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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기도문 총정리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호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
마태복음6:9~1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6:9)"
예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으로
세상에서 가장 바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주기도문을 예배에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가장 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바르게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주기도문을 타종교에서 하는 것 처럼
주문 외우듯이 하면 안됩니다.
어떤 분는 주기도문을 주문 외우듯 1만번을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주문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가장 바르게 기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에 담긴 뜻을 바르게 알아서 능력있는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1."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하나님께로 난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아버지"라는 호칭은 땅의 호칭과 하늘의 호칭이 있습니다.
땅의 호칭은 육으로 낳게 한 육신의 아버지입니다.
하늘의 호칭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께로 난 자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1:12~13)"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양자의 영이 있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은혜를 가집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5)"
2>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두 가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는
아들이 아버지께 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구하는 것을 주시기 원합니다.
아버지는 또한 아들이 합당한 것을 구할 때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두 가지로 주십니다.
한 가지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이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라(마태복음6:8)"
그러므로 아들이 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 것은 아버지께서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능히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들이 구하는 것이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6:31~32)"
다른 한 가지는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안하겠느냐(마태복음7:11)"
과연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구하라 그리하면 주리시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 된 자로 아버지께 주시고자 하는 것을
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아들에게 주시고 싶은 것은
"성령"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여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 구할 것은 성령을
달라고 힘써 기도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성부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성자 하나님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께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게 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임하심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구하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오순절날 모인 곳에 임하셨습니다.
교회시대에 살고 있는 마지막 때 성도는 아버지께
구할 것은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성령의 숫자는 9입니다. 9는 마지막 때 숫자입니다.
1은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9는 하나님의 성령 숫자로 성령의 9가지 은사,
성령의 열매 9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1이라는 하나님께로 나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10(1+0=1)이라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거듭남은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서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정상입니다.
"하늘에게 계신 우리 아버지여"시작한 기도는
마지막 결론의 마무리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
아버지께로 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최종적으로 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23:6)"
3>내 아버지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성전은 내 아버지 집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는 것을 여호와 삼마라 합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은 내 아버지 집으로 기도하는 집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보신 것은
장사하고 돈 바꾸는 자들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진노하시어 성전 청소를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는 집어야 합니다.
"내가 곧 그들을 성상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니라(이사야56:7)"
하나님께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는데
과연 오늘날 외형적으로 크게 지은 대형건물이
기도하는 집으로 보이나요?
오늘날 신자의 가장 큰 게으럼은 도무지 10분도
기도하지 않은 게으럼입니다.
골프는 몇시간을 쳐도 피로하지 않고
게임은 밤새도록 해도 지치지 않고
모여서 수다떠는데는 몇시간을 보내어도
정작 기도하는 골방시간은 10분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보내지만 정작 나와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은 하루종일 찾아봐도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대화단절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계시면서 틈만 나면
아버지와 대화하는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로 동등하시지만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를 높여서 불렀습니다.
2."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첫번째 구할 것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세와 권능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1>첫번째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입니다.
창세기에서 먼저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구약에서 2500회, 여호와(야훼)는 6700회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
엘로(Eloh)+im=엘로힘
엘로는 창조자인데 im이라는 복수 접미사가 붙어
창조자들 또는 하나님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복수 명사 뒤에는 단수동사(is)
가 붙음으로 한분 하나님이 됩니다.
그러므로 삼위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
엘로힘은 삼위하나님을 뜻합니다.
성부 성부 성령의 삼위하나님은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유일신교에서 유일하게 기독교만이 삼위하나님의 핵심교리를
가집니다.
2>두번째 하나님의 이름은 "엘샤다이"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세기17:1)"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라고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I am God Almigthy"(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엘샤다이라 합니다.
엘샤다이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보게 하십니다.
아브람의 나이 99세이고 그의 아내 사래의 나이 89세였습니다.
사래의 나이 89세는 경수가 끓어져 상식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년 이맘 때
아이라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 말씀대로 아브람과 사래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음으로 바라보았더니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그의 아내
90세에 이삭이라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히브리서11:11)"
전능하신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예수께서 나사로가 다죽어 가니 살려달라고 베다니에서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소식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체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은 줄 알면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노라
나사로를 깨우러 가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로 가시니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살아나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려 강림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나팔 소리같은 큰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나팔소리가 나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는 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죽은 자들에게 생기를 들어가게
하시어 썩지 아니할 것을 살게 하십니다.
