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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 잔혹한 탄생과 피의 복수, 칭기즈칸 대동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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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 잔혹한 탄생과 피의 복수, 칭기즈칸 대동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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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과 몽골,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은 나라의 초원에 있는 칭기즈칸[Chingiz Khan]대 동상을 유랑자가 찾아
간다. ‘칭기즈칸’ 본명은 테무친이다. 본래 초원의 작은 씨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죽을 고
비를 넘기며 성장해서는 몽골 제국을 통일하고 칭기즈칸[하늘의 아들]이란 칭호를 받아 몽골 제국의 초대 왕이 되
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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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중앙아시아를 평정하는 한편, 서양 정벌로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 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
토를 정복한 정복자로. 13세기 인류문화를 송두리째 바꾼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이 그
러하긴 했겠지만 아무튼 칭기즈칸은 그 당시 고작 10만 명도 안 되는 기병으로 어마어마한 영토를 정복한 세계사
에 남아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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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모르는 시골 촌떼기 테무친에서 칭기즈칸으로 추대되면서 몽골 대제국의 대 역사는 시작된다. 난세에 영웅
이 난다는 말을 실감 하면서 유랑자는 칭기즈칸의 대 ‘동상’ 앞에 섰다. 몽골에서는 왕을 칸이라 했다. 칭기즈칸의
이름엔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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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은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진 ‘태양‘을 뜻하는 것이고 ’기즈‘ 최고의 인물 ’왕‘이란 뜻의 칸을 합친, ’칭기즈칸‘은 강
력한 힘을 가진 군주’라는 뜻이다. 즉 태양의 군주 왕이란 뜻답게 거대한 동상으로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칭기즈칸 기마상이 있는 광장으로 들어가려고 보니 승리의 개선문 같은 정문이 앞을 가로 막는다. 정문의 전
체적인 윤곽은 파리의 개선문 같이 생겼고 얼핏 보면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같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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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문 위에는 9마리나 되는 군마들이 각각 부족들의 기를 들고 명령만 떨어지면 곧바로 출정하려는 듯이 산 능
성 이를 바라보고 서 있다. 이 문을 지나면 곧바로 동상이 있는 광장이다. 천진벌덕 지역의 푸른 초원에 말없이 자
신이 태어났던 고향을 주시하며 덩그러니 서 있는 은빛 기마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氣蓋勢[기개세]가 늠름하면서
도 상당한 위압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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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굳이 이렇게 까지…….ㅠㅠ 아무튼 세계에서 가장 큰 기마상
이고 말의 형상을 한 조형물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는 칭기즈칸 대 동상은 모두가 기네스
북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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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가 만들었다는 칭기즈칸의 기마용 가죽 장화인 고탈(Gutal)인데 폭 2m, 길이 5m, 높이 9m의에 이르
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장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칭기즈칸 동상 아래에 있기 때문에 칭기즈칸 동상의
실제 발 크기에 맞춰 만들어졌는데, 이 가죽장화에 소 120여 마리의 가죽이 사용되었고 장화 내부를 채우는 시멘
트가 7톤이 들어갔을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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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높이만도 무려 40m인 데다가 기마상 아래의 칭기즈칸 기념관 높이까지 합치면 총 높이가 50m, 아파트 18층
높이나 된다고 하니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이곳 천진벌덕 지역에 기마상이 건립되게 된 이유는 1179년에 칭
기즈칸이 큰 전투를 마치고 이 초원을 거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로 이곳에서 황금채찍을 발견했다는 기념으
로 이곳에 동상을 건립하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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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는 말채찍을 주으면 행운을 불러다 준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칭기즈칸은 일반 말채찍이 아닌
황금 말채찍을 주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 행운이 칭기즈칸으로 하여금 세계를 정복하는 행운을 가져다주었고 또
한 48명의 세계 부인들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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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예수 게이가 전투에서 적 부족장 죽이고 기념으로 적 부족장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테무친]으로 지었
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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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몽골에서는 남자들이 반드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세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채찍, 젓가락, 코담배다. 채찍은
