박경리 생가 : 서호동에 위치하며, 현재는 내부에 들어갈 수 없는 사유지이지만 담벼락에 작가의 사진과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자료들이 붙어 있어 밖에서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청마 유치환(1908~1967)
유치환 시인은 통영이 낳은 한국 근대 문학의 거두. <생명의 서>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의지와 생명력을 노래한 시인이다.
시적 경향 : 허무와 고독에 머물지 않고 이를 극복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담아 '생명파' 시인의 대표 격으로 불린다. 남성적이고 웅장한 어조가 특징이다.
통영과의 인연 : 통영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해방 후 통영여중·고 등에서 교편을 잡으며 교육자로서의 삶을 병행했다.
유명한 일화 : 시조 시인 이영도와 20년에 걸쳐 나눈 애틋한 편지(<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가 유명하다. 그 편지들을 부쳤던 장소가 바로 지금의 통영 강구안 인근 중앙우체국이다.
청마문학관 & 생가 : 시인의 유품과 문학적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복원된 생가도 나란히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기 좋다.
통영 중앙우체국(청마우체국) : 강구안 근처에 위치한다. 이곳은 그가 이영도 시인에게 수천 통의 편지를 보냈던 장소로, 건물 앞에는 그의 시 <행복>이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