아주 오래된 마른 뼈라도 심지어 뼈가루가 흩어져
바람에 날리어도 하나님 성령님이 생기로 들어가게
하시면 죽은 자가 살아나게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샤다이)께서 없는 것을 있게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보게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3>세번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야훼)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한글성경에서 "여호와"
히브리성경에는 야훼, 영어성경에는 THE LORD입니다.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렀던 것은
에노스 때입니다.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이 가인과 그 제물이
열납되지않았습니다.
아벨과 그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었습니다.
분한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니 셋을 낳았습니다.
셋이 아들을 낳으니 에노스라 하였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다가
산 호렙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를 야훼라고 합니다.
한글성경은 여호와, 히브리성경에는 야훼라 합니다.
"스스로 있는 자"는 "나는 나다(I AM WHO I AM)"입니다.
여호와는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래도 계시사
완전하고 무궁한 생명입니다.
전에고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래도 계시사
장차 오실이는예수님입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르쳐 주시어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우리에게 주신 참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입니다.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이름은
오직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오셔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마지막 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이룹니다.
삼위하나님의 그 역할은 성부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성자하나님은 은혜입니다.
성령하나님은 감동과 내제하심과 감화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부하나님의 사랑과 성령하나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전13:13)"
예수님의 구원은 율법이 아닌 은혜입니다.
모세는 율법으로 죄를 묻는 것이고 예수님의 은혜는
죄사함과 구속과 용서와 사랑을 이루는 구원입니다.
인자의 임함은 노아의 때아 같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세기6:8)"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어떤이름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성부하나님이 보내신 성자 하나님 예수 이름을
증거하십니다.
마지막 때 결코 속지 말아야 할 것은 종교다원주의자들의
미혹입니다.
종교다원주의 영은 예수 이름을 배반하게 합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을 심어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영을 좇아 배도하게 합니다.
주기도문의 첫번째의 기도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예수 이름은 거룩합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긴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님입니다.
성령으로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이름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합니다.
삼위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합니다.
엘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이름은 거룩합니다.
대대로 기억할 하나님의 이름은 구약에서 야훼(여호와)
신약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이름은 천지 있는 이름 중 가장 거룩한 이름입니다. 아멘.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기도문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가장 바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앞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를 깊이 있게 말씀드렸습니다.
양자의 영이 우리 속에 있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양자의 영이 있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은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엘샤다이입니다.
엘샤다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며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부릅니다.
여호와를 "야훼"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나는 나다(I AM WHO I AM)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란 "야웨(여호와)"라고 부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십니다.
야웨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영원토록
계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번 시간에 은혜 받을 가르침은 "나라이 임하옵시며"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 나라와 천국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 개념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천국은 장소의 개념의 하늘나라입니다.
천국을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라 너희 속에 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천국이라는 장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비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는 내 아버지 집입니다.
내 아버지 집은 거할 곳이 많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먼저 구할 것은 예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의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6:33)"
나라는 세상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세상 임금 마귀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상나라는 범죄와 저주와 육체의 일을 도모하게 합니다.
세상 나라에 속하면 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하여 염려합니다.
세상 나라는 이방인들을 위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들은
육체의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세상 나라의 세계 역사는 반복하여 멸망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세계를 정복할려고 하였던 제국들은 한 역사 속의 경점에 불과하였습니다.
세상 나라가 큰 신상을 보는 것이었지만 무너져 티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찬란했던 제국들은 멸망당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이 지금은 없습니다.
몽고가 세계를 지배할려고 세상 온 땅을 차지할려고 하였으나 지금의
몽고는 어떻습니까?
세상 나라는 인종이 있고, 분쟁이 있고 땅의 경계선이 있고 대륙간의 갈등도 있습니다.
세상 나라에 속한 사람은 현실적인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자는 세상나라의 행한대로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수도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수도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 뿐이라(요한계시록21:27)"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1>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는 것이고 사람의 뜻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견고한 성을 쌓고 지킬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하나님께서 그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편127편1절)"
여리고성은 여리고 사람들이 견고하게 쌓은 성입니다.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굳게 닫히고
출입할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호수아6:1)"
마귀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대적자입니다.