가축을 타고 이동할 때 필요하고, 젓가락은 남의 집 방문 시 사용하고, 코담배는 새로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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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말을 키우는 몽골에서는 남자들이 말을 조련하는 채찍을 줍는 것을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다가 채찍
도 그냥 일반 채찍이 아니고 황금채찍을 주웠으니 그 행운으로 칭기즈칸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세계를 정복한 것
은 아무래도 그 황금 말채찍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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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기즈칸이 이곳에서 주웠다는 그 행운의 황금 말 채찍을 허리츰에 차고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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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대 동상은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약 1시간10[54km]여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지점에 있다. 2006년 몽
골제국 800주년 기념으로 몽골의 3대 대통령인 남바링 엥흐바야르 시절 재벌인 젠코(Genco)기업이 410만 달러
를 투자하여 건립을 시작해서 2010년에 완공된 최근의 건물로 250톤의 스테인레스강이 사용된 대 동상이다. 젠
코(Genco)는 1997년 3월 3일에 설립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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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몽골 정부에서는 앞으로 칭기즈칸 동상 주위에 몽골 민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총 6구역의 테마파크형 게
르 캠프, 즉 복합관광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백 개의 게르가 들어서는 초대형 게르 캠프가 완성되고,
이곳에 총 1만 개의 기병 동상이 세워지면 칸의 기마상 주변에 일대 장관이 펼쳐질 것으로 추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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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하늘에 구름은 낮게 떠 있고 초원 주변 풍광도 一望無際[일망무제]로 탁 트여서 시원
시원하게 보인다. 저 초원은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누볐던 대 초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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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대형 동상을 건립하게 된 배경에는 21세기를 앞둔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가 지난 천 년 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밀레니엄 히어로'로 바로 칭기즈칸을 선정했는데, 이때
이후로 전 세계적인 칭기즈칸 붐이 일어났고, 이 영예로운 수상이 결국 칭기즈칸 기마상의 건립 배경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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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이 몽골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은 그만큼 몽골에서의 칭기즈칸에 대한 敬畏心[경외심]이 크고 이러한 몽골
인 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칭기즈칸 기마상 건립이 수익성이 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아무튼 칭기
즈칸 기마상은 정문 안쪽 광활한 초원의 낮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고 기마상까지 낮고 긴 100여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기마상이 있는 1층까지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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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마상에 오르기 위해 12.000원 정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현지인들은 입장료 한화 4.000원 정도로
저렴하고 외국인들은 현지인들의 3배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1층부터는 기마상이고 지하엔
사설 칭기즈칸 박물관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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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내부에 들어서면 1층 정면으로 테무친을 비롯한 역대 35명 칸의 초상화 걸려 있다. 그 옆에 젊은 작가가 만
들었다는 폭 2m, 길이 5m, 높이 9m의 초대형 몽골 전통 고탈[가죽신발]이 전시되어 있다. 어떻게 저런 신발을 만
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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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몽골어로 '칭기스(Чингис)'는 위대하다를 뜻한다. 어원에 대해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데, 라시드 앗 딘은
'칭'의 의미는 단단하고 강하다는 뜻이며 세계의 군주라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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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장화 때문에 1층 층높이를 10m로 건축된 것일까? 칭기즈칸의 가죽 장화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장화로 기
네스북에 올라 있다니 나 원~ 참 벨게~다 ........칭기즈칸 동상 아래에 있는 장화이니 장화 크기가 칭기즈칸 동상의
실제 발 크기와 같게 만들어졌다는 후문이다. 이 가죽 장화에는 무려 소 120여 마리의 가죽이 사용되었고 장화 내
부를 채우는 시멘트도 7톤이나 들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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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몽골 사람들은 유목생활은 검소한데 방해 의복은 정말 화려해 입는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래, 화려하지. 몽골 전통의상은 화려하게 장식된 의복 위에 전통 모자 말가이(Malgai)를 쓴 후, 가죽장화인 이
고탈을 신음으로써 정통복장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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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크기라는 칭기즈 칸이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은 아주 거대했다. 징키즈칸이 활동했다는 거대한 평
