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佛國寺)
박목월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 안개
물 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 소리
(시집 『산도화』, 1955)
[작품해설]
이 시는 시인의 자연 친화 사상과 불교적 선(禪)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달빛 내려 비치는 불국사의 고요한 정경을 지극히 절제된 언어와 교묘한 시행의 배열로 그려낸다. 그리하여 「청노루」와 함께 “시는 서술이 아닌 묘사요, 이미지의 제시다.”라는말을 실감하게 한다. 이 시의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은 조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각 시행을 명사구만으로 조직한 통사 구조[6연의 ‘흐는히 / 젖는데’만 예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이 시는 서술적 표현을 배제하고 극단적으로 감각적 이미지의 제시에 치중한다.
흰 달빛 내리는 어느 깊은 가을 밤, 엷은 안개가 드리워진 불국사의 자하문, 범영루의 신비스런 풍경을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이 은은한 미소를 띠며 내려다보고 있다. 토함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 소리[송뢰(松籟)]기 무거운 적막을 깨뜨린다. 이 시에는 이러한 불국사의 고풍스런 배경과 가을밤의 그윽한 분위기가 이상적으로 조화되어 있다. 이렇게 사진으로는 결코 포착해 낼 수 없는 은은하고 경건한 느낌까지도 이 작품은 짧은 시 형식 속에서 물씬 전해 주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의 교감(交感), 극도의 압축과 생략이 빚어내는 동양화적 여백(餘白)의 미, 그리고 명상적 서정이 듬뿍 밴 이 작품의 이러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속에는 ‘뜬 그림자’와 같은 시인의 무상감(無常感)이 불국사의 밤 안개처럼 짙게 배어 있다.
[작가소개]
박목월(朴木月)
본명 : 박영종(朴泳鍾)
1916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33년 대구 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퉁딱딱 퉁딱딱」이 『어린이』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에 각각 당선
1939년 『문장』에 「길처럼」, 「그것이 연륜이다」, 「산그늘」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46년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조선문필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사무국장 역임
195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1973년 『심상』 발행
197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8년 사망
시집 : 『청록집』(1946), 『산도화』(1955), 『란(蘭)·기타(其他)』(1959), 『산새알 물새알』(1962),
『청담(晴曇)』(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8), 『박목월시선』(1975), 『백일편의 시』
(1975), 『구름에 달가듯이』(1975), 『무순(無順)』(1976), 『크고 부드러운 손』(1978),
『박목월-한국현대시문학대계 18』(1983), 『박목월전집』(1984), 『청노루 맑은 눈』(1984),
『나그네』(1987), 『소금이 빛하는 아침에』(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