마귀의 세력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팔소리가 나매 크게 외치니
여리고성은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2>하나님께서 정한 뜻을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숨기지 않으십니다.
땅에 것만 생각하여 행하는 것은 죄를 짓게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자는 사망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신 것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세기18:17)"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을 행하기 전에 아브라함에 말씀하시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하신 하나님이 뜻을 알리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할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창세기18:18~19)"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정하신 뜻을 알리어 뜻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두번째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기로 작정하신
것을 아브라함에게 알리셨습니다.
"여호와게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이제 내가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세기18:20~21)"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더이상 두고 볼수 없이 심판을 내릴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 위하여 두명의 천사와 함께
내려 오셨습니다.
죄악이 관영하고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을 때는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흩어짐을 면할려고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바벨탑을 더이상 짓지 못하도록 하늘에서 내려 가셨습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 듣지 못하게 하시고(창세기11:7)"
여기서 우리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강림은 믿는 자에게는 믿음의 의를 이루시는 구원입니다.
믿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뜻이 상천하지에 성취
1>강림하심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뜻을 정하시고 땅에서 이루실려고 강림하십니다.
강림이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옴입니다.
예수께서 하늘을 좇아 강림하신다 하여 공중강림이라 합니다.
예수께서 하늘을 좇아 지상으로 내려오시는 것을 지상재림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7년 환난 전의 공중강림과 7년 환난이 끝날 때
지상재림이 있습니다.
성령강림의 약속
성령께서 하늘에서 지상으로 임하시는 것을 성령강림이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사도행전1:4~5)"
그러므로 성령강림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힘써 기도하는 자들에게 성령이
오순절 날에 임하시어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여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모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사도행전2:2~3)"
예수님의 재림은 공중강림과 지상재림으로 구분합니다.
성경말씀에는 공중강림과 지상재림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일곱교회시대--공중강림(휴거)--7년 환난 --지상재림--천년왕국--백보좌심판--천국과 지옥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은 7년 환난과 1000년 왕국이 없습니다.
7년 환난(전3년 반과 후 3년 반)과 1000년 왕국이 없어
요한계시록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요한계시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상징으로 보면 종말론적인 계시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횡설수설, 동문서답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숫자 그대로 해석하고 알면 종말론적 신앙으로
예비하는 자가 됩니다.
전천년설은 세대주의로 해석하고 아는 지식을 가짐으로
예비하는 자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공중강림의 휴거가 일어나고
지상재림으로 천년왕국을 구할 수 있습니다.
2>마귀를 멸하심
마귀는 타락하기 전에 그룹에 속한 천사장이었습니다.
음악을 맡은 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천사장이 마음에 교만을 품었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마귀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하늘에서 쫓겨 난 자입니다.
마귀는 하늘에서 자기의 뜻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의 교만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다가 하나님께 들켜서 결국
하늘에서 쫓겨나 번개 같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나서 공중권세 잡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하늘에 영적전쟁이 있어 군대 천사장 미가엘에게 패하여
하늘에서 내어 쫓기니 하늘에서 있을 곳을 얻지 못하여
땅으로 내어 쫓기니 온 천하를 꾀는 것이었습니다.
타락한 천사장 루시퍼를 따르는 타락한 천사들 삼분지 일이 함께 내어 쫓겼습니다.
이 쫓겨난 타락한 천사들을 귀신들이라 부릅니다.
귀신들은 수가 많고 악합니다.
착한 귀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단은 귀신들을 부리면서 사람 속에 들어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모든
방면에 장악할려고 합니다.
사단과 마귀들과 귀신들의 적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야고보서4:7)"입니다.
믿는 자들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는 자가 됩시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며 쫓아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단을 만나면 이단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강력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이단은 귀신의 가르침을 받는 자로 귀신의 영이 그 안에 있어
예수 이름으로 꾸짖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려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지상재림하시면 마귀를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두게 하십니다.
마귀의 삼위일체는 짐승, 거짓선지자, 사단입니다.
뉴월드오더로 세계단일 지도자가 짐승이라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재림은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사단을 붙잡습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고(요한계시록19:20)"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요한계시록20:2~3)"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최종적으로 있어야 할 곳은 불과 유황 못입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부로가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니(요한계시록20:10)"
3.성도의 기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전적으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였습니다.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22:42)"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반복하여 땀이 피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한 것은
아버지의 원대로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것을 예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셨고 또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천국은 하늘에 있습니다.