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징기즈칸이 바라보고 있는 맞은편 저 멀리 500m 떨어진 언덕 위에는 칭기즈칸의 어
머니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두 모자가 서로를 마주 바라보며 매일 무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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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에륜' 그녀는 칭기즈칸의 아버지 예수가이가 다른 부족으로 시집가는 여인을 약탈하여 아내로 삼은 여인이
다. 아버지가 독살당한 후 부족 무리에서 쫓겨난 칭기즈칸, 어린 시절의 테무친을 보살펴 살아남게 한 사람이 바
로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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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가죽장화 옆에는 또한 어마 무시한 크기의 황금채찍이 있다. 채찍의 길이가 5m정도는 되어보이는데 혹시 저
황금 채찍이 칭기즈칸이 여기에서 주었다는 그 채찍이 아닌가 싶다, 황금채찍 아래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하탁[khatak]이 까려있기 때문이다. 몽골인의 절대 다수가 라마교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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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는 예전부터 존재했던 샤머니즘은 오늘날에도 건재해서 야트막한 언덕이나 높은 산 정상이나 드넓은 평야
혹은 사람이 다니는 길가 등 어디에나 어워[Ovoo]가 있다. 몽골인은 어워가 그 지역의 땅과 주민을 보호해 주는
정령이 산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城隍堂[성황당]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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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의 허허벌판 위에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제국을 건국했으며, 13세기 구대륙을 제패하여 이
후 세계사의 흐름을 여러 의미로 크게 바꾸었다. 이후 손자인 쿠빌라이 칸은 중국 대륙에서 원나라를 개창한 이
후 칭기즈 칸에게 태조라는 묘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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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주위를 돌면서 돌을 던지고, 보드카나 우유를 뿌리고, 돈이나 사탕을 올려놓고 또는 하탁(천)을 걸어 주
면서 소원을 빈다. 그 천이 바로 하탁[khatak]이다. 하탁이 깔려 있다는 것은 이 채찍에 최고 존경을 표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유랑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기마상을 오르기 위해 계단을 따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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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로 오르기 위해서는 2층으로 올라간 후 말의 뒷발에서 승강기를 타고 3층의 말 꼬리 위쪽으로 오르게 된다.
승강기에서 내려서 말 뱃속의 비좁은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올라 말 몸통 밖으로 나오니 칭기즈칸의 상반신이
나타난다.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햇빛을 받으면 번쩍번쩍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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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기를 따라 몇 계단을 올라 뒤를 돌아다보면 칭기즈칸의 위세가 당당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어마 무시한 크
기의 칸 동상 얼굴, 몽골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 칭기즈칸의 얼굴이 장관이다. 그리고 칭기즈칸이 오른쪽에 들고 있
는 채찍은 유일하게 황금색으로 도금되어 더욱 빛이 난다. 아마도 저 채찍이 1층에서 보았던 칸이 주웠다는 그 황
금 채찍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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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로 나가니 그곳에는 몽골 대 초원의 바람이 불고 있다. 몽골의 대표적 랜드 마크가 된 이 기마상! 이 기마상
을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녹슬지 않는 250 ton여 톤의 스테인리스강으로 기마상을 만들었다니 역시 세계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정복한 몽골 민족의 스케일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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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이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곳은 몽골초원의 동쪽이다. 그는 그가 태어난, 이곳에서 800km 떨어진
동쪽의 고향 땅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하나있다. 칭기즈칸이 바라보는 동쪽 방향을 보다
보면 동쪽 저 멀리 500여m쯤 떨어진 언덕에 또 다른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 눈으론 그냥
희미하게 보인다. 유랑자는 재빨리 렌즈를 바꾸어 카메라 줌으로 당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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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에륜이다. 칭기즈칸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 고향도 있지만 어머니도 있는 것이다. 칭기즈칸
어머니 동상은 공사 도중에 공사비용이 부족해서 공사가 중단됐다가 최근에 완성되었다는 가이드의 전언이다.
모자가 서로 바라보면서 무순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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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에륜 그녀는 칭기즈칸의 아버지 예수가이가 다른 부족으로 시집가는 여인을 약탈하여 아내로 삼은 여인이다.
아버지가 독살당한 후 부족 무리에서 쫓겨난 테무친, 어린 시절의 테무친을 보살펴 살아남게 한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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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고, 가난하다고 불평도 하지 마라.
