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 시인. 시집
<별빛의. 화법. > 서평
이경철. 문학평론가
아토포스 2025 겨울호
우주의 기운을 온몸과.혼으로. 생생하게
감응하는 우주시
우주의 기운을 온몸과 혼으로 생생하게 감응하는 우주시
-김세영 신작 시집 『별빛의 화법』
이경철(시인·문학평론가)
“자유혼아, 기화(氣化)되어/중력의 울(울타리)을 헤치고 나와/공명(共鳴)의 기파(氣波)를 좇아가자//우주의 새로운 거처,/영성(靈性) 세계로 가자.”―「울(울타리), 너머로」 부분
김세영 시인의 신작 시집 『별빛의 화법』에 실린 시편들은 온몸과 혼으로 별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주에 끊임없이 파도쳐오는 별빛의 파장, 기파와 공명하며 하나가 돼가고 있는 우주시다. 그래서 최초의 우주 서정시집으로 읽을 수 있다. 나아가 이 지상의 죽음을 넘어서는 우주 영성시집으로 읽힐 수 있다.
시인은 시집 뒤에 실린 시론 「나의 우주시론」에서 우주시를 “우주에 대한 현대 천체물리학적 사실 인지를 바탕으로 한 세계 현실의 새로운 인식과 감성으로 쓰여진 시”라고 정의했다. “자연을 대상 소재로 하여 이에 대한 동일성의 인식과 감성의 바탕으로 쓴 시를 기존의 자연서정시라고 한다면, 그 자연의 바탕을 우주적 시공간으로 확장시킨 시가 우주시”라는 것이다.
의사이기도 한 김 시인은 우리 몸을 현미경으로 보며 해부한 듯한 치밀한 이미지들로 만물과 교감하며 퇴화된 서정을 온몸으로 복원해 왔다. 자연과 우리 몸 오장육부가 신경망으로 예민하게 연결된듯한 정밀한 이미지에 서정과 시혼이 묻어나는 서정을 추구해왔다. 그래 ‘퇴화된 리리시즘을 복원하는 메디컬 이미지즘’이란 평을 들어왔다. 그런 김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는 우리 시단을 넘어 세계 최초로 온몸의 신경이 우주와 연결된 우주 서정시를 선보인 것이다.
맨 위에 인용해놓은 시 한 대목은 시인이 최초로 명명한 우주시 선언처럼 들린다. 서정, 포에지의 거처를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우주’로 새롭게 옮기자고 하고 있으니. 그 방법론으로 몸에서 기화된 기파로 우주에서 파동쳐오는 별빛의 파장과 공명하며. 그러므로 우주적 서정은 삶과 죽음을 넘어서 우주와 한 몸이 되는 영성과 곧바로 결부되게 된다.
“세상에 갇혀 살았으니, 이제는/벌거숭이 천문의 시냅스를/당산나무 가지처럼/언덕에 세우면 된다//굽은 손가락 사이로/마지막 남은 기파가 빠져나갈 때까지//손바닥 속, 이승의 기억을/벽조목 염주처럼 여물어지도록/매만지고 다듬는 것이/나의 마지막, 자연스러운 일이다//붕어빵 한 봉지의 뼛가루로/산의 풀숲에 뿌려지는 것도/자연스러운 마무리이다//보이저호가 헬리오포즈를 벗어나듯/우주여행을 떠나는 것은/자연스러운 버킷리스트이다” (「자연스러운 일」 부분)
매미가 허물 벗듯 몸을 버리고 기파가 되어 우주로 날아가자는 것이다.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 더 광활한 우주를 항해하듯이 날아가 우주와 한 몸이 되는 것도 뼛가루가 풀숲에 뿌려져 풀과 나무와 흙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란 것이다.
위 대목에도 ‘벌거숭이 천문의 시냅스’ 등 아주 선명한 메디컬 이미지가 드러난다. 나뭇가지처럼 퍼져있는 신경조직의 연결부가 이제 ‘천문’, 하늘과 우주에 연결돼 있다. ‘벌거숭이’처럼 갓 태어난 생생함으로. 죽음은 이제 우주와 연결된 신생이라는 영성이 깔린 이미지다. 그러면서도 ‘이승의 기억’은 날려버리지 않고 여물게 하고 있다. 그래 우주로의 여행, 김 시인의 우주시편들은 끈 떨어진 연처럼 일탈해 허황하지 않고 이승의 전 체험과 교양에 바탕하고 있어 치밀하고 튼실하게 읽힌다.
“알을 깨고 나온 누에의 몸털처럼/갓 우화한 어린 날개의 깃털처럼//대숲을 빠져나온 바람처럼 자유롭게/한바탕 울음을 쏟은 구름처럼 홀가분하게//별들의 소리가 선명해지는/자정의 몽유처럼/꿈꾸며 노닐자//육신의 틀을 벗은 혼령처럼/입자의 틀을 벗은 파동처럼/시공의 틀을 벋은 양자처럼//달을 품은 백학의 날개처럼/춤추며 노닐자.” (「소요유(逍遙遊)」 전문)
장자의 ‘소요유’라는 글 제목을 그대로 제목으로 쓰고 있는 시다. 거닐 소(逍), 멀 요(遙), 놀 유(遊)라는 글자처럼 아무 뜻 없이 노닐 듯 거닐면 눈곱만큼 작은 물고기도 하늘을 덮을 만큼 큰 새가 되어 시공을 뛰어넘어 날 수 있다는 것을 장자는 이야기했다. 온몸으로 삼라만상과 교감하며 걸으면 나와 너와 자연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교와 최첨단과학인 양자물리학에 바탕해 자연서정시에서 우주서정시로 우화(羽化)하고 있는 시다. ‘한바탕 울음을 쏟은 구름처럼 홀가분하게’에 잘 드러나듯 시인은 삼라만상과 일체가 되고 있다. 그 일체감을 적확한 이미지와 비유로 쉽게 쉽게 형상화하고 있어 소통력도 높다.