세상은 땅에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의 정욕대로 살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날 동안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7:2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 뜻을 행하러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애굽기16:4)"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출애굽기 16장의 만나에
관한 말씀입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입니다.
만나는 아침에 여호와의 영광으로 하늘에서 내려 날마다 거두는
양식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 예수님입니다.
산 떡을 먹는 자는 영생합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 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한복음6:51)"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날 까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실제적인 떡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산 떡으로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으로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영혼을 깨우는 새벽 - 저녁이 되며 아침이 온다
밤이 깊을수록 아침이 옵니다.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옵니다.
거룩한 성도의 첫시간은 새벽입니다.
성도는 아침형입니다.
일반 사람들보다 빠른 시간을 가지는 것은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벽을 깨우십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57:8)"
하나님의 영광이 새벽을 깨웁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새벽을 깨우는 것은 빛의 갑옷을 입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로마서13:12)"
저녁이 되어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 경건으로 시작하는
성도는 부지런한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잠을 달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잠들기 전에 기도하고 누워 눈을 감으면서도 주기도문과
기억하는 말씀을 묵상하고 잠드는 성도는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
믿습니다.
"내가 평안히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편4:8)"
2.새벽을 깨우는 기적
아침, 낮, 저녁 시간 중에 만물의 처음의 처음 시작이자 창조의
기적은 아침입니다.
1>아침의 창조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1:3)"
하나님 창조의 완성은 아침입니다.
하나님 창조의 마무리는 항상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라(창세기1:31)"
2>홍해가 갈라진 새벽
하나님은 빛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새벽을 보게 하십니다.
홍해의 갈라짐은 새벽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바다의 새벽을 회복시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서 엎으시었습니다.
밤새도록 갈라진 새벽에 홍해 사이로 마른 땅 같이 되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너갔습니다.
새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가 갈라진 마른 땅을 건너가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들이 시험하여 바다 가운데로 쫓아 들어갔으나
바다로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하나님께서 엎으시어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성도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새벽을 깨운 것은 흑암의 세력을 다 엎어 버리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이사야60:1)"
3>아침에 일어나는 부지런한 순종
성도의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하는 것은 아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번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더니(창세기2:3)"
야곱은 형 에서의 원한으로 쫓기는 자였습니다.
야곱이 부모의 명을 받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는
중에 저녁이 되어 벧엘에 머물렀습니다.
지친 몸에 잠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니 야곱이 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야곱이 아침 일찌기 일어나 새벽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배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세기28:18)"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하여 굳게 닫혀 출입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6일 동안 아침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여리고성을 돌게 하셨습니다.
제 7일에는 새벽에 일어나게 하시고 성을 일곱번 돌게 하시어
나팔소리가 날 때 크게 외치게 하였더니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일곱번 도니
성을 일곱번 돌기는 그 날 뿐이었더라(여호수아6:15)"
성도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 순종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3.일용할 양식 만나
1>만나(출애굽기16:1~36)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아침에 하늘에서 내리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대게 양식을 얻는 것은 땅에서 얻습니다.
땅에서 자란 것을 가지고 양식을 삼습니다.
땅에서 나는 것을 먹는 것은 육체의 양식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은 특별히 택한 백성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애굽기16:4)"
2>만나는 그리스도인의 일용할 영혼의 양식이다
만나는 세상의 양식과 다릅니다.
아침에 하늘에서 내리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이 양식은 아침 일찌기 거두지 못하면 그 날에는 없습니다.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도록
쪼이면 그것이 쓰러졌더라(출애굽기16:21)"
3>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었던 만나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출애굽기16:35)"
광야 40년이라는 뜻은 세상에 사는 동안을 의미합니다.
광야는 세상입니다.
광야는 시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를 정리하면 광야시련입니다.
광야 시련에서 견딜 수 있게 하는 일용할 양식이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입니다.
가나안 지경에 이른다는 것은 천국에 이를때까지 아침에 만나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얻어야 할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이를 때까지 땅에 사는 동안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부지런함과 하늘로부터 오는 만나를 먹는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침에 일어나는 경건의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이른 아침부터 경건한 시간으로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영혼에 두는 것입니다.
만나가 그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는 다음날에 만나가 그쳤습니다.
