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마구 슬퍼해야 할 일들이 펼쳐지는데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드는 이상한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이 좋은 영화를 오는 30일까지만 볼 수 있다고 공지하고 있어서다.
미국 작가 카우이 하트 헤밍스의 소설 원작을 알렉산더 페인이 연출하고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코미디 영화 '디센던트'(2011)가 여러분이 꼭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화다.
모터보트를 고속으로 몰며 환호작약, 어쩌면 오르가즘을 느끼는 듯한 여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이어 낭랑한 클루니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미국 본토에 사는 친구들은 내가 하와이에 사니까 하루하루가 바캉스라고 생각한다. 하와이에 살면 인생을 즐기기만 한다고? 어째서 우리 가족 문제는 덜 심각하고 암에 걸려도 덜 아프고, 상처도 덜 입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난 서핑을 안한 지 15년이 됐고, 지난 23일 동안 링거 주사, 삽관 튜브와 오줌통 뿐인 낙원에 살고 있다. 낙원?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맷 킹(클루니)은 호놀룰루에 사는 부동산 전문 변호사다. 일에 바빠 가족에 소홀했을 뿐인데(?) 앞의 모터보트를 몰다 퉁겨나와 머리를 크게 다쳐 코마 상태에 빠져든 부인 엘리자베스의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해야 하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는다. 둘째 딸 스코티(아마라 밀러)는 친구들 괴롭히면서 관심을 끌며 아빠한테도 가운뎃손가락 욕을 해댄다. 아빠는 어쩔줄 몰라 한다. 아내와 사이가 나빠져 일년 학비가 3만 5000달러나 드는 기숙학교에 다니는 큰딸 알렉스(셰일린 우들리)를 데리러 비행기 타고 갔는데 딸은 술에 절어 지낸다. 아빠 보고 '법규' 한다.
아내와 대화 다운 대화를 해본 것은 몇달 전의 일이었다. 장인은 사위가 돈많은 집안 후손인데도 돈을 아끼느라 딸에게 좋은 모터보트를 사주지 않아 딸이 죽게 됐다고 대놓고 사위 탓을 한다. 알렉스는 아빠가 생전 처음 보는 남자친구 시드와 함께 가지 않으면 아빠 화나는 일을 일부러 더 하겠다고 협박해 시드도 동행했다. 장인은 시드가 헛소리를 지껄인다며 주먹을 날려 시드는 눈에 멍이 든다. 장모는 치매다. 처남은 짠돌이 자형 때문에 누나가 죽는다고 드잡이도 서슴치 않는다.
킹 집안은 하와이 왕국의 초대 왕인 카메하메하 1세의 피가 섞였다. 맷의 고조할머니는 그 가문 공주였는데 백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이었던 금융인 에드워드 킹과 결혼했다. 둘은 하와이 여기저기 많은 땅을 사들였고, 후손들은 그 땅이 개발돼 큰 돈을 만졌지만 대다수는 흥청망청 써버려 돈이 궁한 처지다. 그런 사촌들을 보면서 맷은 변호사 수입으로만 생계를 꾸리고 물려받은 재산은 축내지 않았다.
이제 이 집안에 마지막 남은 땅은 1860년대부터 내려오는, 카우아이 섬에 있는 2만 5000에이커 크기다. 영화 중반에 나오는데 정말 풍광이 좋은 곳이다. 빈 땅을 놀려 놓기만 하면 안 된다는 토지법에 따라 7년 안에 그 땅을 개발해야 하는데 맷의 사촌들은 호텔, 골프장, 콘도, 쇼핑몰 등을 짓겠다는 회사에 팔고 싶어 한다. 사촌들도 결정권이 있지만, 가장 큰 몫은 맷의 선택이었다. 맷은 엿새 뒤에 친척들의 투표로 결정하겠다고 통보한 상태였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하와이 주민들은 맷이 그 땅을 리조트 개발업자나 부동산업자에게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 길 가다가 마주쳐도 그런 얘기를 건넨다.
아빠는 알렉스에게 엄마가 곧 죽는다고 어렵사리 얘기를 꺼냈더니 알렉스는 엄마가 딴 남자와 바람피우는 것을 봤다고 한다. 어렵지 않게 상간남의 신원도 알아냈는데 두 아들을 아내와 키우는 유부남이었다.
그 뒤 얽히고 설킨 실타래는 상당히 흥미롭게 진행된다. 영화 앞부분, 맷이 알렉스를 데리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섬들과 바다를 내려다보며 독백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가족은 일종의 군도 같은 것이다. 한 개체를 이루지만 각자 분리된 섬들이다. 그리고 서로로부터 점차 멀어진다.' 요즘 절실하게 비슷한 상념에 젖었던 터라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신기했다.
지지리 궁상 싸우기만 해대던 맷과 두 딸은 아내와 엄마의 죽음 앞에서 서로를 더 깊이 보듬게 된다. 용서? 구원? 땅은 어떻게 됐을까? 영화 제목에 암시돼 있다.
엘리자베스의 유해를 바다에 뿌리는 전통 장례를 치른 뒤 집에 돌아와 셋이 소파에 앉아 뭔가를 나눠 먹으며 펭귄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데 이 장면이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모양이다. 셋이 덮은 이불은 엘리자베스가 병상에서 덮고 있던 것이다. 결국 영화는 소중한 아이들, 후손들에게 진정 물려줘야 할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원작 소설은 2014년 한글 번역본이 나와 있다. 나무위키에 '디센던트'를 검색하면 원작과 다른 점을 상세히 정리해놓았다. 원작자 헤밍스가 맷의 비서로 잠깐 얼굴을 비친다고 해서 돌려 봤다. 나는 이름만 보고 남자려니 했는데 여성이었다. 또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입만 떡 벌리고 누워, 영화를 끌어가는 기둥 역할을 하는 엘리자베스를 연기한 여배우가 궁금한데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영화는 아카데미상 다섯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클루니는 당연히 남우주연상에 추천됐는데 수상하지 못했다. 대신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감독으로 직접 각본을 매만진 페인은 각색상을 공동 수상했다. 보스턴 글로브는 "올해 이만큼 사람을 울리고 웃긴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평을 남겼다. '바튼 아카데미'(2024), ' 다운사이징'(2018)과 '네브레스카'(2013), '사랑해 파리'(2007), '사이드웨이'(2005), '어바웃 슈미트'(2003) 등을 내놓은 페인 감독의 외모가 클루니 뺨칠 만하다는 점을 적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을 모두 챙겨봐야겠다.
아 참, 그리고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하와이 전통 노래들. 이 영화가 아니면 이렇게 한 자리에서 마음껏 즐기지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