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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인생이 되게 하소서!
참고말씀: 민14:28-30; 26:63-65; 신8:2; 욥9:25,26; 시5:12; 48:14; 127:1; 전7:14; 8:7; 렘29:11; 마26:39; 눅18:13; 요14:1-3; 행15:40,41; 롬8:27; 빌1:6; 2:13; 히13:9; 벧후3:10; 요일5:14; 계21:1
읽을말씀: 시90:1-17
주제말씀: 시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첫째, 하나님만이 영원한 안식처임을 깨닫고 의지해야 합니다! (1-6절)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1,2)
본문은 시편에 수록된 누구의 유일한 시입니까? 표제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 모세입니다. 언제 기록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서 방황하던 시기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까? 대대에 우리의 안식처가 되시는 분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1절)
어째서입니까? 광야에서 방황하던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그들의 정착할 거처, 곧 안식처이었는데, 그들이 지금 향하고 있는 가나안 땅도 엄밀히 말하면 임시 거처에 불과하므로,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그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2절)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될 수 있습니까? 유한한 사람들입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다 흙으로 돌아가야 할 나약한 존재들이요,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3절)
잠깐 있다가 지나가는 덧없는 인생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의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4-6절)
허면 특정 장소가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있습니까? 이 역시 그럴 수 없습니다. 산이나 땅, 온 세계를 조성하신 하나님께서(2절 상) 언젠가는 이것들을 다 불에 태워 없애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타지리라).”(벧후3:10) /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하)
결국 누구만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십니까?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48:14) 그리고 오직 어디에만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집, 곧 천국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한편, 본 시편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는 무엇입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것, 곧 지혜로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2절 하) 이를 얻으려면, 먼저 어찌 해야 합니까?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잠깐 있다가 지나가는 존재임을 깨닫고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로운 마음을 얻기를 원합니까? 지혜로운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먼저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 땅에는 영원한 안식처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깨닫고 바라기를 원합니다.
둘째, 인생의 날 계수함을 배워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7-12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으려면 또 어찌 하여야 합니까? 부지런히 우리의 날 계수함을 배워야 합니다. 누구만이 우리에게 이를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2절)
어째서입니까? 우리 중 누구도 우리의 날을 다 살아본 사람이 없으므로,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하) /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전8:7) 사람들 중에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가르쳐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 날 계수함’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12절 상) 우리의 남은 수명을 미리 헤아려본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남은 날들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허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히려 우리가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세어서 깨닫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거기에서 주의 교훈을 얻지 못하므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놓치면서 살아갑니다. 사실 지나온 날들만 잘 되새겨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의 모든 날들이 하나님의 분노 중에 지나갔으며 그들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9절)
어째서입니까? 광야생활 내내 불순종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오다가,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에 두셨사오니.”(8절) 20세 이상의 장정 대부분이 다 하나님의 분노와 징계 가운데 다 쓰러져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7절)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14:28-30) / “이는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민26:63-65)
광야에서 쓰러져 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어느 정도였습니까? 일반적으로 칠십 대이었으나 강건한 사람의 경우는 팔십 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10절 상)
그러나 이는 왜 자랑할 것이 못되었습니까? 이 날들은 대부분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했으며,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10절 중) 신속히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절 하) /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누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히, 갈대 배)와 같고 먹이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욥9:25,26)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께 무엇을 가르쳐달라고 호소합니까? 자신의 날 계수함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12절 상) 즉 인생의 날 계수함을 배워서 지난날로부터 산 교훈들을 얻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2절 하)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우리의 날 계수함을 배워 지난날로부터 산 교훈들을 부지런히 얻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매번 과거를 되풀이 하게 되나, 과거를 통해 늘 배우는 사람은 더 이상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말입니다.
셋째, 지혜로운 인생을 위해 반드시 세 가지를 구해야 합니다! (13-17절)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시90:17)
지혜로운 인생을 원한다면 어떤 것들을 힘써 간구해야 합니까?
①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13,14절)
어째서입니까? 자신의 연약함이나 한계를 깨달은 사람은 이런 것들을 당연히 구할 수밖에 없으며,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또한 이런 것들 없이는 자신의 남은 인생에서 더 이상 참된 만족이나 즐거움, 기쁨 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② 자신들이 겪었던 슬픔의 기간과 비례하는 기쁨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15절)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고와 슬픔의 기간을 두시는 것은,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10절 중) 그 자체로서 목적이 있지 않고, 오히려 이를 통해 기쁨의 날, 곧 평안과 미래를 주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것이니라.”(렘29:11)
그러니 지혜로운 성도는 고난당할 때마다 어찌해야 합니까? 자신들이 겪었던 슬픔의 기간에 비례하여 기쁨을 주시며, 또한 고난의 날들만큼이나 기쁨의 날들을 허락해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③ 우리의 하는 일들의 형통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17절)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견고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17절 하)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127:1)
물론 하나님은 무엇으로써 견고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17절 상)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은총(은혜)야말로 최고의 접착제이자 강화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15:40,41) /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히13:9 중) /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로다.”(시5:12)
참고로, 우리의 손이 행하는 일이란 무엇과 별개일 수 없고 또한 그리 되어서는 안 됩니까? 주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16절)
어째서입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항상 구하여야 하듯이,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 하) /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7 하)
우리가 무엇인가를 도모할 때도 우리의 계획이나 생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초로 그것에 따라 진행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혜로운 인생을 위해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를 간구하고, 우리가 겪었던 슬픔의 기간과 비례하는 기쁨을 간구하며, 우리의 하는 일들이 주의 은혜 가운데서 견고해지기를 간구하고 있습니까?
한편, 모세는 왜 이 같은 세 가지를 간구했을까요? 지난 40년의 광야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 없이는 남은 여정의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고, 수고와 슬픔으로 점철된 지난날들과 달리 앞으로는 기쁨의 날들로 가득하기를 소망했으며, 가나안을 향한 행진이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형통하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할렐루야!
https://www.youtube.com/live/JeULsn-cBn4?si=OFv_9F3GZom7Tj1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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