"그 땅 소산을 먹는 다음 날에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여호수아5:12)"
그러므로 새벽시간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새벽시간을 가지는 그 날에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거두는 것입니다.
새벽에 만나를 거두지 못하면 일용할 양식이 없습니다.
4.새벽의 경건
1>예수께서 아침 일찌기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말씀 교육은 아침 일찌기 성전에서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소유된 백성은 매일 아침 말씀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을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눅21:38)"
모든 백성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이른 아침입니다.
모든 백성이 성전에 모였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성전에서 듣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2>아침기도
모든 기도 시간 중에도 아침 기도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른 새벽부터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에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성도가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기 좋은 시간은 새벽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게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침에 성도가
기도하는 것을 들으십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서 기도하나이다
여호와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이다(시편5:2~3)"
2>주의 말씀은 샛별과 같다
아침에 접하는 말씀은 새벽에 가장 반짝이는 샛별같이
비치는 성령의 감동입니다.
모든 성경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확실한 예언으로 새벽에 접하는 말씀은 날이 새어
샛별이 마음에 떠오른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에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베드로후서1:19)"
5.영적승리
밤이 깊어 어둠을 깨워서 물러가게 하는 시간이 새벽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3일만에 안식후 첫날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람이 깊은 잠에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 새벽입니다.
1>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새벽입니다.
안식후 첫날 여자들이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빈무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새벽에 살아나셨습니다.
예수께서 새벽에 살아나신 후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 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16:9)"
하나님 창조의 날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흑암에서 광명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의 아침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2>베드로의 실패와 성공 (요한복음21:1~6)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시 저녁에 물고기를 잡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요한복음21:3)"
예수님이 안계신 빈자리에서 베드로의 시간은 밤새도록 노력해도
물고기 한마리 잡지 못하는 실패하는 인생입니다.
예수 없는 많은 시간의 밤은 헛된 인생입니다.
인생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물을 던져도 날이 새어 배안을 보면 빈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평생 사는 날로 돌아오는 것은 헛된 것이 됩니다.
날이 새어 갈 때 빈배로 돌아오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빈 배임을 확인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요한복음21:6)"
그물을 육지에 끌어오시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였습니다.
이같이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끓을 수 없는 사랑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너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 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로 기도하므로
하늘에서 내리는 영혼의 양식으로 말씀이 있어 영원히 주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떡은 결코 주리지 않은 영생입니다.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한복음6:57)"
<<기 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창조를 따라서
우리 날의 시작이 이른 아침이 되게 하옵소서.
아침의 경건한 시간을 가져 찬송을 부르게 하시고
말씀을 접하게 하시고 아침부터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아침부터 말씀의 순종함이 되게 하옵소서.
광명한 새벽별이신 예수께서 오실 때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 자로
영원토록 예수님과 함께 살게 하옵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며"
1.용서
1>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었다"는 뜻은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옵시고"라는 뜻입니다.
죄를 졌다는 것은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용서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을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까"
베드로는 관대하게 용서하면 일곱번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질문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뜻밖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 정도의 용서가 최대한 용서라 생각하지만 예수님의
용서는 그 이상의 용서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마18:22)"
70 × 7 = 490
490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한계를 넘어서 한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나 자신이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나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남을 용서할 마음이 없으면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일만달란트 빚 진자를 주인에게 데려 왔습니다.
빚진 자는 주인에게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빚진 자가 갚을 수 있는 대안은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내게 참아 달라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이에 그 종의 주인은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더이상 빚을 갚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탕감 받은 종이 길 가다가 제게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습니다.
그 종이 빚진 자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백데나리온 빚진 자가 참아 달라고 사정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였습니다.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종의 주인은 그를 불러 너는 악한종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너를 불쌍히 여겨 탕감해주었거늘 너도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탕감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노하였습니다.
주인은 그 종에게 빚을 다 갚도록 하였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18:35)"
2>형제 사랑으로 하라
빌레몬서의 내용입니다.
오네시모는 거듭나기 전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빌레몬은 주인이고 오네시모는 종이었습니다.
주인과 종의 신분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범죄하였습니다.
오네시모가 벨레몬의 돈을 훔쳐 멀리 도망갔습니다.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의 돈을 훔쳐 도망간 것은 큰 범죄였습니다.
오네시가 해서는 안될 죄를 저질렀습니다.