나는 9살 때 아버지가 독살 당했고, 부족에게 버림받아 살아갈 길조차 막막했다. 매일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불
타는 태양과 눈보라 몰아치는 초원에서 풀뿌리와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내겐 하루하루가 목숨을 건 전쟁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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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자신을 비아냥거리지 말고, 친구가 없다고 해서 외로움에 슬퍼하지도 말라. 나는 내 그
림자 말고는 친구가 없었고, 백성은 어린애와 노인까지 합쳐 200만이 채 되지 않았으나 결국 세상의 절반을 내 발
밑에 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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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막막해도 절대 쉽게 포기하지 마라. 나는 살고자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땀을 비 오
듯 흘리면서도 양털 속에 숨어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살고자 하면 반
드시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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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록을 남길 정도로 그녀는 아들 테무친에게 포기를 모르는 강한 정신력과 불굴의 투지를 불어넣어 주었던
여장부였다. 母傳子傳[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强弩之末[강노지말]이라 했던가,
이 말은 결국 강한 쇠노로 쏜 화살도 강하게 날아가다가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맥을 못 추듯이 강한 것도 시간
이 지나면서 힘을 잃고 쇠약해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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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權不十年[권불십년]이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아무리 화려한 꽃도 십일을 더 버티지 못한다는 이 말은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을 한번 해 묵겠다고 설치는 개 꼬라지같은 정치인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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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푸른 초원은 차를 타고 달리며 본 초원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
릴 듯 하늘에 구름은 낮게 떠 있고 초원 주변 풍광도 一望無際[일망무제]로 탁 트여서 시원시원하게 보인다. 그 초
원은 칭기즈칸이 말을 타고 누볐던 대 초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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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일천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스테인리스강으로 다시 태어난 칭기즈칸은 몽골의 대 초원을 내려다보며
옛 영광을 되 찾기위해 초원으로 다시 원정을 나가고 있었다. 그 뒤에서 마치 수십 만 대군의 칭기즈칸 호위 병사
들이 명령만 떨어지면 지금이라도 당장 휘몰아 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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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된 칭기즈칸의 황금채찍을 쥔 손을 흔들면서 공격 앞으로 하고 소리칠 것만 같다. 그렇다, 오늘에 몽골인 들
은 칭기즈칸의 과거 영광을 다시 금 꿈꾸고 있을까? 몽골 제국의 힘이 비현실적으로 초원 위에 흐르고 있었다. 그
러고 보니까 유랑자는 칭기즈칸이 탄 말 위에 서 있었다.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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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다시 황금채찍 뒤쪽의 계단을 이용해 건물의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보았다. 기마상 기단 건물의 지하에
는 몽골의 역사 유물이 전시된 사설 어르뎀 박물관이 있었다. 시대 순서대로 구성된 전시실에는 청동기 시대 및
흉노시대 유물들이 소장된 1전시실과 몽골 제국 시대 유물이 있는 2전시실이 있었다. 몽골의 역사는 흉노족으로
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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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명의 황후 및 황비들에게서 총 9남 7녀를 두었다. 황후는 몽골어로 칸의 여성형인 '카툰'이라고 불렀으며,
내명부인 오르도를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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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기즈칸이 바라보는 동쪽 방향을 보다 보면 저 멀리 동쪽 500여m쯤 떨어진 언덕에 또 다른 동상이 하나 세
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 눈으론 그냥 희미하게 보인다. 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에륜'이다. 칭기즈칸이 바
라보고 있는 곳에 고향도 있지만 어머니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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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전시된 구석기 시대 뗀석기는 다듬은 형태가 우리나라 뗀석기와 똑같이 생겼고,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 사
용하는 신석기 시대 반달 돌칼도 생김새가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똑같다. 몽골의 선사시대 유물
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똑같은 것이어서 강한 친밀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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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방패, 활, 화살촉에는 몽골 제국의 강력한 힘이 남아 있고, 말안장 같은 승마도구, 전통 악기, 가죽 카펫, 게르
에서는 유목생활 특유의 개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놀라운 것은 이 많은 유물들이 이 박물관을 세운 기업
인 개인이 수집한 유물들이라는 점이다. 개인의 보물이라서 그런지 전시실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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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强弩之末[강노지말]이라 했던가, 이 말은 결국 강한 쇠노로 쏜 화살도 강하게 날아가다가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맥을 못 추듯이 강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힘을 잃고 쇠약해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 속담
에 權不十年[권불십년]이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도 영원한 것은 없
으며, 아무리 화려한 꽃도 십일을 더 버티지 못한다는 이 말은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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