“새들의 깃털과/물고기들의 살과/짐승들의 뼈,/그것들의 반죽인 것이라//그 한 움큼/쇠똥구리가 한나절/굴리고 가는 찐득찐득한/살가루 흙 주먹밥 아닌가” (「흙」 부분)
쇠똥구리가 굴리는 흙에서 만물은 하나임을 보고 있는 대목이다. 날짐승과 물짐승, 들짐승들의 몸도 흙으로 돌아간다. 물론 천고의 바위도, 우리 몸도 부서져 흙이 될 것이고. 쇠똥구리는 그런 흙을 뭉쳐 밥으로 삼는다. 우주 삼라만상은 그렇게 한 몸의 유기체로 돌고 도는 것이란 것을 쉽고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시인이 지(知), 정(情), 의(意) 그 어느 것 하나로써 시를 논단한다면 새로운 생명을 기르는 협동의 조화에 지장이 생겨 결국 불구의 시를 사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향수하고 양육하는 시인의 기관과 작용은 어느 하나만이 아니요, 생명 전체가 통히 하나로 된 통일감각으로 체득할 것이란 말이다. 이를 ‘우주관(宇宙官)’이라 하고, 그 작용을 ‘우주감능(宇宙感能)’이라 부를 수 있겠다. 우주관은 눈, 귀, 입, 혀, 몸, 마음 그 어느 것 하나만이 아니요, 그것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니 이들이 한 덩이로 통일되어 그 본래의 분담기능이 교호작용을 낳는 것이다.”
조지훈 시인이 전통 서정시학을 최초로 현대시학으로 완성한 역저 『시의 원리』에서 동양사상의 유기론을 토대로 본격적인 시론을 펼치고 있는 대목이다. ‘우주관’과 ‘우주감능’의 유기론은 상징주의를 선언한 보들레르의 ‘만물조응(萬物照應 Correspondence)' 을 떠올리게 한다. 너와 나, 주체와 객체, 부분과 전체 구분 없이 만물은 하나로 같다는 것이 유기론의 바탕이다.
동양 최고의 고전 『역경易經』은 '온갖 만물이 느끼고 교류하며 통한다'는 전제 위에 64괘의 만물의 생장변화상이 펼쳐진다. 조지훈의 ‘우주관’은 이런 주역의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우주관이 위 시 대목에는 흙으로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대관령의 황태처럼 몸통을 말릴 것이다/원대리의 자작나무처럼 뼈를 말릴 것이다/까치밥으로 매달린 단감처럼 심장을 말릴 것이다/바위틈 사이 호두처럼 골수를 말릴 것이다//눈물, 산정의 마코르 속눈썹 사이로/붉은 피톨, 숭숭한 골다공 사이로/꿈결, 앙상한 가지돌기 사이로//빠져나가/흰 구름 위로 날아갈 것이다//탈육한 흰나비 떼들,/바람의 결을 타고/어디 아득한 허공 저편//별들의 굴속에 홀씨로 묻히려나.” (「풍장」 부분)
앞서 살핀 시 「흙」이 삼라만상이 돌아가 하나로 뭉친 흙을 말했다면 위 시는 구름 위를 날아 별, 우주로 돌아갈 것을 말하고 있다. 두 시 모두 만물은 하나로 같다는 유기론에 입각하고 있다. 직유 ‘-처럼’으로 우리 오장육부와 만물을 이미지로 같이 연결하다 차츰 한 몸으로 돼가고 있다. 이같은 시인의 ‘우주시’는 유기론을 넘어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핏줄을 흘러내리고 있는 풍류도(風流道)에 연결된다.
우주 만물과 교감하며 서로 몸 바꿔 살려내고 사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도가 풍류다. 서정주 시인은 풍류도의 근간을 우주 전체를 등급 없이 유기적 관련체로 자각해 사는 우주관과 순간순간을 등급 없이 영원으로 사는 시간관으로 보며 시를 썼다. 이런 서정주의 풍류관과 시는 서정시학의 양대 근간인 동일성의 시학과 순간성의 시학과 일치해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리며 서정의 원류로 흐르고 있다.
김세영 시인의 『별빛의 화법』은 서정주 시인의 풍류시학, 그리고 조지훈 시인의 유기적 시론 등의 접화군생의 ‘기氣’를 우주로 확산시키고 있다. 의학과 물리학과 천체학 등 현대 첨단 이론과 우리 전통 사상에 입각해 치밀하고 생생한 이미지의 우주적 서정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 우주시로 세계에 두루 통하고 각광받는 K-포엠 시대 열어젖히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