오네시모가 멀리 도망 갔으나 로마에서 범죄사실이 드러나 붙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옥에서 나이 많은 바울을 만났습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의 전도를 받고 감동을 받아 거듭난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오네시모가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갇힌 중에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네게 간구하노라(빌레몬서1:10)"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거듭나기 전에는 불의를 행한 자로 무익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바울의 전도로 유익한 자였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다시 빌레몬에게로 돌려 보내면서 바울이 빌레몬에게
특별한 부탁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주고 형제로 받아 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오네시모가 노예로 돈을 훔쳐 달아 났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오네시모는 옛사람이 아닌 새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사랑받는 자로 두라는 바울의 권고입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빌레몬서1:16)"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할 것은 형제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3>원수까지도 사랑하라
예수님의 용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람으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5:44)"
율법은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성령감동은 원수에게도 사랑하게 하십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로마서12:20)"
네덜란드의 코리덴 붐 여사는 유명한 부흥사였습니다.
코리덴붐여사가 큰 집회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코리덴붐 여사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코리덴붐 여사가 인사를 나누다가 얼굴 색이 창백하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과거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자기와 언니를 성폭행 하였던
예전의 독일군 병사가 줄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전의 독일군 병사는 코리덴붐여사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코리덴붐여사는 결코 이 사람을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코리덴붐여사는 순간적으로 하나님께 마음 속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게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내게 주소서"
그 사람이 드디어 코리덴붐에게 섰을 때 코리덴붐은 그 사람의 손을
잡으며 용서를 표시하였습니다.
"주님 안에서 형제님을 사랑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큰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까지도 용서하게 하십니다.
2.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용서의 기도를 드리라
내게 해를 끼치는 자는 원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위대한 가르침은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위하여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5:44)"
예수님의 기도 중에 위대한 기도는 십자가 상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밖은 자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들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껫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누가복음23:34)"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셨다면
원수들은 결코 죄사함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예수님의 용서함의 기도가 없었다면
용서받지 못하여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로마서12:14)"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12:17)"
스데반 집사의 생명을 다하는 기도는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기도였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도 오히려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이 돌로 세게 쳐도 그들을 위하여 죽어가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데도 지켜 보던 자가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원수를 갚아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용서하는 기도를
구하였습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사도행전7:60)"
3.용서할 수 있는 마음
1>성령 충만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다
성령충만은 원수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없는 마음은 좋지 않은 감정입니다.
감정은 미움과 증오심으로 가득찰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원수도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당 청년에게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 청년을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어떤 흑인과 아들이 있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젊은 백인 경찰이 흑인과 흑인 아들을
불태워 죽였습니다.
백인 경찰이 붙잡혀 법정에 섰습니다.
흑인의 아내는 법정에서 사람들이 보는데서 젊은 백인 경찰이
들을 수 있도록 말하였습니다.
"저는 저 젊은 백인 경찰을 양아들로 삼고 싶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젊은 백인 경찰은 너무나 놀라워서 그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마음의 감정은 예수께서 붙잡힐려 하자
원수의 귀를 잘라 피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소리쳐 베드로의 감정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자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26:51~52)"
성령의 충만을 받은 스데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2>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라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라도 빛을 비추십니다.
핍박자라도 용서함으로 위대한 사도되게 하십니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원수입니다.
사울은 잔혹한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용서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사울을 바울되게 하였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이 사도바울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절대긍정의 용서입니다.
핍박자였던 사울이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니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원수를 미워하고 증오심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가득하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감정을 초월하게 하십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13:4~7)"
3>절대 긍정으로 바라보라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절대긍정의 하나님 사랑으로
바라보고 깨닫는 성숙함에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야곱의 아들들이 온 땅의 가뭄으로 말미암아 양식을
구하러 양식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요셉이 가나안 땅을 떠난지 2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17세에 아버지 집을 떠나 요셉의 나이 39세였습니다.
요셉이 형들로 인하여 애굽의 노예로 11년, 강간미수범으로 옥에 갇힌
2년, 30세에 국무총리가 되어 7년의 풍년에, 2년이 지난 흉년에
형들이 양식을 구하여 애굽으로 내려 와 국무총리 요셉에게 엎드렸습니다.
