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16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의 분별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지혜와 행복
로마시대를 황금기로 이끌었던 5명의 현명한 황제를 오현제라 한다. 이들은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다. 마지막 현자였던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자였다. 그가 쓴 명상록은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서다.
스토아 학파는 제논이 창시한 철학의 한 유파로 그 명칭은 스토아(서양 건축에서 줄지어 선 기둥으로 된 주랑을 의미)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스토아 철학은 혼란에서 벗어나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 수단이 지혜이다. 스토아 학파가 말하는 지혜란 이성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여 자신의 한계를 긋는 냉철함에서 시작된다.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에픽테토스는 “세상사에는 내가 통제하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에 속하는 것이 있고, 내 권한에 속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은 나의 생각과 충동, 욕망, 혐오 등이며, 내 권한에 속하지 않는 것은 재산, 명예, 직위 등이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가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여 그 지점으로부터 나를 출발시키는 것뿐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집중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한다. 이 둘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 이성의 힘이자, 지혜이다" 라고 말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 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이 구절은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의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인데, 이 이 유명한 기도문도 사실 에픽테토스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혼란과 어려움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서부터 발생한다. 감정이나 욕망을 절제하고 철저하게 이성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만이 스토아 학파가 지향했던 금욕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hatheia)’에 도달할 수 있다. 스토아 학파는 정념(강하게 집착하여 떨어지지 않는 감정)과 잡념을 머리속에서 지우고 금욕적인 생활을 추구했다.
ⓒ아우렐리우스 동상/출처- 나무위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다. 권력자는 항상 고독하다. 그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력을 구걸하는 이들로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가 가장 믿었던 친구가 있었다. 이집트 근방에 국경을 맡겼던 카시우스 장군이었다. 그런데 국경을 지키는 줄 알았던 카시우스가 거기서 ‘황제’임을 선언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그를 배신을 한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러한 배신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그때의 그의 감정은 명상록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절대로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망동을 삼가라. … 중략 … 남이 나를 모욕하더라도 내가 거기에 의미를 두지 않으면 그만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후에 그는 친구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난다. 친구를 만나 왜 그러했냐고 묻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 후에 친구의 이야기가 옳다고 여겨지면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가 카시우스를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 그가 누군가의 칼에 맞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한다. 상처 난 우정을 화해하지 못하고 떠난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아우렐리우스의 엄청난 내공이 아니었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이야기다.
ⓒ글래디에이터 영화 포스터/출처-나무위키
이러한 그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영화 중 하나가 러셀 크로우가 주연했던 글라디에이터이다. 이 영화는 1억달러의 제작비로 4억 6000만불을 벌어들였던 2000년 최고의 흥행작 중에 하나였다.
영화속에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군단장이었던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에게 아들을 대신하여 로마의 집정관이 되어 로마를 공화정으로 되돌려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막시무스는 그러한 제안을 수락할수 없어 일단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 한다. 이 사실을 안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는 자신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에게 분노하여 아버지를 질식시켜 살해하고 만다.
콤모두스는 막시무스에게 아버지는 자연사했고, 내게 충성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콤모두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안 막시무스는 이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비상을 걸려고 한다. 하지만 친구인 근위대장 퀀투스의 배신으로 근위대에 붙잡혀 처형당할 위기일발의 순간에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는 고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고향에서 자신이 목격한 것은 폐허가 된 마을과 목이 매달린 뒤 불에 탄 아들과 아내의 시체뿐이였다.
ⓒ콤모두스의 동상/ 출처- 나무위키
사실 영화속의 줄거리는 실제의 역사와는 매우 다르다. 아우렐리우스는 콤모두스에게 살해된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 오늘날 콤모두스는 로마의 대표적인 폭군인 칼리큘라와 네로보다 더 지독한 폭군으로 평가받지만, 사실의 그의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콤모두스는 천성이 착하고, 훌륭한 황제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 그는 명문의 가문에서 현직 황제와 황후의 적통의 아들로 태어났고, 제대로 된 제왕교육을 받고 즉위한 최초의 로마황제였다. 콤모두스의 누나였던 루킬라는 영화속에서 자신의 동생인 콤모두스를 죽이고 막시무스를 도와 황제로 등극시키려고 했던 인물로 미화되지만, 사실 콤모두스를 망친 인물은 루킬라였다.
권력의 화신이었던 그녀는 아버지가 전쟁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정치무대에서 월권을 행사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키웠고, 아버지가 죽고 2년동안 움크리고 있다가 동생의 권력을 빼앗을 음모를 꾸몄다. 어머니를 일찍 잃어 누나인 루킬라를 어머니처럼 따랐던 동생의 등에 비수를 꽂으려 했던 것이다. 그녀는 다른 여동생들과 그 남편들, 콤모두스의 장인, 내연관계에 있던 애인들과 음모를 꾸며 콤모두스의 암살을 계획했다. 암살은 실패로 끝났지만 콤모두스에게는 지울수 없는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큰 충격을 받은 콤모두스는 며칠을 끙끙 앓았고, 몸이 회복했을때에는 전혀 이전과는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심각한 대인기피증, 알콜의존증, 과대망상증환자가 되어 버렸고, 정신분열증과 편집증, 우울증에 시달렸다. 콤모두스는 사실 잔인함과 악랄한 구석이 별로 없는 황제였다. 하지만 로마시대의 최대의 암군으로 불리는 이유는 측근들에게 나라의 모든 정사를 맡기고, 근위대의 정치개입 등을 크게 키워주어 로마제국을 방치하여 로마를 몰락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콤모두스는 로마를 금의 왕국에서 철과 녹의 왕국으로 전락시켰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능력과 열정이 없다면 나를 대신하고 보완해 줄 인재를 등용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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