요셉 앞에 엎드린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가해자는 세월이 지나면 잊어버려도 피해자는 세월이 지나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원수입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피해자로 생각하면 형들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갔고
강간 미수범으로 몰려 11년의 고생을 생각하며 당장 형들을
보복할 기회가 왔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감정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였습니다.
요셉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증거는
요셉의 아들 이름에서 엿볼수 있습니다.
요셉은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습니다.
므낫세란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함입니다.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요셉의 이복형들이 자신에게 죽일려고 하였고 노예로 팔아버린 은밀한
일입니다.
이복형들만 알고 있고 아비 야곱마저 이 일에 대하여 모르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 버리는 용서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들을 보니까 형들은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구원을
이루시는 목적으로 보았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자신의 동생임을 알아보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세기45:5)"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과거에 내게 상처를 준 사람마저도 감정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내게 상처를 입혔다 할지라도 나와 너를 구원할려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고백입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아비로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창세기45:8)"
4>하나님의 용서는 또 다시 미워하는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비 야곱이 죽자 요셉을 두려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혹시 요셉이 아비 야곱 때문에 우리를 살려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오히려 요셉의 속에는 자기들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그대로 있을까 염려하였습니다.
형들은 과거 요셉에게 한 짓에 대하여 요셉에게 보복 당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 아니할까 하고
(창세기45:5)"
요셉은 형들이 자기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듭 확인하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감정은 용서해줘야지 하면서 마음 속의 미움과 증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가 되고 더이상 과거에 대한 감정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과거에 대한 감정이 없다는 것을 요셉의 아비가 죽어도
거듭 형들을 안심하게 하였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으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시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
하였더라(창세기50:20~21)"
형들은 요셉의 나이 17세에 요셉을 해하려 하였으나 요셉은 애굽에서
노예, 죄수를 거쳐 국무총리가 된 성숙은 형들의 자녀들까지
양육하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 형들을 안심하게 하였습니다.
4.위대한 하나님의 사랑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도, 악한감정도 , 증오도, 미움도 용서함으로 다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도 친구되게 합니다.
진정으로 정권이 바뀌어 대통령이 되었다면 과게에 집착하여
적폐청산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꿈을 밝히고
온 국민들을 안심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적폐청산한다고 과거의 잘한 것도 재조사하라, 이미 광주 사태의
발포 명령자가 없음을 6번이나 조사하였는데도 재 조사하라고
과거에 집착한다면 새로운 정부의 정권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과거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꿈을 가지게 하고 안심하게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두번이나 속은 것 때문에 야곱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였습니다.
아비 이삭이 죽기만 하면 동생 야곱을 죽일려고 마음에 칼을 갈았습니다.
에서의 마음에는 미움과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에서와 야곱의 어미 리브가의
권고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밤낮 고생하다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부하여 라반의 집을 떠나 다시 고향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20년이 지나도 형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에서는 피해자로 원한을 품었고 야곱은 가해자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정보를 얻어 야곱을 죽일려고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야곱은 형에 대한 두려움으로 밤잠을 이룰 수 없어 홀로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씨름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날이 새어 갈 때에 야곱의 환도뼈가 나갈 정도였습니다.
야곱은 절름발이가 되어도 하나님의 응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불렀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원한을 품었으나 막상 야곱을 보았을 때는 칼을 들어
야곱을 치는 것이 아니라 삽시간에 증오와 미움은 사라지고
동생을 안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기도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에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며" 처럼
에서와 야곱이 화목하니 또한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어 주시는 것은 미움과 증오와 복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심어 주시는 것은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화목케 하는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로마서12:17~18)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시험을 피하면 또 다른 시험이 있습니다.
사는 날 동안에 시험은 항상 있습니다.
여기서 시험에 들면 배신이요 패배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을려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태복음26:41)"
시험에 드는 것은 죄악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기를 간절히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는 주기도문에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세상에서 가장 바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험에는 크게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귀가 주는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순종하여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시험은 시험에 들게 할려는 의도입니다.
1.하나님이 주시는 시험
1>하나님은 시험하신다.
하나님이 주시는시험은 신앙의 정도에서
타락하지 않게 정신을 차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믿음에서 굳게 설 수 있도록 도우시고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 사랑을 우선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창세기22:1~19)
아브라함은 전무후무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니(청세기22:1)"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의 시험이 없으면 믿음의 발전이 없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회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통하여 자기를 돌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믿음으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아들이겠습니까!
이삭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기 전 아브라함은 75세부터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볼 수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로마서4:17~18)"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나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바라봄이 이삭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22:2)"
아브라함이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일까요?
이삭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혈육이냐 영이냐의 문제가 주어진 시험입니다.
이삭을 낳기 전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영에 속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혈육에 있어 아들에게 치우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으나 실족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실족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심으로 회심하여 믿음을 회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회복된 믿음은 하나님의 예비된 축복이 있는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사랑하는 우선이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삼일 길을 행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 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삭을 능히 번제로 드릴 수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릴 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
이삭을 묶어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을 높이 들어 이삭을 향하니
위로부터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까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22: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보였습니다.
2>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시험하십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일하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십일조를 통하여 하늘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십일조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3:10)"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합니다.
십일조는 하늘문을 열어 하늘의 복을 부어주십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십일조는 양심의 복을 가집니다.
믿음은 사람의 양심을 정직하게 합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것은 도덕질하는 죄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라기3:8)"
3>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다 하여도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시험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결코 마귀가 하라는대로 순종하지 않으십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 할 때에 예수님은 성경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능히 물리치셨습니다.
타락한 피조물이 어찌 창조주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겠습니까?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데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명령하였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명령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신명기 6장 16절 말씀을 가지고 능히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신명기6:16)"
신령한 하나님의 사람은 육신에 속한 자로부터 시험받지 않습니다.
아람 장관 라아만은 문둥병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 내려가 몸을 일곱번
씻었더니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라아만이 보답으로 엘리사에게 감사의 표시를 할려고 하였으나
엘리사는 거절하였습니다.
라아만이 아람으로 돌아갈 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달려가서
엘리사가 심부름 보낸 것 처럼 위장하여
라아만에게 은 두달란트와 옷 두벌을 얻었습니다.
게하시는 엘리사 몰래 라아만에게 받은 은 두달란트와 옷 두벌을
집에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게하시가 엘리사 앞에 아닌척하여도
엘리사는 게하시를 꾸짖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열왕기하5장26절)"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할 때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신령하여 영에 속한 자는 육신에 속한 자의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자는 육신에 속한 자를 속일지라도 영에 속한
사람을 속일 수 없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죽기까지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죽기까지 매달리셨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 내려 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마27:39~40)"
이미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는 귕장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따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날이 새기까지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서 얼굴을 따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26:39)"
2."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1>시험에 든 것을 말씀으로 회복하라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기 전에 베드로에게 경고하였습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같이 올라갔으나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졸고 있었습니다.
날이 새어 예수께서 잡히지 베드로는 도망을 가고 사람들 앞에서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는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예수님의 말씀이 옳았던 것을
알고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비록 시험에 들었으나 돌이키어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기도와 말씀입니다.
말씀은 시험에 든 것을 회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중보기도는 말씀으로 돌이킬 수 있는 회복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22:32)"
2>예수께서 시험에 들지 않은 방법으로 깨어 기도하라 하셨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태복음26:41)"
마귀가 시험에 들게 하는 첫번째 공격대상은 육체이다.
마귀가 육체를 미혹하게 함으로 영혼을 점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우리의 육신을 기도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육체를 하나님께 엎드리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육체를 이용하여 선악과를 먹게 하였습니다.
기도는 영혼을 깨웁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면 모든 육체의 시험을 벗어나 근신하고
절제할 수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면 근신하여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힘써 깨어 마음을 같이 기도하면 성령을 받습니다.
깨어 기도하여 성령으로 채우면 육체의 어떤 위협도 겁나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사도행전4:19~20)"
3>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악을 행하게 하는 자는 악한영이 그 속에 있습니다.
악한 자를 조정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악한 영을 능히 물리치기 위하여 말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날렵하고 민첩하게 싸우는 능력은
모든 기도와 간구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엡6:18~19)"
70이레 중 마지막 때 한 이레가 남았습니다.
한 이레가 7년 환란입니다.
7년 환란은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7년 환란은 악이 지배하는 가장 최악의 세상입니다.
7년 환난의 악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늘로 올라가 하늘 밀실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년 환난이 지나가기까지 하늘밀실 7년 혼인잔치에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나라 천년왕국을 구하는 자가 됩시다.
7년 환난이 지나가기까지 휴거되기를 구하자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기도가 바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